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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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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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9-26 ㅣ No.4088

9월 25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전도서 1장 2-11절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세상만사 속절없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지나간 나날이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을."

 

 

<바늘방석>

 

오늘 오전 10시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에서는 SBS와 검찰청, 서울특별시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1회 밝은사회 봉사대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과분하게도 저희 살레시오근로청소년회관이 그간 청소년 보호 및 선도에 기여한 바가 인정되어 봉사상을 수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희 스텝들의 헌신덕분인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부끄럽게도 제가 대표로 상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시상식 때의 일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그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수상단체나 수상자들의 활동 내용을 전해 들으면서 저는 점점 더 부끄러워졌고, "정말 우리는 이 자리에 설 사람이 아니었는데..."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상을 받는 다른 분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분들이야말로 참으로 상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대형화면에 비춰진 그분들의 봉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청기를 착용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면서도 매주 복지원에 나가 자신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진 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이광준군. 뇌성마비나 중복장애로 고생하는 동생들을 마치 친동생에게 대하듯 꼭 껴안고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참된 봉사가 무엇인지를 잘 알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75년부터 26년간 무의탁노인과의 자매결연 주선, 장애인 돕기 운동 기금 조성, 해외동포 초청, 조선족 동포 수술 주선 및 간병, 청소년 선도활동 등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오직 이웃봉사에만 쏟아 부어오신 김순청씨. "봉사는 내 삶의 의미요 기쁨입니다.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이웃들은 바로 제 가족이지요"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분의 얼굴에서 봉사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소중한 도구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지난 7월 22일 소매치기를 뒤쫓다 승용차에 치여 사망한 고려대학교 장세환씨의 수상 순간이었습니다. 고 장세환씨는 언제나 봉사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에도 사고현장에서 보름동안이나 밤을 지새웠음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아직도 아들과의 영원한 이별로 인한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시종일관 침울한 표정이었던 아버지를 바라보며 모두들 가슴아파했습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인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는 설교자의 말씀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보다 먼저 떠나가는 사람들, 우리보다 먼저 초탈한 사람들, 오늘 봉사상을 받은 남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설교자의 말씀은 한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말씀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사실 모든 것이 헛됩니다. 그토록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인연들, 그토록 우리가 자부심을 가졌던 그 알량한 학벌들, 직책들, 성과들은 모두 우리의 떠남, 특히 영원한 떠남인 죽음과 더불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쌓아왔던 그 모든 것들, 특히 육적이고 인간적인 것들은 결국 한 순간에 뜬구름처럼 연기처럼 흩어질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말씀처럼 당신께서 앗아가시면, 우리들 인생은 보잘것없는 한바탕 꿈일 뿐입니다. 마치 아침에 돋아나 피었다가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서 말라 버리는 한 포기 풀과도 같은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려도, 자취가 없이 사라져도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소중한 것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웃봉사입니다. 우리가 이웃들에게 베풀었던 따뜻한 마음, 한번 내밀었던 다정한 손길입니다.

 

우리가 떠난다 하더라고 우리가 이웃들에게 행했던 봉사만이 영원히 우리에게 남을 것입니다. 결국 봉사만이 헛되지 않은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이웃봉사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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