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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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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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달숙 [isabel17] 쪽지 캡슐

2003-07-28 ㅣ No.8990

나에겐 숨겨진,   

아들이기도 하고... 연인이기도... 친구이기도... 한 청년이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지만, 처해 있는 환경도 전혀 다르지만,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한 달에 서너 장씩 어김없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내가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속마음과 일상의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 적어 띄우면

 

그는 더 없는 사랑으로 나를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었고

그렇게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서로에겐 기쁨과 의지가 되었더랬습니다.

 

그 곳의 특성상 편지는 3장을 넘길 수 없고 검열을 받아야 하지만

최대한 종이를 아껴가며 자세하게 일상의 얘기들을  

또박또박... 촘촘히..... 적은 그 글씨 하나하나로

그의 맑고 진솔하며 섬세한 영혼의  얼굴이 보여서요.

 

어제도 그의 편지가 왔습니다.

 

눈부시게 깔끔하게 생긴....

이목구비의 선이 단아하고 고운

앳띤 청년의 사진과 함께

내가 상상한 그 모습보다 얼마나 더 눈매가 영리하며 선하고 키가 커 보이는...

 

난  여행 때마다 찍은 사진들을 가끔 보내었지만...

그가 사진을 보내 주기는 처음이거든요.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길게 적어 보내 준 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보이기로 하고 사진을 보내 준다면서...

 

지난해에

재소자 수기 공모에서 입상한데 이어서

이 번엔

독후감 대회에서 3등을 했노라 는 기쁜 소식과 함께...

 

 

그 청년을 알게 된 것은

나로선 참으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요.

 

2년 전

가깝게 지냈던 본당 신부님이 인사 이동에 따라 먼 곳으로 떠나게 되어

밤마다 짐을 꾸려 주며

(신부님들은 독신이지만 5000권이 넘는 책에 간행물들...  

비디오,  테이프.... 등 옷가지나 가재 도구가 아닌 짐이 엄청 많지요.)

 

마지막으로

편지들을 정리하며

갑자기 손을 멈추고 말없이 한 참을 있다가

 

"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나... 어디를 가도 잊지 못할 겁니다.

  다음 오시는 신부님에게도 그렇게 해 드릴 수 있지요.

  그리고... "

 

" ....  ? "

 

" 바쁜 사람이라 이런 부탁 안 하려고 했는데...

  달리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

하며 한 통의 편지를 내밀며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다 읽기를 기다려

" 2~3년 전 신문에 대서특필로 보도된 사건인데

  술주정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말리다가 그만

  아버지가 숨을 거두는 바람에....

  여성 단체 등에서 들고 일어나서 진정서를 넣고 세간을 떠들석하게했던...

  지금..  무기에서 20년형을 살고 있는 바로 그 청년입니다. "

 

놀라움에 망연히 바라보는 나를

눈물어린 눈으로 힘주어 마주 바라보며

 

" 제가 돌아올 때까지 이 청년을 돌봐 주세요.

  제게 해주셨듯이 그런 한결 같은 맘이라야 합니다.

  이 청년은 바로 제 분신입니다.

  그럴 수 있지요 ?

  약속해 주십시오. "

 

나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머리를 끄떡였습니다.  몇 번이고....

 

신부님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들어서 잘 알지요.

 

그 신문지상에 보도된 사건도 읽어서 잘 알지요.

 

세상에...

이 무슨 우연이란 말입니까?

 

이어진 신부님의 자세한 이야기는

2~3년 전에 교도소에 종교 교육 강연을 하루 맡은 적이 있답니다.

 

무슨 말을 해야 그들에게 공감을 얻는단 말인가..??

 

고민한 끝에

불우했던,,,  

인간 승리의 드라마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기로 맘먹고

만 명이 넘는 그 사람들 앞에 섰답니다.

 

신부님은

바닷가 부유한 집안의 귀한 막내아들로 태어나 세상 물정 모르고 흥청망청하며

인생과 가산을 탕진한 끝에

술주정과 가정폭행,  노름,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 덕에

달동네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도맡아

아버지의 폭행을 받아내고

노름빚,  술빚을 갚아야하며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초등 6학년에서부터 막노동판 돈벌이에 나선....

 

그래서

고등학교도 갈 수 없는 처지였지만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야간 공고를 들어가서

낮에는 막노동판과  낙동강 바닥 개펄에서 낚시 미끼용 갯지렁이를 잡고

밤에는 학교를 다닌 끝에

1등 졸업생으로 국내 최고의 전자 회사에 들어갔으나

 

어느 날

피곤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서는데

술에 만취한 아버지가

안 그래도 임신 중에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너무 두들겨 맞아서인지

심장과 여러 가지가

허약하게 태어난 동생을 두들겨 패서

그 동생이 거품을 물고 혼절해 버리는 걸 목격하자

그만 눈이..  뒤집혔답니다.    

 

" 아버지고 뭐고....  이젠 다 죽자!! "

하고 부엌에서 칼을 들고 아버지를 향해 뛰어 들어가는데

앞을 막아서며 울부짖는 어머니 때문에....

 

" 나부터 죽여라..  내 너 하나 바라고 참고 살았는데.... "

 

칼을 내던졌답니다.

그리고는

산으로 뛰어가서

하루 종일을 울다가 지쳐 잠들고....

 

하느님을 원망했답니다.

 

당신 정말  있느냐고....

무슨 원수가 졌기에 내게 이러느냐고.....

........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나

사제가 되기로 했답니다.

카톨릭 신부가 되어 억눌리고 불쌍한 영혼을 찾아 나서는 ....

 

그래서

다니던 회사,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그 회사를 사표 내고

다시 막노동판과,  야간창고경비,  개펄에서 지렁이 잡기......

조금이라도 돈이 더 되는 일은 무엇이나 했답니다.

잠은 하루 2~3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고

 

오로지

이를 악물고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그 전에 아버지의 빚을 갚고

동생들을 고등학교 까지만 이라도 공부시켜 놓기 위해서....

 

그렇게 7년을 보낸 끝에

드디어 빚을 다 갚고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취업이 되는 날

 

어머니 앞에 무릎 꿇고

신학대학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 너 하나 바라고 산 난데....  니가 떠나면 나는 이제 어찌 살라고.... "

하며 하염없이 우셨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위대했습니다.

 

며칠 후

그 동안 고생 많았고  고마웠다며

내가 이제  너를 위해 기도해 주마, 하시며

받아들이시는데 더 눈물이 났답니다.

 

막상 책을 잡으니 캄캄할 수밖에 없었고

그 동안 막노동과 너무 무리한 노동으로 몸은 만신창이에

그 당시는

성적이 매우 우수한 아이들만이 합격이 가능했던 광주 카톨릭 신학대학을

오로지 독학으로....

인간 승리의 기적으로

27살의 나이에 그 문을 넘은 신부님이었습니다.

 

그 청년 또한 그랬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응석받이 귀한 아들이었지만

가신을 탕진하자  정신파탄자가 되어

가족을 매일 같이 폭행하고

술 마시고  외도하고....

그런 아버지 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어머니의 가출로 모든 집안 일을 도맡은 이 아이는

학업을 포기하고

어린 두 동생

그 중 막내는

태아 때 어머니가 상습적 폭행에 시달린 원인인지

심장병과 우울증이 있는 허약한 아이인데

그 동생의 병원비에 약값까지 떠맡아 거두며

막노동판과 야간에는 술집 웨이터 등으로

살얼음판을 걷는데

 

어느 날   

아버지와 내연의 관계에 있는 여인이 달려와서 퍼부었습니다.

니 아버지가 내 집에서 장사도 못하게 행패 부리니 당장 데려 가라고...

 

이웃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아이는

아버지를 데려 올 양으로 갔지만

아버지는 외려 아이를 두들겨 패며

기물을 부수고 난리를 부리는 바람에

아버지를 밀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그야 말로 한 순간이

 

어린 동생들을

아버지의 무능과 폭력으로부터 지키고

떠나 버린 엄마의 자리를 메우고....

20살 어린 나이에

모두가 내팽개친 십자가를 거두어 짊어지고자 했던

그 청년은

이렇게 해서....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신부님의 그 고백을 들으며 청년은 소스라쳐 놀라

그 시간 후 전혀 다른 세상에 놓여 버렸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로 몸부림치며

두 세사람만 모여 있기만 해도 마치 자기 욕을 하는 것만 같아

사람만 보이면 주먹이 나르고 기물을 내던지고 하여

온 몸이 포승에 묶인 채 독방에 감금되기까지 하던  그 아이는

커다란 충격에 쌓이어서...  

그 신부님을 잊을 수 없어서

교도관들에게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고 하여 편지를 보냈습니다.

 

’’ 당신에게 라면

  신부님이시라면...  나 모든 걸 말할 수 있겠습니다. ’  하고요.

 

신부님 또한 그 편지를 받아 들고

온 몸이 얼어붙는 전율 속에 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기도했답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청년을 제게 보내 주심에....

  제가 기다린 오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렇게 두 사람은...

너무도 비슷한 상황에서 인생역정이 달라진

서로의 분신을 바라보며 2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답니다.

 

신부님의 말대로

바로 어머니가 곁에 있었고 없었고 에 따라 뒤바뀐 상황....

 

어머니의 역할에 의해

너무도 달라져 버린....  

그러나 똑 같은 두 사람,...

 

 

편지를 다시...

봉투의 주소만 받아 적고 한사코 가지라는데 돌려주면서

 

" 절대  잊지 않을게요.  

  나 어떤 일을 미루고 못해도 이 편지 답장만은 정성을 다할게요. "

 

 

그렇게 시작된 아이와의 편지에서

나는 나를 모두 다 열어 보이기로 했습니다.

 

 

나의 가족사항,  일상의 모든 것을 일기를 쓰듯이 적어 보내고

 

그 아이도 그랬습니다.

작은 심경의 변화 하나하나...

 

돌아 온 어머니를 그럴 수 없이 사랑하고 있고

아버지에게 자신의 패륜을 용서해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읽은 책

열심한 신앙생활과  나보다 더 깊은 묵상을 하고 있는 글들...

 

동료간의 어려움과 몸이 아팠을 때도...

그리고 전자 오르간을 배워 특별한  시간엔

사람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맡은 것이나

어쩌면.. (총명함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갈 것 같다는 얘기

 

정말

놓쳐 버린 공부를 이제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해보리라고....

 

얼마 전에

나의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얘기하며

말린 풀꽃과 함께 보낸 편지의 답장에

 드디어....   사진을 보내 온 겁니다.

 

사진을 확대 프린트, 코팅해서 내 책상 위에 올리고

빙글빙글 춤이라도....  뛰어 오르며 노래라도 목청껏 부르고 싶은....

 

이 아이는  

바로 내 아이입니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보여 주고 싶지도 않고

나 혼자 몰래 들여다보며 내 모든 걸 갖다 바치고 싶은,

나의 연인이요.  아들입니다.

 

이제 이 아이의 소원은

신문 보도를 보고 울며불며 가슴을 치며 돌아온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범수가 되어 조금이라도 일찍 출소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단 하루라도 행복한 밤을 보내고 싶답니다.

 

나는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고 곁에 있고 싶습니다.

 

바로

어머니가 곁에 있었고 없었었고 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을 걷게 된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요.

 

그 시간까지

하느님 허락하신다면

하느님 보시기에 부족한 저지만 제 원을 들어주신다면

내가 그 아이의 곁에 꼭 있고 싶습니다.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그 날까지 만이라도.....

 

 

            *            *            *

 

위의 내용은 실제 이야기 입니다.

제 혼자 알고 있기엔 아까워서 망서려지지만 올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저와 함께 이 청년을 위해 편지와 책을 보내 주고

사랑을 아끼지 않는... 제 친구에게도 고마움을....

 

지금 이아이는 작년 부활절 때 요한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도 아이의 바램대로 모두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꿋꿋하게 살아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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