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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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요한 8, 1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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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승 [bona24] 쪽지 캡슐

2024-03-17 ㅣ No.170673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7)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시대는 분명 종교적으로나 관습적으로 남성 중심의 시대였기에 여성차별이 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유독 여성에게 관대하셨던 것은 여성이 약자였고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예언서의 ‘수산나’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복음의 ‘라자로’와 동일한 절체절명의 극한상황에 놓여 있었고, 다니엘의 지혜와 예수님의 영적인 처신과 질문을 통해서 죽음과 같은 상황에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절망과 죽음의 순간을 맞닥친 그녀들의 심정을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23,4)  

오늘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 앞에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끌고 온 까닭은 그녀를 율법에 근거하여 단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숨은 의도는 그녀에 대한 예수님의 의견을 빌미로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음흉한 계획이었습니다. 이런 의도를 꿰뚫어 보신 예수님께서는 다만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라! 즉,우리 존재에 묻고 계심’)에 무엇인가를 쓰시며 침묵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이 집요하게 답변을 재촉하자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7) 라고 하신 다음 다시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세상 어떤 누구도 죄 없는 존재란 없으며, 어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살아 온 세월만큼 인간은 죄를 지어온 세월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면 주책바가지가 되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8,9) 이를 보면서 그들은 비록 나이 들었음에도 최소한 양심의 소리를 듣는 노인들이었으며,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나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 주책바가지같이 나이만 드셨지, 눈이 멀고 양심까지 마비된 두 노인의 음욕이 대형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 사고는 무죄한 한 여인을 겁탈하려고 하다 실패하자, 자기들의 직위를 악용해서 자신들의 거짓 증언으로 무죄한 ’수산나‘에게 누명을 씌워 사지로 몰아세운 것입니다. 물론 두 노인에게 그녀의 잘못이라면, 매우 젊고 아름다운 게 죄이겠지만, 그녀는 외모도 아름다웠지만 마음도 착해 하느님을 경외하는 성숙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모략과 곤경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산나‘는 모든 일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간절히 기도하였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녀가 의지한 하느님께서 다니엘을 통해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출하십니다. (다13,2.42.46 참조)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주님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시23,4) 수산나에게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한 다니엘은 생명으로 이끈 하느님의 使者이었다면, 간음한 여인에게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은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 구세주이셨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로부터 그 자리를 떠나가고 아무도 없음을 알고, 혼자 남은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8,10)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아직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 돌을 들고 다른 사람 앞에, 아니면 그 자리를 떠나서, 아니면 주님의 자비 앞에 서 있습니까? 하느님의 자비 앞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은 단지 그 여자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입니다. 자비하신 주님 앞이 바로 내가 서 있어야 하는 자리이며, 그때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거라.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8,11)고 격려하십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다음, 그녀는 빛이신 예수님을 따름으로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8,12) 얻은 말씀의 수혜자이었으며 말씀을 산 증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바리사이들은 빛을 따르기보다 지금껏 걸어왔던 어둠 속을 걸었음은 “당신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언은 유효하지 않소.” (8,13) 라는 질문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율법, 곧 사람의 기준에 의하면 ‘두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 유효한데’ (8,17참조) 예수님의 증언은 다른 증언자가 없이 스스로 자신을 증언하고 있기에 유효하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하느님 증언의 유효와 무효를 판단하려고 하다니, 무슨 가당치 않은 語不成說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밝히신 내용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증언입니다. “내가 내 자신에 관하여 증언하여도 나의 증언은 유효하다.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8,14) 이후 예수님은 이 말씀을 보다 더 명확하게 밝히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16,28)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어 아버지의 이름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시기에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8,19) 그러나 그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에 예수님에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14,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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