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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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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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4-14 ㅣ No.111447

 

2017년 4월 14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제1독서 이사 52,13─53,12

13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14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15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53,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2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9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10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11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제2독서 히브 4,14-16; 5,7-9

형제 여러분,

14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

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15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16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5,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복음 요한 18,1─19,42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의 저작을 통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대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

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Es ist gut’(‘좋다’)

이라고 합니다.

 물론 어떤 이는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와인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80년간을 성실하게 살아온

그의 삶을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를 ‘좋다’라고

내린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30세에 대학 강사가 되어

40년간 변함없이 강의를 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독신으로

 살았으며, 남들과

노닥거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집과 학교

강의실만을 오가면서

철학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는데 최선을

다해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아주 돈독했습니다.

이러한 그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면서

‘좋다’라고 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 수난 성금요일인 오늘,

예수님의 마지막 말을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다 이루어졌다.”였습니다.

솔직히 십자가의 죽음은

치욕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입장이라면

너무나도 억울할 수밖에 없는

죽음일 것입니다.

정식 재판을 받지도 못하고

당시에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에게

내려졌던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것,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죄 많은

인간들 앞에서 벌겨진 상태에서

뺨을 맞고 발로 차이는 등 모욕과

치욕을 당하셨다는 것 역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다 이루어졌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자신의 삶을 한 치의 낭비도 없이

 하느님 뜻에 맞춰서

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다 이루어졌다.’라는 예수님

말씀처럼은 하지 못하더라도,

‘좋다’라는 칸트의 말 정도는

할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가 있어야 하겠지요.

내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면서

 죄를 가까이한다면 절대로

 할 수가 없는 말인 것입니다.

 내 자신은 과연 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기도의 시작과 끝에

성호경을 긋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인데 성호경의

모양은 십자가입니다.

먼저 손을 이마에 댄 다음

가슴에 대면서 영어의 대문자

아이(I)를 만듭니다.

그리고 손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지요.

바로 먼저 만든 나(I)를

가운데로 반도막 내버립니다.

어쩌면 십자가란

나를 반도막 내는 것,

내가 가진 죄를 죽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죄로 가득한 나를 죽여 나갈 때,

생의 마지막 순간에

멋진 말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요?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난폭하게 행동하면

소인의 용기다.

죽음을 무겁게 여기고

의로움을 가지고

경솔하지 않은 것이

군자의 용기다.

(순자)

어제 있었던 성유축성미사.

신부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오늘의 수고"

('좋은생각'중에서)

매일 아침 정원에 떨어진

나뭇잎을 치우는 아이가 있었다.

나뭇잎 치우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특히 가을, 겨울에는 세찬 바람

탓에 낙엽이 정원을 뒤덮었다.
날마다 시간과 힘을 쏟던

아이는 금세 지쳤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수고를

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무를 흔들어서 낙엽을

떨어뜨려 볼까?

내일 몫까지 미리

치워 두는 거야.’
아이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정원에 나가

나무를 세차게 흔들었다.

평소보다 치우는 데 시간이

한참 더 걸렸지만,

내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하지만 다음 날 정원에

나가 보니 낙엽은 평소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당황한 아이를 본

 현자가 말했다.
“얘야, 오늘의 수고는

오늘의 몫으로 충분하다.

내일은 내일의 낙엽이

떨어지는 법이란다.

예수님 부활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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