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신앙인으로서의 의사라기보다..

스크랩 인쇄

윤승용 [wayfarer] 쪽지 캡슐

2000-08-12 ㅣ No.975

  굳이 신앙인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보다 뭘 더해라라는 식의 얘기는 않겠습니다. 전 의사 선생님들 덕분에 병약한 유년기를 넘기고 지금 마흔넘어까지 살아가고 있으니 당연히 의사 선생님들께 감사해야하고 또실제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친구중엔 유난히 의사도 많으니 평균적인 의사선생님들의 고민이나 어려움도 알고 그 친구들의 생활방식이나 생활수준도 잘 아는 편이지요...  

  매번 의사선생님들은 길고 어려운 수련과정을 얘기하시더군요. 잘 압니다. 친구들 힘들게 배우고 일한거... 제 얘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제 자신에 대한 투자라 생각하고 대학을 두군데 다녔습니다. 두 대학 모두 한국에서는 일류라고 말하는 대학이었습니다, 7년간... 그리고 또 다시 생존을 위해 식구들을 떼어 놓고 중국에 가서 하루에 우리돈으로 1000원이 안 되는 돈으로 세끼를 떼우면서 또 1년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와서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어 놨고 전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한국을 떠났습니다. 한참 아빠를 필요로 하던 나이의 두 아들과 아내를 놓아둔 채.... 지금 마흔이 넘었지만 어렵게 무역회사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그건 누가 존경해서가 아니라 제 자존심과 자긍심때문입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제 불운이나 능력부족이라 여기고 살아온 것에 대한 자존심과 자긍심. 의사선생님들이 요즘 의사로서의 자존심을 많이 말씀하시더군요...하지만  전 그게 자기 스스로 갖는 것이지 남이 주는게 아니라고 생각되거든요, 제 생각엔...  그걸 되돌려 달라고 병원을 박차고 나오시는 순간, 사실은 오히려 그 자존심을 스스로 내동댕이친 것이라는 아이러니를 못 느끼시나요? 의사선생님들의 주장이나 요구가 근거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말입니다.

  사실 의사선생님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앞뒤가 잘 안맞는 행동을 보면서, 전 최근에 군인여러분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죄송한 이유는 그저 제 논리만 가지고, 그리고 과거의 어떤 일부가 저지른 죄악을 근거로 그 많은 분들을 비난하고 미워했던 것... ( 정말 용서를 구합니다.)  감사하는 이유는, 지금 의사선생님들의 논리주장대로라면, 하던 일 걷어치우고 나오셔야 할 많은 분(열악한 직업환경, 형편없는 보수, 사회로부터의 아무런 존경도 못받는 현실만으로도 직업을 포기해야 할) - 환경미화원, 농부, 소방수, 경찰, 간호사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치 많은 이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 일반적인 관점에서 의사선생님보다 아래 계층에 속하는 대부분의 우리들 그 맨 앞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주는 분들이 바로 군인이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의 논리라면 그 분들은 벌써 오래전에 총칼버리고 군복벗고 자기 자리를 벗어났어야 할겁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게 자존심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분들께 존경을 보냅니다. 의사선생님들이 요구하고 또 그게 안된다고 지금처럼 행동하시는 걸 군인들의 입장에 한 번 맞춰 보신다면, 제 뜻을 쉽게 아시겠지요.  

  지식이 무엇입니까?  지식인이 무엇입니까? 많은 학생들이 데모하고 얻어맞고 잡혀다닐 때도 대부분의 의사선생님들은 자신의 학업에 몰두하셨지요? 그래도 우린 그걸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이 설령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부한 것이었더라도, 우린 인간의 삶이 소중한만큼 그를 지키기 위한 의사선생님들의 노력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의사선생님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정부와 싸우기 위해 저희를 볼모 삼으시려구요..? 그러지 않으면 정부가 귀기울이지 않아서라구요..? 그게 테러리스트들의 논리와 어떻게 다른건지요? 한번 돌아봐 주십시요. 의사선생님들보다 너무나도 못나게 살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그들이 의사선생님들보다 덜 노력했고 덜 고생스런 유년기,청년기를 보냈으며 자기 개발을 위해 시간을 덜 투자했다고 정말로 생각하십니까?

  논리로서 의사선생님들을 설득하려고 이 글을 올리는 건 아닙니다. 둘러 보시라고 권할 뿐입니다. 존경받지 못하는게 뭔지, 힘겨운 삶이 뭔지... 의사선생님들의 걸음걸음 그 발 밑을 보시면 정말 존경받지도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저희가 거기 있습니다. 저희를 밟고 지나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리고 지금은 당신들이 우릴 밟고 있습니다. 이젠 정말 저희들도 지쳐가고 있습니다.    



110

추천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