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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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책을 든다.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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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06-22 ㅣ No.5026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마태오 7장 1-5절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성가책을 든다. 실시!>

 

언젠가 소년원에서 아이들과 성가연습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성가를 지도하는 수사님께서는 따뜻한 봄날 오후, 그리고 폐쇄된 울타리 안에 생활하는 아이들, 등등의 상황을 고려해서 흥겹고 신나는 생활성가곡들만 뽑아서 연습을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가는 성가였습니다. 다들 전혀 협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도하시는 수사님 혼자만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2층 개신교방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찬송가 소리를 들으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너희들 도대체 여기 왜왔어? 이왕 왔으면 협조를 해야지 협조를...수사님 혼자만 목이 터져라 노래부르고, 너희는 잡담하고 있고 이래서 되겠어? 성가책을 든다. 실시! 성가책을 자기 눈앞 30cm 앞에 갖다 댄다. 실시! 열심히 따라 부른다. 실시! 안 따라 하는 사람들 두고 볼거야!"

 

화가 잔뜩 난 제 얼굴을 확인한 아이들은 그제야 마지못해 성가책을 들고 흐느적흐느적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협조하지 않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끝까지 성가책을 펴지 않은 채 하릴없이 앉아만 있었습니다.

 

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사정없이 야단을 쳤었지요. "너! %$#@*&^%$같은 녀석아!"

 

"오늘 내가 이거 너무 오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니 아이는 이미 잔뜩 주눅이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목소리 톤을 낮추고 차근차근히 이해가 되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딱 한마디 말에 저는 완전히 찌그러 들고 말았습니다.

 

"신부님, 죄송한데요...사실은 제가 성가책을 안 들으려고 안 든 게 아니라, 제가 아직 글자를 읽을 줄 몰라서요."

 

그 순간 저는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찌그러들어 아이에게 솔직히 사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그랬구나. 정말 미안하다. 네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구나."

 

그 작은 사건은 제 삶을 총체적으로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말로만 육화니 겸손이니 하면서 상처 입은 아이들 사이로 깊숙이 내려가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 아이들이 안고 살아온 그 아픈 상처를 발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었고, 어루만져주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제 입장에서 제 시각으로 함부로 판단했음을 진심으로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이웃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판단, 단죄의 삶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대 잘나가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렇게 목숨걸고 판단하던 창녀들이나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온 여인도 결코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공공연하게 중죄인 취급당하던 세리들이나 나환자들도 절대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십자가 오른편에 매달려있던 사형수조차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단죄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삶입니다. 아무리 막가는 사람, 아무리 막 되먹은 사람,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예수님 앞에서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과 위로, 용서의 대상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함부로 이웃들을 판단하지 않는 삶이면 좋겠습니다. 이웃의 과실 앞에서 예리한 지적도 필요하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말못할 상황도 생각해주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웃이 아무리 부족해 보이더라도 그 나름대로는 잘해보려고 최선을 다해서 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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