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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불이야! 외치는 유럽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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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 [up9080] 쪽지 캡슐

2006-02-17 ㅣ No.162

극장에서 불이야! 외치는 유럽 언론

 

크라테스가 신을 모독하고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킨 혐의로 독배(毒盃)로 처형된 기원전 399년 이래 서양에서 언론 자유의 한계는 영원한 논쟁거리가 되어 왔다. 1919년 미국 대법원은 언론 자유의 한계를 가장 감각적으로 정의(正義)한 판결 하나를 내렸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7년 사회당 사무국장 찰스 셴크가 징집 반대를 선동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관 올리버 웨델 홈즈는 대표 집필한 판결문에서 셴크의 행위는 "극장 안에서 불이야!"라고 거짓으로 외쳐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행위와 같다는 논리를 폈다. 그때부터 "극장 안에서의 불이야!"는 언론 자유 남용의 동의어(同意語)로 대접받는다.

덴마크의 윌란스 포스텐이라는 신문이 이슬람 교조(敎祖)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풍자만화에 항의하는 무슬림들의 폭력시위가 유럽과 중동에서 아시아까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급기야 파키스탄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당했다. 유럽 언론들은 언론의 자유라는 편리한 전가(傳家)의 방패 뒤에서 윌란스 포스텐을 옹호하고 무슬림들 시위의 폭력성만 비판하고 있다.

유럽 언론들은 원론적이고 포괄적인 언론 자유만 강조할 뿐 독일에서는 히틀러 사진을 대량으로 유포하거나 유대인 대량 학살(Holocaust)을 부인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에는 침묵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유다를 제외한 참석자 전원을 여성으로 개작한 광고에 게재금지 조치가 내려진 데도 유럽 언론들은 말이 없다. 프랑스 법원은 문제의 광고가 "사람들의 가장 내면적인 믿음을 부당하고 공격적으로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마호메트 모독이야말로 특정 종교 신도들의 가장 내면적인 믿음을 악의적으로 침해한 전형적 사건이다. 무슬림들은 9.11 테러 이후 이슬람과 테러리스트를 동일시하는 서양의 분위기에 모욕을 느끼고 많은 불이익을 당한다. 유럽 신문들이 그런 풍자만화를 싣고 언론 자유를 외치는 것은 종교적으론 이슬람에 대한 신성모독(神聖冒瀆)이요 정치적으론 참으로 우둔한 짓이었다.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로 그리면 광신적 무슬림들에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분풀이를 할 빌미를 준다는 것쯤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유럽 신문들은 이슬람 교조와 그를 따르는 무슬림들을 모욕했다. 윌란스 포스텐은 사건 초기에 이슬람 단체의 사과 요구를 거부했다. 사태를 수습할 책임이 있는 덴마크 총리 라스무센은 이슬람국가 대사들의 집단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 윌란스 포스텐과 덴마크 정부는 호미로 막을 사태를 가래로도 막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무슬림들의 폭력시위 배후에 풍자만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집트.시리아.이란.팔레스타인 정부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부시 정부의 중동 민주화 전략으로 이 지역에 민주화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자 아랍.이슬람권의 권위주의 정부와 전제군주주의 정부들은 심각한 체제 불안을 느끼고 있다. 마호메트 풍자만화는 그들에게는 미국과 유럽에 대한 분풀이와 민중 끌어안기의 호기(好機)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사태를 현지 집권세력이 악용한다는 사실이 그런 사태를 촉발한 유럽 언론들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유럽 언론들의 이슬람 모독과 무슬림들의 항의시위를 문명충돌로 보는 것도 종교적 자존심과 인명과 재산이 걸린 구체적인 사건을 초월적인 것으로 격을 높여 사건을 추상화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서양인들의 지적(知的) 속임수다. 한국의 일부 언론이 문명충돌론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유감이다. 뒤늦게라도 유럽공동체를 중심으로 유럽 쪽에서 대화를 통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시위는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인종적.문화적 우월감을 버리고 유럽의 무슬림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한 사태는 잠복할 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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