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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정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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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1-02 ㅣ No.505

‘댓글 정부’라는 비아냥을 기억하는가. 2006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은 각 정부 부처 공무원들에게 국정홍보처가 발행하는 인터넷 매체인 ‘국정 브리핑’에 댓글을 달도록 지시했다. 심지어 어느 부처 공무원들이 댓글을 잘 다는지를 두고 부처 평가에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노 정권에 대해 갖다 붙인 이름이 바로 이 ‘댓글 정부’였다.

돌고 도는 것이 세상 이치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야말로 조직적 선거 개입이었다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물론 야당 내지 좌파 진영에서는 2006년의 일이야 국정 홍보 차원이었을 뿐 지금의 국정원 댓글 논란처럼 선거 개입은 아니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과연 그런가. 그럼 노 대통령의 국정원이 2007년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야당 후보의 주변을 뒷조사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MBC는 2011년 4월 22일 법원 판결문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가족과 친인척 사돈에 팔촌까지 샅샅이 뒤졌다.” 국정원은 샅샅이 뒤지는 과정에서 국세청과 경찰의 협조까지 얻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출간된 ‘좌파 정권 10년, 방송은 이런 짓들을 했다’(최도영·김강원 공저)에서는 당시의 방송 3사가 정권의 사전 선거운동에 어떻게 이용됐는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들 방송사에 ‘공명선거 실현을 위한 협조 요청’ 공문까지 보냈지만 방송사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당 후보들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제2장은 특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과 공보수석실이 선거를 앞두고 방송사들과 진행해온 물밑 작업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의 정책기획수석과 공보수석은 현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와 박지원 의원이다. 김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국정원 댓글 사건이야말로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 개입에 대한 명백한 증거라고 연일 비판 공세를 펴는 것이 왠지 겸연쩍게 들리는 이유다.

게다가 검찰이 기소했다는 문제의 댓글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NLL을 비롯, 금강산 관광, 국가보안법, 천안함, 강정해군기지 등에 관련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 안에는 ‘도마의 신 양학선 시구’라는 기사를 리트위트한 것조차 ‘박근혜 지지’로 분류하는 등 웃지못할 사례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야당과 좌파 진영에서 말하는 ‘실체적 진실’이 이 정도라면 국정원 자체의 조직적 선거 개입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 것이다. 국정원 여부를 떠나서 공무원 개인의 댓글이 그토록 심각한 문제라면 이제 이 나라 공무원 전원의 인터넷 게시글이나 댓글, 리트위트까지 똑같은 차원에서 전면 조사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국정원 댓글 논란은 검찰 수사가 끝나지 않았음은 물론, 아직 재판 절차도 밟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여당의 조직적 부정선거로 몰고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 대선을 ‘신(新) 관권선거’로 규정하면서 박 대통령의 사과 내지 입장 표명까지 요구하고 있다. 내각 총사퇴라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지난 광우병 촛불시위에서의 이명박처럼 ‘불통 대통령’이라는 딱지를 갖다 붙이는 매스컴도 나타나고 있다.

국민 앞에서의 사과 표명은 사실상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임을 민주당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순간 야당 및 좌파 진영에서는 이를 대통령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공식 인정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 개입이 아니었다는 최종 판결이 내려질 경우는 또 어떻게 할 셈인가. 정권 도덕성 깎아 내리기라는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여론의 역풍이나 후유증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정원이든, 국군사이버사령부든 조직적 선거 개입이 있었다면 법적 처벌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이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면 이제 우리 국민은 대북(對北) 심리전단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추호라도 선거 개입 가능성이 있는 만큼 폐쇄해 버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 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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