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유종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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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선 [cskim74] 쪽지 캡슐

2001-03-02 ㅣ No.2939

 

   3.1절 공휴일 새벽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조깅운동에 나섰습니다. 봄비가 내리기에 아파트 단지안에 있는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집 피정장소(화장하는 곳?) 에서 사순절강좌인 성체신심세미나 교재를 읽으려고 안경을 찾았습니다.  책상, 화장대, 침대, 거실, 식탁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보이질 않았습니다. 열쇠지갑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분명 안경을 쓰고 체육관을 다녀 왔는데 혹시 그곳에 두고 오지 않았나 싶어 다시 둘러 보았으나 거기에도 없었습니다.

 

   이제 오십대 중반으로 아직 치매가 올 나이는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대문 앞을 들어서는 순간 "그렇지, 내가 열쇠없이 어떻게 문을 열었겠나? 집안에 있는 게 분명하다."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다시 살폈습니다.  글쎄 십자가와 성모상을 모신 기도소에 잘 보관되어 있는 게 아닙니까?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시고 기뻐하셨던 것처럼 안경과 열쇠지갑을 찾은 순간 얼빠진 나의 모습을 기도하는 곳에서 발견하고 싱긋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요즘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퍽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같은 회사에 28년 동안 근무하고 이제 정년을 7년 앞두고 있는데, 유종의 미를 장식하고 명예로운 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정직, 성실, 창의를 신념으로 일해 왔었습니다. 두 아이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외식 한번 제대로 하기가 어렵지만 밥 굶을 형편은 아니니까 청렴한 자세로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샐러리 멘 생활에 빠지다보니 하느님의 자녀답게 그 분의 손과 발이 되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랑의 삶이 부족했던 저였기에 이제사 철이 들어 일과후에 틈나는 데로 봉사활동이나 피정 또는 교육에 참가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년들어 연봉이 줄어들었고, 지난달에도 봉급 명세서를 받아보니 작년의 성과상여금도 0% 였습니다.  최하위 30% 에 속하는 평가를 받은 셈입니다.  파도가 철석이며 부서지는 푸른 해변가를 걷고 싶다고 자주 얘기하던 아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길도 제대로 한번 가지 못했고, 아이들과 다정스레 여가나 운동도 즐기지 못한 체 오로지 회사만을 위해 일한 저였기에 한동안 섭섭한 감정을 달래기가 어려웠습니다.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주님 말씀이 맴돌아 모든 것이 바보스런 저의 탓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직장동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저는 이렇게 술회 하였습니다. "제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였는지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하위 30%에 속하는 평가를 주었는가 라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것은 저의 교만이라 생각됩니다.  결과적으로 지난 해 제가 부족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저의 언행에서 잘못된 점이 있었다면 용서해주시고, 앞으로 잘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에 이어 저의 상사는 "연설 잘 들었습니다. ㅇㅇ씨가 열심히 일해 우리 지사의 위신이 올라간 것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잘 어울리기만 하시면 됩니다."라는 평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감사합니다,"라고만 대답하였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어려운 일이나 상하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저 뿐만은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를 살면서 제 소임을 다하려고 부지런히 일하는 가운데 "당신은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영양가 있는 일만 하시오."  "ㅇㅇ씨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는 등의 말을 직접 들을 때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이도 들어 술자리도 가급적 삼가하다 보니  "당신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당신은 적당히 거짓말을 한다."는 말을 들었고, 여럿이 모인 곳에서 "저 양반이 저렇게 겸손하다니깐요." "세상을 그렇게 살면 좋을 게 뭐 있습니까?" "그저 둥굴둥굴하게 삽시다." 등등............이러한 말로 인해 저는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여 언젠가 말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다가 시상이 떠올라 시조 한 수를 지었습니다.

 

             속되고  헛된 말은  암처럼  번져가고

             거친말  가시 돋아  마음을  상케하니

             혀끝은  화살촉이라  실언조차  삼가리.

 

             부드런   말 솜씨는  정다운   벗을 삼고

             바른말  하는 사이   참된 우정  길러지니

             따뜻한   말의 씨앗은  생명나무  되리라.

 

   오늘은 기미년 3월 1일!  아우네 장터에서 시작된 독립만세가 삼천리를 진동하던 날, 이제 저도 스트레스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그 동안 회사에서 겪은 고통의 시간들도 주님께서 저의 영적 성장을 위해 마련해 주신 소중한 기회라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재의 수요일 저녁 마이클 성당에서 열린 신앙강좌에서 성서학 교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기도하는 가운데,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는 빛과 소금의 역활을 해야 한다"는데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저의 지혜와 능력이 부족하고 불의가 세상에 만연하여 죄의 유혹과 고통이 엄습하더라도, 지금까지 걸어온 외길 인생에 유종의 미를 장식하기 위하여,  주님께 의지하며 제 십자가를 지고 생명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주님 허락하여 주십시요. 아멘.  JT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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