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04)

스크랩 인쇄

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3-04 ㅣ No.118734

 

 2018년 3월 4일

사순 제3주일

제1독서 탈출 20,1-17

그 무렵

1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2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3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4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5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7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11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 살인해서는 안 된다.

 14 간음해서는 안 된다.

15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16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7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제2독서 1코린 1,22-25

형제 여러분,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복음 요한 2,13-25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23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25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언제가 어떤 형제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해서

받은 다음 나오는데

조금 이상하더랍니다.

글쎄 분명히 만 원짜리

지폐를 냈는데,

자신의 손에는

오만 원짜리 지폐가

들려 있던 것이지요.

거스름돈이니까 6,000원이

손에 있어야 하는데 5만

1천 원이 있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갈등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거의 동시에 전날 대리기사에게

1만 5천 원을 줘야 할 것을

5만 원짜리와 5천 원짜리를

혼동해서 6만 원을

준 것이 생각났거든요.

즉, ‘어제의 손해를 이렇게

메우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아서,

결국 오랜 망설임 끝에

다시 카페에 오만 원을

돌려주었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문제는 그 카페 직원의

반응이었습니다.

건성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자신의

이 행동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괜한 짓을 했구나.’
형제님께서는 기도하면서

이 일이 생각났고 크게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돌려주어야

할 것인데도

욕심으로 인해

망설였던 자신의 모습,

또한 대단한 것을 한 것도

 아닌데도 인정받고

칭찬 받으려는

허영심을 보게 된 것이지요.
어쩌면 누구나 이러한 경험이

한 두 번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대단한 것을 한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고,

악을 피하고 선을 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인해서 각종 핑계 속에서

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유혹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문제는 이 유혹에 넘어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불편한 마음과 함께 부정적인

생각이 함께 자리합니다.

여기에 지금 이 순간을 기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통해서 세상의 어떤 유혹도

거뜬하게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많은 이들이 주님의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주님을 멀리하니 세상의 많은

 유혹에 자유롭지 못하고,

이로써 더 어렵고

힘든 삶을 살 뿐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사랑을 그토록 강조하셨던

주님께서 폭력적으로

보이는 유일한 부분입니다.

즉, 채찍을 휘둘러서 장사꾼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고

탁자들을 엎으십니다.

(요한 2,15-16 참조).

사랑이 아니라 왜 폭력을

다 쓰시면서 정화를

 시키려고 하셨을까요?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집을 더럽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싼 가격에 번제물을 팔고,

성전에서만 통용되는 돈을

만들어서 웃돈을 받아 환전을

 해주었던 것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불의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인정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전해준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탈출 20,3)

라는 하느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의가 마치

정의인 것처럼 내세우는

저들의 뻔뻔함에 화가

나실 만도 하지 않습니까?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유혹에 넘어가서 하느님을

멀리하는 성전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 모든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 스스로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거룩한 성전이 되십니다.
이제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1코린 1,2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오로지 주님만을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모든 유혹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과거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나쁜 소식이지만 미래가

다양한 모습으로

자네 손 안에 있는 것은

좋은 소식이지

(앤디 앤드루스)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나이 먹으면 좋은 점"

나이 먹으면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어느 작가가 아래의

7가지가 나이 먹으면

좋은 점이라고 말하더군요.

우선 그 7가지를

보도록 하지요.
1) 얼굴이 두꺼워짐.
2)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씀.
3) 지나온 시간 자체가 교훈이 됨.
4) 감정이 풍부해짐.
5)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됨.
6) 너그러워짐.
7) 인생은 비극보다

희극임을 깨닫게 됨.
나이 먹는 것이 좋지 않다고

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나이 먹으면서 갖게 되는

좋은 위의 7가지를

잊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앨범을 보다가 주님 곁으로 먼저 가신

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265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