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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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관련된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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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4-02-11 ㅣ No.6457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세계 병자의 날, 루르드의 복되신 성모 마리아 기념일)-마르코 7장 14-23절

 

"참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고통과 관련된 신앙고백>

 

오늘은 루르드의 복되신 성모 마리아 기념일이자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언젠가 루르드에 잠시 들렀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간마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성가 "아베마리아", 성모상 앞에 초를 하나씩 봉헌하고 열렬히 기도하던 그 많은 사람들, 통증을 겨우 겨우 참아내면서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유럽전역으로부터 구름처럼 몰려들던 환자들, 그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번민, 슬픔과 눈물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굽어보시던 성모님...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만날 때 마다 늘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께서 어찌 그리 무시무시한 병고를 우리에게 주시는지?" 하는 물음이지요.

 

이 짧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안 아프고 한 평생 살다 고이 떠나면 정말 좋을텐데, 몹쓸 병에 걸리고, 투병생활 하느라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다가 처참한 모습으로 이승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의아해합니다.

 

특별히 투병 중인 아이들을 바라볼 때 마다 너무나 안타까워 할 말을 잊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몹쓸 병에 걸린 아이들 역시 건강한 아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만화책을 보면서 까르르 웃고, 장난도 잘 치고, 유행가도 곧잘 부르고 춤도 제법  춥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언제나 죽음과 직면해서 싸워야 하는 아이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어디가 아프냐는 듯 병실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헤헤거리고 웃던 아이들이 어느 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의 허탈감이나 서러움, 충격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병고를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파악하기란 진정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고통, 특히 의인의 고통, 이유 없는 고통에 대한 의미추구는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극심한 고통 그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할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겪는 고통을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린토 후서 4장 16-18절)

 

우리가 마음을 바꿔먹는다면,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재산 손실이나 모략과 욕설, 추방, 병고, 고문, 모든 사람들이 최악이라고 간주하는 죽음조차도 우리에게 이득이 됩니다.

 

오늘 하루 고통 앞에 설 때 마다 바오로 사도의 "고통과 관련된 신앙 고백"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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