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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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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7-15 ㅣ No.148315

2021년 7월 15일 목요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11,28-30)

   

 

1독서<나는 있는 나다.>(탈출3,13-20)

그 무렵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곧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16 가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모아 놓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그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17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18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19 그러나 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20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화답송 시편 105(104),1과 5.8-9.24-25.26-27(◎ 8ㄴ 참조)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을 찬송하여라그 이름 높이 불러라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주님은 당신 백성을 크게 늘리시어그들의 적들보다 강하게 만드셨네저들의 마음을 바꾸시어당신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고당신 종들에게 간계를 부리게 하셨네

○ 그분이 당신 종 모세와몸소 뽑으신 아론을 보내시니저들 가운데에서 그분의 표징들을함족 땅에서 이적들을 일으켰네

 

복음<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마태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3,13-20)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4-15)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라고 번역된 '마 셰모'(ma shemo)에서 '이름'을 뜻하는 '솀'(shem)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솀'(shem)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사람을 부르는 데에만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성격이나 신분 또는 운명등을 반영하였다(창세17,5.15; 32,28).

따라서 과거 사람들은 그 이름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았으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다(창세14,22; 16,13; 17,1).


창세기 14장 2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신 주님'으로, 창세기 16장 13절에서는 하가르가 '저를 돌보시는 하느님'으로, 창세기 17장 1절에서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전능한 하느님'으로 소개하고 불렀다.

이런 이름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한편 고대 근동의 임금이나 군주들은 사신을 보낼 때, 그 사신에게 자신의 권위를 전적으로 위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이 담긴 인장을 주거나 아니면  그 인장이 찍힌 편지를 주었다. 모세는 이러한 차원에서 하느님의 신임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있는 나다'

 

'나는 있는 나다'의 원문은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ehye asher ehye)이다. '에흐예'(ehye)는 '있다'(창세1,2)라는 뜻의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haya)의 1인칭 미완료형으로 '나는 존재한다'(I am) 또는 '나는 ~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셰르'(asher)는 'that, which, what, who' 등과 같은 관계대명사이다.  '~것', '~자'의 의미로, 뒤에 나오는 문장을 묶어 앞뒤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에서 동사의 미완료형은 완료되지 않은 동작이나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시간 개념처럼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묵시1,4.8).

 

이것은 결코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고 무엇인가 앞선 원인에 의해서만 존재하면서 또한 그 원인에 의해서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여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시며, 따라서 모든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우시고 나아가 다른 모든 피조물이 존재할 수 있는 궁극적 원인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의 유일한 자존성(自存性)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여타 피조물과 비교할 때, 당신의 고유한 본질과 성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자존성을 나타내는 칭호를 당신의 이름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것은 초월적 절대자로서 모든 인과(因果) 법칙을 초월하셔서 자존하시는 분으로서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여타 모든 피조물들의 궁극적 근거와 기반이 되시는  하느님의 자존성(自存性)과 영원성(永遠性)과 절대성(絶對性)을 그대로 반영한 이름이다.

 

또한 이 이름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자존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타 모든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거짓 신들임에 비하여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에흐예'(ehye)라는 말에서 유래된 '야훼'(주님)이란 이름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계약 관계를 나타낼 때 많이 사용되었다.

즉 절대 초월자이신 하느님께서 각 계약을 체결하시고, 그 계약들의 신적 기원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계약들이 영원한 하느님처럼 절대 불변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본문만을 보고, 하느님의 이름이 이때 모세에게 '에흐예'(야훼)로 비로소 처음 계시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창세기 2장 4절의 창조 기사에서부터 이 이름이 발견되며, 더군다나 창세기 4장 26절에서는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사실 즉 공식적인 예배가 드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탈출기 3장 14절과 15절은 지금 계시를 주시는 분이 영원히 자존하시는 주님 ('에흐예'; 야훼)이심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는 의미를 가지며, 그 이름의 진정한 뜻에 대한 신적 해석이 비로소 이때 온전하게 알려졌음을 드러낸다.


2021년 7월 15일 목요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11,28-30)

   

 

1독서<나는 있는 나다.>(탈출3,13-20)

그 무렵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곧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16 가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모아 놓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그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17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18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19 그러나 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20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화답송 시편 105(104),1과 5.8-9.24-25.26-27(◎ 8ㄴ 참조)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을 찬송하여라그 이름 높이 불러라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주님은 당신 백성을 크게 늘리시어그들의 적들보다 강하게 만드셨네저들의 마음을 바꾸시어당신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고당신 종들에게 간계를 부리게 하셨네

○ 그분이 당신 종 모세와몸소 뽑으신 아론을 보내시니저들 가운데에서 그분의 표징들을함족 땅에서 이적들을 일으켰네

 

복음<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마태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3,13-20)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4-15)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라고 번역된 '마 셰모'(ma shemo)에서 '이름'을 뜻하는 '솀'(shem)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솀'(shem)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사람을 부르는 데에만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성격이나 신분 또는 운명등을 반영하였다(창세17,5.15; 32,28).

따라서 과거 사람들은 그 이름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았으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다(창세14,22; 16,13; 17,1).


창세기 14장 2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신 주님'으로, 창세기 16장 13절에서는 하가르가 '저를 돌보시는 하느님'으로, 창세기 17장 1절에서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전능한 하느님'으로 소개하고 불렀다.

이런 이름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한편 고대 근동의 임금이나 군주들은 사신을 보낼 때, 그 사신에게 자신의 권위를 전적으로 위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이 담긴 인장을 주거나 아니면  그 인장이 찍힌 편지를 주었다. 모세는 이러한 차원에서 하느님의 신임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있는 나다'

 

'나는 있는 나다'의 원문은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ehye asher ehye)이다. '에흐예'(ehye)는 '있다'(창세1,2)라는 뜻의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haya)의 1인칭 미완료형으로 '나는 존재한다'(I am) 또는 '나는 ~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셰르'(asher)는 'that, which, what, who' 등과 같은 관계대명사이다.  '~것', '~자'의 의미로, 뒤에 나오는 문장을 묶어 앞뒤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에서 동사의 미완료형은 완료되지 않은 동작이나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시간 개념처럼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묵시1,4.8).

 

이것은 결코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고 무엇인가 앞선 원인에 의해서만 존재하면서 또한 그 원인에 의해서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여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시며, 따라서 모든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우시고 나아가 다른 모든 피조물이 존재할 수 있는 궁극적 원인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의 유일한 자존성(自存性)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여타 피조물과 비교할 때, 당신의 고유한 본질과 성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자존성을 나타내는 칭호를 당신의 이름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것은 초월적 절대자로서 모든 인과(因果) 법칙을 초월하셔서 자존하시는 분으로서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여타 모든 피조물들의 궁극적 근거와 기반이 되시는  하느님의 자존성(自存性)과 영원성(永遠性)과 절대성(絶對性)을 그대로 반영한 이름이다.

 

또한 이 이름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자존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타 모든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거짓 신들임에 비하여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에흐예'(ehye)라는 말에서 유래된 '야훼'(주님)이란 이름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계약 관계를 나타낼 때 많이 사용되었다.

즉 절대 초월자이신 하느님께서 각 계약을 체결하시고, 그 계약들의 신적 기원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계약들이 영원한 하느님처럼 절대 불변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본문만을 보고, 하느님의 이름이 이때 모세에게 '에흐예'(야훼)로 비로소 처음 계시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창세기 2장 4절의 창조 기사에서부터 이 이름이 발견되며, 더군다나 창세기 4장 26절에서는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사실 즉 공식적인 예배가 드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탈출기 3장 14절과 15절은 지금 계시를 주시는 분이 영원히 자존하시는 주님 ('에흐예'; 야훼)이심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는 의미를 가지며, 그 이름의 진정한 뜻에 대한 신적 해석이 비로소 이때 온전하게 알려졌음을 드러낸다.



2021년 7월 15일 목요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11,28-30)

   

 

1독서<나는 있는 나다.>(탈출3,13-20)

그 무렵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은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곧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16 가서 이스라엘 원로들을 모아 놓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고그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너희를 찾아가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살펴보았다.

17 그리하여 이집트에서 겪는 고난에서 너희를 끌어내어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18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너는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함께 이집트 임금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셨습니다그러니 이제 저희가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주 저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여라.

19 그러나 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20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화답송 시편 105(104),1과 5.8-9.24-25.26-27(◎ 8ㄴ 참조)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을 찬송하여라그 이름 높이 불러라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주님은 당신 백성을 크게 늘리시어그들의 적들보다 강하게 만드셨네저들의 마음을 바꾸시어당신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고당신 종들에게 간계를 부리게 하셨네

○ 그분이 당신 종 모세와몸소 뽑으신 아론을 보내시니저들 가운데에서 그분의 표징들을함족 땅에서 이적들을 일으켰네

 

복음<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마태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3,13-20)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4-15)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라고 번역된 '마 셰모'(ma shemo)에서 '이름'을 뜻하는 '솀'(shem)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솀'(shem)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사람을 부르는 데에만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성격이나 신분 또는 운명등을 반영하였다(창세17,5.15; 32,28).

따라서 과거 사람들은 그 이름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았으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다(창세14,22; 16,13; 17,1).


창세기 14장 2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신 주님'으로, 창세기 16장 13절에서는 하가르가 '저를 돌보시는 하느님'으로, 창세기 17장 1절에서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전능한 하느님'으로 소개하고 불렀다.

이런 이름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한편 고대 근동의 임금이나 군주들은 사신을 보낼 때, 그 사신에게 자신의 권위를 전적으로 위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이 담긴 인장을 주거나 아니면  그 인장이 찍힌 편지를 주었다. 모세는 이러한 차원에서 하느님의 신임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있는 나다'

 

'나는 있는 나다'의 원문은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ehye asher ehye)이다. '에흐예'(ehye)는 '있다'(창세1,2)라는 뜻의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haya)의 1인칭 미완료형으로 '나는 존재한다'(I am) 또는 '나는 ~이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셰르'(asher)는 'that, which, what, who' 등과 같은 관계대명사이다.  '~것', '~자'의 의미로, 뒤에 나오는 문장을 묶어 앞뒤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에서 동사의 미완료형은 완료되지 않은 동작이나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시간 개념처럼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묵시1,4.8).

 

이것은 결코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고 무엇인가 앞선 원인에 의해서만 존재하면서 또한 그 원인에 의해서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여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시며, 따라서 모든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우시고 나아가 다른 모든 피조물이 존재할 수 있는 궁극적 원인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의 유일한 자존성(自存性)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여타 피조물과 비교할 때, 당신의 고유한 본질과 성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자존성을 나타내는 칭호를 당신의 이름으로 삼으신 것이다.

 

이것은 초월적 절대자로서 모든 인과(因果) 법칙을 초월하셔서 자존하시는 분으로서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여타 모든 피조물들의 궁극적 근거와 기반이 되시는  하느님의 자존성(自存性)과 영원성(永遠性)과 절대성(絶對性)을 그대로 반영한 이름이다.

 

또한 이 이름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자존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타 모든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거짓 신들임에 비하여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에흐예'(ehye)라는 말에서 유래된 '야훼'(주님)이란 이름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계약 관계를 나타낼 때 많이 사용되었다.

즉 절대 초월자이신 하느님께서 각 계약을 체결하시고, 그 계약들의 신적 기원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계약들이 영원한 하느님처럼 절대 불변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본문만을 보고, 하느님의 이름이 이때 모세에게 '에흐예'(야훼)로 비로소 처음 계시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창세기 2장 4절의 창조 기사에서부터 이 이름이 발견되며, 더군다나 창세기 4장 26절에서는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사실 즉 공식적인 예배가 드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탈출기 3장 14절과 15절은 지금 계시를 주시는 분이 영원히 자존하시는 주님 ('에흐예'; 야훼)이심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는 의미를 가지며, 그 이름의 진정한 뜻에 대한 신적 해석이 비로소 이때 온전하게 알려졌음을 드러낸다.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우리 삶의 멍에그 십자가를 져야하는 것 맞다그러나

(마태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하늘과 땅의 주님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창조주 하느님의 뜻을 피조물인 사람의 뜻으로 받으면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감추어지게 되는 것.

 

(1코린1,21-24)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그리스도곧 십자가의 대속그 죽음그 의로움이 구원의 힘이며 진리지혜인 것.

 

26 그렇습니다아버지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ㄱ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시편44,12) 당신(하느님)께서 저희를 잡아먹힐 양들처럼 넘겨 버리시고 저희를 민족들 사이에 흩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적대자들에게 넘기신 것.

 

(아모6,8) 주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걸고 맹세하셨다주 만군의 하느님의 말씀이다. “나는 야곱의자만을 역겨워하고 그 성채를 싫어한다나는 성읍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넘겨 버리리라.”

이스라엘(야곱)이 하느님의 지혜가 아닌 사람의 지혜로세상 것을 위한 신앙생활을 살기에 적대자들에게 넘겨지는 것,

 

(이사10,5-6) 5 불행하여라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6 나는 그를 무도한 민족에게 보내고 나를 노엽게 한 백성을 거슬러 명령을 내렸으니 약탈질을 하고 강탈질을 하며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처럼 짓밟게 하려는 것이었다.

강대국의 힘을 하느님의 진노의 매로 쓰신 것,

그런데 예수님은 ~

(루가24,7)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늘의 생명평화 그 복을 주러 왔다하시니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적대자로마의 손()에 넘겨 그 힘을 통해 죽인 것그 예수님께서 이스라엘과 적대자그들 모두의 죄를 다 넘겨 받으시고그들의 죗값으로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는곧 하느님의 용서의 권한을 넘겨 받으셨다는 것.

 

(로마4,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기 위한 것바오로 사도가 불륜을 저지른 자에게 죽음의 판결을 내려야 함을 강하게 말했을 때~

 

(1코린5,4-5) 4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이제 여러분과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5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죽였다 다시 살리시기 위해 적대자에게 넘기시는 그 하느님의 뜻그 마음을 인간이 어떻게 깨달아 믿을 수 있겠는가~

 

27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또 아들 외에는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지혜도덕과 윤리로 무거운 짐이 되어 고생하는 이는 모두 다시 배워라 하시는 것,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의 멍에십자가그 예수님의 십자기를 메면 안식을 얻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 죄를 대속한 내 십자가라는 것그것이 구원의 진리라는 것을 다시 배워라그러면 그 예수님의 멍에대속의 십자가가 주는 하늘의 용서를 깨달아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신 것.

물론 우리 삶의 멍에그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 맞다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그러나 그 현실의 먼에를 메는 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는 다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곧 그리스도 신앙이 아닌 헛된 신앙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길이 생명의 진리라 하시며 *‘아무도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쟎은가~(요한14,6참조)

그 예수님과 하나 되는곧 예수님의 멍에(십자가)를 내 십자가로 메면믿으면 하늘의 용서로 하늘의 안식을 살게 되는 것.

 

(로마6,6) 우리는 압니다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아멘.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복음(마태11,28~30)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28~30)

 

'고생하고'로 번역된 '코피온테스'(kopiontes)는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지치다', '감정적으로 용기를 잃고 낙담하다'는 뜻을 가진 '코피아오'(kopiao) 현재분사 2인칭 복수 호격이다.

 

희랍어에 있어서 분사형이 진행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한 번 낙담하거나 지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 지치고 낙담 중에 있는 사람들아'라는 뜻이다.

 

그리고 '짐은 진 너희는'으로 번역된 '페포르티스메노이'(pephortismenoi) '남에게 어떤 짐을 지우다'라는 뜻의 '포르티조'(photizo)의 현재 완료 수동 분사 2인칭 복수 호격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무거운 짐이 지워진 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지워진 짐은 무엇인가?

그 짐은 일차적으로 바리사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요구한 무거운 율법적 관행들(마태23,4)이며, 더 나아가 '마귀들의 꾐에 넘어가 지은 죄의 짐'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란 당시 로마의 압제 속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낙담한 사람들이며, 당시 종교적 관행이 요구한 율법의 짐과 마귀들의 꾐에 넘어가 지은 죄의 짐 사이에서 눌려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편,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에서 '안식을 주겠다'에 해당하는 '아나파우소'(anapauso)는 '쉬게 하다','영적인 휴식을 주다',  '안식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나파우오'(anapauo)에서 유래했다.

 

특히 '아나파우오'에서 유래한 명사 '아나파우신'(anapausin)은  '쉼'이라는 뜻인데, '안식'과 동의어이다(히브3장,4장).

 

그리고 '내가'에 해당하는 '카고'(kago)는 '카이'(kai; and) 1인칭 대명사인 '에고'(ego)의 복합어로서, '그러면 내가'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인칭대명사를 사용한 것은 동작의 주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어의 뉘앙스를 살리면,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오는 지치고 피곤한 죄인들에게 '쉼'을 주시겠다는 강한 의지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쉼'(안식)은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인데, 현재적인 '쉼'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의미한다(히브3,18~4,11; 묵시14,13).

 

그리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태11,29)에서 '온유'로 번역된 '프라위스'(prays; gentle meek) '친절하고 너그러운 태도'를 가리키며(마태5,5), '겸손'으로 번역된 '타페이노스'(tapeinos; humble; lowly) 높아짐과 반대인 '낮아짐'(야고1,10), 심지어 지위와 신분을 낮춘 '비천함' (2코린7,6), 혹은 자신을 일부러 낮추는 '겸허','겸비'(2코린10,1)를 나타낸다.

 

이것을 종합하여 반영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친절하고 너그러운 마음가짐과 일부러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자세를 가졌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고난받는 인자(人子)의 모습 취하셨고(이사42,2.3; 53,1.2), 모든 권세를 받으신 만왕의 왕이셧으나 동시에 종이 되어 오셨으며, 높은 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종으로서의 삶을 사셨다. 그리고 당신 제자들에게도 그런 삶을 요구하셨다(마르10,43.44).

 

예수님께서는 낮고 비천한 자리에서 지치고 피곤한 자들에게 '눈높이 교육'을 하기위해 자신을 낮추셨으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비천한 자리로 내려오셨던 것이다.

 

'진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30)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 for)로 시작되는 본문은 '주님의 멍에를 메고 그에게 배우면 왜 마음에 안식(쉼)을 얻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혀 주는 이유 부사절이다.

그 이유는 주님의 멍에는 편하고 그의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문은 '내 멍에는 편하고'의 전반부와 '내 짐은 가볍다'의 후반부가 동의적 평행 대구로 나열된 형태인데,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뜻이다.

 

여기서 '멍에'로 번역된 '쥐고스'(zygos; yoke)는 가축이 짐수레를 효과적으로 끌 수 있도록 목에 씌우는 것을 가리키며, '짐'에 해당하는 '포르티온'(phortion)은 주로 배에 싣는 무거운 짐(burden)을  가리키는데(사도27,10), 여기서는 둘 다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 '짐'은 율법학자들을 비롯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지운 무거운 종교, 의식적 행위들을 가리킨다(마태23,4; 루카11,46).

또한 '멍에' 역시 유대주의자들이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까지 강요한 무거운 율법적 행위들을 가리킨다(사도15,10).

 

반면에 주님의 멍에와 짐은 유대주의자들이 구원의 방도로 지키고 가르쳐 온 613가지의 교훈 및 규칙과는 다르게, 주님 자신의 가르침의 핵심인 '사랑의 계명'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 이름이 ‘야훼(에흐예)’, 곧 ‘있는 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야훼를 글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나는 있을 것이다.’ 또는 ‘나는 있다.’입니다. 이 낱말은 명사가 아니라 있음, 곧 존재를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이름은 단순히 그 사람에게 붙여지는 의미 없는 낱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또 어떤 사명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야훼’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특징, 곧 ‘우리와 함께 항상 계신 분’, ‘아브라함 때도, 이사악 때도, 야곱 때도 계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 더 나아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도 늘 함께 계셔 주시는 분’이라는 특징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억압받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참으로 그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음을, 당신이야말로 참된 ‘야훼’이심을 알려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라고 밝히시며 당신의 멍에를 메고 당신에게서 배우라고 권고하십니다. 여기서 ‘온유하다’라고 번역한 그리스어는 ‘프라위스’입니다. 

이 낱말은 본디 히브리어 ‘아나빔’(가난한 이들)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온유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온유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온유한 이들은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마태 5,5 참조).

 곧,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셨던 그 땅, 하느님 나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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