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고해성사가 사제의 협상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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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chapmann] 쪽지 캡슐

1999-08-16 ㅣ No.231

어제 성남의 한 성당으로 미사를 갔었다. 시작 시간이 빠듯하게 되어서 허겁지겁 들어가 먼저 자리를 잡은 언니 옆에 막 서려는 순간, 언니가 내 발을 보더니 영성체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싶은 얼굴로 쳐다보고 있으려니 이 성당 보좌신부님이 맨발인 사람은 성당을 나가든지 영성체는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좀 착잡한 느낌이 들었지만 하지 말라는데야...싶은 마음으로 그냥 접었다. 그런데 미사 내내 신부님의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바람에 더구나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퇴장성가를 남겨 두고 공지사항 시간이 되었다. 신부님은 씩씩거리며 말을 꺼냈다. 아마 여름이 시작되면서 신부님이 성당에 하고 와서는 안 되는 차림새에 대해서 톡톡히 훈계를 한 모양인데, 그 안에 맨발 조항이 들어 있었나보다. 며칠 전 한 신자가 신부님에게 전화를 했단다. 내가 양말을 신든지 안 신든지 신부님이 무슨 상관이냐고. 정확한 내용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그 신부님은 그렇게 전했다. 그러면서 신자들이 정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자기도 신자들이 천국엘 가건 지옥엘 가건 상관하지 않겠노라고 '진노'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갑자기 고해성사 얘기를 꺼내면서 이어붙인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보러 들어와서 기껏 일이분이면 된다. 그런데 나는 어떤 줄 아는가. 그 밀폐된 공간에서 이십여분을, 온갖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그 속에서 갖은 악취와 더위와 싸우고 있다. 그런데 신자들이 이렇게 내 말을 안 들으면 난 고해성사에 안 나오겠다. 신자들이 자기네를 상관하지 말라고 하면 내가 내밀 수 있는 마지막 협박 카드는 이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고, 그날이 무슨 날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했다. 물론 신부님들이 이 더위에 고생하는 걸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주의를 주기까지의 과정에는 그럴 만한 상황이 있었음을 무시해서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말이 안된다. 신자들이 성당에 올 때 이런저런 것들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그럼으로 해서 다잡어야 할 마음가짐 때문이지, 신부님의 엄포나 꾸지람이 무서워는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행여 그럴만한 상황이 있었더라도, 그 때문에 미사를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로 몰아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도 문제의 핵심은 그 신부님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신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권한으로 위임했는가. 의사들이 사람 봐 가면서 치료한다는 얘기를 듣기나 했는가. 의사 앞에서는 사람 됨됨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위고하, 죄의 유무를 떠나서 모두가 치료받아야 할 환자로 있다. 예수님이 성서에서 베드로에게 준 권한은 묶인 것을 푸는 데 있지, 풀린 것을 묶는 데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 복음이다. 그 복음을 받아서 신자들에게 흉음으로 전하는 일을 도대체 누가 할 수 있는가. 왜 주인도 하지 않은 일을 대리자가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예수님이 가장 경계하고 다그쳤던 이들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던 율사들이라는 건 성서에도 나와 있는데. 그렇잖아도 고해성사에 대해 알게 모르게 말들이 많다. 그만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한계 속에서 많이 변질되어 버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육백 가지도 넘은 유대교의 율법을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로 줄여 버렸다. 그 속에는 규정과 규칙이 죄를 만든다는 기본적인 배려가 깔려 있는 게 아닐까. 그 분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기 전에 우리가 죄 짓지 않을 수 있게 먼저 살피신 것이다. 양치기나 세리를 죄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지금, 맨발로 성당에 가거나 주일 미사에 가지 않은 사람을 우리는 죄인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리고 나서 이렇게 싸인 죄인을 한꺼번에 사면시켜 주실 예수님을 한 번 더 기다려야 하나?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이천 년이 유효 기간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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