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정직’을 기초로 해서 세워진 제도다. 모든 국민이 직접 나라 운영에 참여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 현실이 정직을 민주주의 존립의 전제 조건으로 만들었다.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표와 그에게 국정을 위임한 국민을 연결시켜 주는 첫 번째 고리가 정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이래 정직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실제로 정직한 사회는 평화롭고 번영하지만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회는 발전이 뒤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정직한 나라로 꼽히는 독일이나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는 민주주의와 경제면에서 앞서고 있는 반면 정직하지 못한 사회는 민주주의나 경제발전 모두 다른 나라에 뒤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거짓말은 크게 ‘정치인의 거짓말’과 ‘언론의 거짓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특히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 장관 청문회를 보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 정직한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떼서 국민의 빈축을 사고 있다. 

유체이탈 화법도 거짓말, 대통령부터 풀어야

우선 대통령 자신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자신은 몰랐다는 말을 언제까지 되풀이 할 것인가? 그 말을 믿는 국민이 몇 사람이나 된다고 믿는가? 일부러 사실(팩트)을 다르게 말하는 것만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침묵하는 것도 질문의 핵심을 답하지 않고 말을 둘려서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도 거짓말에 속하는 것이다. 적어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적 발언에서는 국민이 그렇게 해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달 23일 밤 서울광장에서 전국 15개 천주교 교구의 정의구현사제단 사제 3백 여 명과 일반신도 합해서 5천 명이 참석한 국정원 해체 시국미사가 열렸다. 한국 가톨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의미가 큰 집회였다. 70년대 유신 체제 때 천주교 사제들이 벌인 반독재 인권미사를 연상시켰다. 조중동이나 방송이 미사 보도를 묵살한 것은 물론이고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이 행사를 보도한 신문이 거의 없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될 중요한 사건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춘수 신부(마산교구)는 강론에서 인터넷 선거 여론조작, 수사 과정에서의 증거 삭제, NLL 대화록 공개, 진보정당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 뒤집어씌우기, 검찰총장 흔들기 등 국정원의 계속되는 공안사건을 열거하며, “국정원은 이제 온 국민이 걱정하는 ‘걱정원’이 돼버리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강론 내용은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나  검찰이 앞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이며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모르겠으나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국민은 정의구현사제단이 말하는 사실을 믿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은 늦기 전에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판 워터게이트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민주주의 또 하나의 암적인 존재 ‘언론의 거짓말’

하춘수 신부는 “대통령 선거과정에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인 공작을 전개함으로써 민의를 왜곡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상상조차 못했던 불법의 자행에 우리 모두 경악하였다. 심지어 근소하게 엇갈린 결과마저 사전에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들마저 끊이지 않고 있다. 믿을 수 없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개탄하며 전국 15개 교구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뜻을 모아 시국선언을 발표한 것은 한국천주교회 역사상 초유의 일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는지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갈파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지하게 강론의 의미를 반추하기 바란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박근혜 정부의 장관 지명자들은 대다수가 이런저런 부패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하는데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한국 민주주의가 그만큼 타락했다는 증거다.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걱정하게 한다.

한국 민주주의를 타락시키는 또 하나의 암적 존재가 언론의 거짓말이다. 언론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맡은 환경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정치권력 경제 권력과 공모하고 민주주의를 육성 발전시키기는커녕 권력의 하수인 내지, 공법으로 타락해서 권력을 위해 거짓말 보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익과 신자유주의의 하수인 또는 공범으로 행동하고 정치적 경제적 대가를 거둔다. 언론은 이제 권력일 뿐 아니라 더 이상 다른 권력을 견제하는 제4권력이 아니다. 정치권력 자본과 유착해서 제1권력으로 행세한다. 견제할 권력이 없는 제1권력이다. 상황에 따라 ‘언론 폭력’으로 변신했다. 민주언론을 포기한 언론은 민주주의의 적이 되고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자유의 적이 된다. 영국에서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 언론재벌 머독그 모델이다.

이번에 조선일보는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심리전단 70명을 조직해서 댓글을 단 국정원의 행동을 선거개입으로 고소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 자식’이 있다고 보도해서 박근혜 정부가 그를 ‘찍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언론들은 보고 있다. 권력과 협력하거나 하수인 역을 할 뿐 아니라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을 미리 ‘찍어내는’ 작전에도 바람잡이 역할을 감수했다는 것이다. ‘언론 쿠데타’라는 것이다.

앞으로 언론의 가면을 쓴 ‘언론 폭군’을 어떻게 견제할 것이며 그런 어려운 여건에서 어떻게 언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냐가 민주사회 언론인의 새로운 고민이며 과제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