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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마음의 총상 - 그들은 아직도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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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 [up9080] 쪽지 캡슐

2006-02-20 ㅣ No.167

 

서해교전 생존자 … GP 참사 목격자 … 베트남 참전 군인
그들은 아직도 전쟁 중

 

서해교전 참전자 권기형씨의 왼손에는 큰 상흔이 있다. 북한 경비정에서 날아온 총알이 손을 뚫고 나간 것이다. 그의 마음에도 총상만큼 깊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서해교전 당시 북 경비정의 공격으로 침몰했던 아군 참수리 357호가 인양되고 있다.
참상을 겪은 군인의 마음에는 상흔이 남는다.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총상'. 의학적으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른다. 국가의 '명'에 따르다 얻은 고통인 만큼 선진국에선 대책을 단단히 세워놓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방치한다. '꾀병'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1. 창백한 얼굴에 힘없는 목소리. 2002년 6월 발생한 서해교전의 생존자 고경락(26)씨. "만사가 귀찮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그를 이렇게 만든 건 북한 함정의 기습 포격으로 아수라장이 됐던 선상의 기억. 지금도 밤이면 가끔 살려달라던 전우의 신음이 귀를 울린다. 사진 속 인물이 노려보는 것 같아 방에 있는 액자를 모두 치웠다. 그날의 악몽을 지우려고 여섯 달 동안 게임만 한 적도 있다. 마음을 옥죄는 건 공포만이 아니다. "교전 직후 주변에서 '아군 함정이 침몰당한 패전'이라고 수군대더군요. 교전수칙을 지키다 그렇게 된 건데, 그런 편견 때문에 더 괴롭습니다."

#2. 새벽 5시, 어둠이 싫어 전등을 켜놓은 방. 누군가 흉기를 들고 달려들 것만 같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에 둔 가방 속으로 손을 뻗는다. 잡히는 건 늘 지니고 다니는 재크나이프.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내가 날 지키는 수밖에….' 칼을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해보지만 이내 끔찍했던 현장이 떠오른다. 지난해 6월 터진 경기도 연천 총기 난사 사고의 생존자 Q씨는 매일 이런 불면증에 시달린다. 입대 전 교사를 꿈꿨던 그. 하지만 사고 이후 딴 사람이 돼버렸다. 누군가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람 만나기를 꺼린다. 제대 후 복학도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날 것 같아 버스나 지하철 타기가 겁나요."(서해교전 생존자 김택중씨) "아직도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어요."(연천 사고 생존자 최재욱씨)

전투.사고 등을 겪은 군인 중 상당수가 우울증.대인기피증 같은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 상처는 오랫동안, 깊게 남는다. 30여 년 전 베트남전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던 박형원(62)씨. 한때 자살을 기도했던 그는 요즘도 잘 때면 숨이 멈춰지곤 해 산소 호흡기를 쓴다.

취재팀은 서해교전과 베트남전 참전자, 연천 총기 사고 생존자 등 235명을 심층 인터뷰, 설문조사했다. 정신과 전문의가 조사 내용을 감정한 결과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천 사고 생존자 24명은 모두 심한 장애를, 서해교전 참전자 6명도 모두 중.경증 장애를 보였다. 베트남전 참전자도 205명 중 78%가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 장병을 제대로 예방.치료할 체계를 갖추기는커녕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연천 사고 생존자의 가족들은 최근 "생존자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신체장애처럼 국가유공자 인정 범위에 포함시켜 달라"고 집단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가톨릭대 전태연(정신과) 교수는 "국가에 봉사하다 받은 상처인 만큼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고 치료와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직도 전쟁 중

한국판 디어헌터

1979년 아카데미상(작품상)을 받은 '디어헌터'. 베트남전을 경험한 미국 청년들의 정신적 후유증을 다룬 영화다. 이들은 전장에서 받은 충격으로 전역 후에도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한다. 주인공처럼 참상을 겪은 이들에게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선진국에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 정신질환을 앓게 된 사람들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국내 참전자와 사고 생존자의 처지는 달랐다.

서해교전 생존자 권기형씨
우울증에 불면증까지 생사 건 싸움이었는데
아군 배 침몰했다고 패잔병 대하듯 하다니 …


서해교전 당시 북한군이 쏜 총탄에 왼손을 다친 권기형(26)씨. "신경질을 잘 내고 농담에도 언성을 높이곤 해요. 요즘도 가끔 심장이 쿵쾅거리고 잠을 잘 못잡니다. " 그는 지난해 5월 초기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북한 경비정에서 날아온 총알이 손을 관통한 것도 잊은 채 적군을 향해 총을 갈겼던 전투. 그때의 공포가 뇌리에 남아 아직도 권씨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당시 소총수였던 김택중(26)씨의 몸에는 북한군이 쏜 포탄 파편 9개가 박혀 있다. 하지만 더 괴로운 건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두려움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면 사고가 날 것 같아 초조해요. 걸어다녀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고요. " 본지가 접촉할 수 있었던 서해교전 생존자는 6명. 이들은 모두 PTSD 증세를 보였다. 특히 생사를 건 전투였지만 아군 고속정이 침몰했다는 이유로 패잔병 대하듯 하는 시선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교전수칙상 선제공격을 하면 안 됐어요. 가능한 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패전이라는 편견이 없어지면 좋겠어요. "(고경락씨)

취재팀은 북한 경비정을 침몰시킨 연평해전(1999년)의 참전자 7명도 찾아내 정신적 후유증 유무를 추적했다. 다친 적이 있는 3명만 '기억하기 싫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일 뿐 심각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임상심리학 박사 조용범씨는 "PTSD 환자는 자신의 행위를 사회가 인정하지 않을 경우 병세가 나빠진다"며 "국가.사회가 그들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치유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GP 참사 목격자 A씨
24시간 함께했는데 동료에 총격을 가하다니
그 X도 죽여버리고 싶어 원망과 미움에 성격 변해


연천 총기난사 사고의 생존자 A씨. 그의 일과는 주로 TV 시청이다.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 중 동료들에게 총격을 가한 김동민 일병의 이름이 나오자 눈빛과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그 ×× 때문에 죽었으니까 그 ××도 죽여버리고 싶죠. " 원망과 미움은 그의 성격을 폭력적으로 바꿔놓았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 내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참다 못해 야단을 친 날, A씨는 붙박이장을 주먹으로 부쉈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가라앉으면 '엄마 미안해'라고 해요. "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24시간 함께 지낸 동료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배신감은 A씨에게 불안감과 공포를 남겼다. "천장을 보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돼요. 그럴 땐 술을 마시는 수밖에 없죠. "

같은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문진환(23)씨는 사고 넉 달만에 몸무게가 14㎏ 늘었다. 사고 직후 병원에서 남이 남긴 음식을 먹어치우고, 간식으로 나온 우유 6개를 들이켜다 구토한 적도 있다. 지옥 같던 기억을 지우려 마구 먹어댄 것이다. 연천사고 생존 사병 24명은 전원이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 불면증과 악몽 등을 호소했다. "잠시라도 눈을 감으면 쓰러져 있던 동료들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떠올라요. "(신재희씨), "혼자 자는 게 무서워 어머니와 함께 잡니다." (최재욱씨)

가톨릭대 전태연(정신과) 교수는 "가까운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을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된다"며 "누적되면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참전 군인 이용웅씨
환갑이 다 됐지만 그때 악몽 아직도 생생
후유증 겪는 참전자 중 14%만 정신과 치료 받아


베트남전 참전자 이용웅(61)씨는 가끔 절을 찾아 자신이 사살한 베트콩 청년의 명복을 빈다. 전쟁은 끝났지만 환갑이 되도록 그는 후유증과 싸우고 있다.

"베트남에 다시 가는 꿈을 꾸다 깨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 옆에서 조금만 뒤척여도 깨는 바람에 아내와도 한 이불을 덮지 못했어. "

마음의 짐을 덜어보려 지난해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정신이상자라고 알려져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이런 사정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전쟁후유증에 대해 정부가 홍보만 해줬어도 이상한 사람 취급은 받지 않았을 텐테. 국가가 홍보물이라도 나눠줬으면 좋겠어. "

베트남전에서 무공훈장을 받은 박형원(62)씨는 자다가 일어나 총쏘는 시늉을 하다 말리는 아내에게 무의식 중에 주먹을 휘둘러 코뼈를 부러뜨린 적이 있다. 부인 장복환(61)씨는 처음엔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남편에게 풍끼가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귀신이 씌웠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굿을 한 적도 있다. 2002년 남편과 보훈병원을 찾아가서야 이런 증상이 전쟁후유증이란 걸 알게 됐다.

후유증 환자들은 대부분 치료 없이 방치되고 있다.

취재팀이 베트남전 참전자 205명을 조사한 결과, PTSD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은 181명. 이 중 14%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조기치료가 중요한데도 정부 대책이 거의 없다 보니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선 자료 요청하자 "통계 없다"

미국선 1989년 국립 치료센터 세워
<상> 그들은 아직도 전쟁 중

 

'마음의 총상'의 의학적 용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여기서 외상(外傷)은 신체적 손상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전쟁.천재지변.화재.사고 등 끔찍한 사건이 남긴 정신적 충격을 가리킨다. 1982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끔찍한 범죄를 경험한 피해자, 총을 쏴 사람을 사상하게 한 경찰관, 대형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 등에서도 나타나지만 주로 전쟁의 참상을 겪은 제대 군인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미국에는 제대 군인의 정신적 후유증을 치유할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귀향한 군인들의 사회 부적응이 이슈로 부각되면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결과다. 89년 국립 PTSD센터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호주의 경우 이 장애의 일종인 '전쟁 과민 증상'을 국가가 책임져야 할 후유증으로 보고 환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취재팀은 국방부에 PTSD를 겪는 전.현직 군인에 대한 자료 공개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28사단 사고(연천 총기 사고) 관련 14명임"이라고 밝혀왔다. 연천 사고 이전의 실태에 대해서는 공식 통계가 없는 것이다. 서해교전이나 베트남전 참전자들이 겪고 있는 후유증은 아예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국가보훈처에는 PTSD로 유공자에 선정된 경우가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보훈처 심사정책과 관계자는 "질환별로 통계를 내지 않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체계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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