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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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미사 강론]2017년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2017년6월4일주일(성령강림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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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jjwriter] 쪽지 캡슐

2017-06-09 ㅣ No.112515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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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764일 주일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사도행전 2,1-11

화답송 : 시편 104(103),1ㄱㄴ과 24ㄱㄷ.29ㄴㄷ-30.31 34(◎ 30 참조)

2독서 : 코린토 112,3-7.12-13

복음 : 요한 복음 20,19-23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8123&gomonth=2017-06-04&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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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2017년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http://www.news.va/en/news/pope-francis-homily-for-pentecost-2017

 

2017-06-04 바티칸 라디오

 

 (바티칸 라디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요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다음은 그 강론의 공식 영어 번역문 전문이니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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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령 강림 대축일

2017 64

 

오늘로 예수님의 부활에서 성령 강림 오순절까지 50일의 부활 시기가 마무리되는데성령 강림에 의해 오늘은 특별한 방법으로 기념됩니다. 성령은 부활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그분께서는 창조자 성령이신데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일으키십니다. 오늘의 독서 말씀은 우리에게 그 새로운 것 중 두 가지를 보여 줍니다. 1독서에서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새로운 민족으로 만드십니다. 복음 안에서 그분께서는 제자들 안에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십니다.

 

새로운 민족. 성령강림일에 성령께서는 하늘에서 내려 왔습니다.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행전 2,3-4)”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이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여 줍니다. 그분께서는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 모두를 일치 안에 모으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같은 성령께서 차이와 일치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새롭고 다양하고 통합된 민족, 즉 보편된 교회를 만드십니다. 먼저 창조적이면서도 예측되지 않는 방법으로 그분께서는 차이를 만드시는데 그분께서는 모든 시대에 새롭고 다양한 카리스마가 꽃피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일치를 가져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함께 참여하시고 모으시고 다시 일치를 이루십니다. “그분의 현존과 그분의 활동으로 성령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별개의 구분된 일치된 영들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CYRIL OF ALEXANDRI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John, XI, 11).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획일성이 아닌 다름 안에 있는 일치로서의 통합, 그 진정한 통합을 가져 오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반복되는 두 가지 유혹을 우리는 피해야 합니다. 첫 번째 유혹이 일치 없는 다양함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갈라지고 싶어 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편들고 파벌을 만들 때, 우리가 완고하고 폐쇄된 입장을 취할 때, 우리가 우리 자신만의 생각에 갇히고 우리 자신만의 일하는 방식에 갇혀 버릴 때, 아마도 남들보다 우리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또는 언제나 옳다고까지 생각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교회에 속하기에 앞서 이 집단 저 집단에 속하면서 전체보다 파벌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한 성령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 보다는 어느 한편을 위한 열렬한 지지자가 됩니다. 우리는 교회의 겸손하고 고마워하는 자녀가 되기에 앞서서 고집스러운 과거의 옹호자가 되거나 미래의 전위(아방가르드)가 되면서 예수님 편에 있기 보다는 우파또는 좌파의 그리스도인들이 됩니다. 그 결과는 일치가 없는 다양성입니다. 그 반대의 유혹이 다양함이 없는 일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일치는 획일성이 됩니다. 그 획일성 앞에서 모든 사람은 항상 같은 생각을 하면서 모든 일을 같은 방법으로 합니다. 일치는 결국 균일함으로 끝나고 더 이상 자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가 말했듯이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고린토 2 3,17)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께 바치는 기도는 그분의 일치를 받는 은총을 구하기 위한 것이고 개인적인 선호도를 제쳐 두고 그분의 교회, 우리 교회를 껴안고 사랑하는 빛을 구하기 위한 기도입니다. 그 기도는 모든 이들 가운데에서 일치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불일치의 독보리와 질투의 독을 씨 뿌리는 뒷담화를 치워내는 것입니다. 교회의 남자와 여자가 된다는 것은 통공의 남자와 여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한 교회가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의 집이고 더 커진 성령의 기쁨을 나누는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열려 있는 집이라는 것을 느끼는 마음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께서 가져다 주시는 두 번째 새로운 것으로 접어 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그분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복음 20,22-23).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수난 때에 예수님을 버리고 부인했던 일로 제자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에게 용서의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은총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죄의 용서를 위해 모든 이들 위에 주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시작을 봅니다. 우리를 함께 하도록 붙드는 접착제, 집의 벽돌을 묶어 주는 겹합체를 봅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는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모든 이들의 가장 위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일치를 보존시키며 무너지지 않도록 막아 주고 통합하여 견고하게 하고 튼튼하게 합니다. 용서는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우리가 새로 시작할 수 있게 합니다. 용서는 희망을 줍니다. 다시 말해서 용서 없이 교회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용서의 성령은 조화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우리가 그 밖의 모든 다른 방법을 거부하도록 이끕니다. , 섣부른 판단의 방법, 모든 문을 잠가 놓는 막다른 골목, 남을 비판하는 일방통행의 길. 그 대신에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주고 받는 용서의 양방향 길로 가라고 이르시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 되는 거룩한 자비의 양방향 길, “모든 일이 실행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변화되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유일한 척도”(ISAAC OF STELLA, Or. 31)로서의 자선의 양방향 길로 가라고 이르십니다. 우리 자신이 용서로 다시 새로워지고 스스로를 바르게 고침으로써 자기 자신을 다시 새로워지도록 하면서 우리 어머니 교회의 얼굴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오로지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서 우리 마음 안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불입니다. 우리가 자주 우리 죄의 잿더미로 그분을 가린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분께 간청합시다. “하느님의 영이시여, 주님, 우리 마음 안에 사시는 분, 다양함 안에서 교회를 이끄시고 그 꼴을 만드시며 교회의 마음 안에 사시는 분, 오소서! 물과 같이 우리는 살기 위해 당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내려 오셔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우리에게 일치를 가르쳐 주소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시고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 당신께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용서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소서. 아멘.

 

(바타칸 라디오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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