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니게도 ‘유신 좀비’들이 설치고 있다. 40여 년동안 무덤에 갇혀 있던 ‘유신 시체’들이 좀비가 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민주 열사들과 국민이 피흘려 이룩한 민주주의를 유린한다. ‘유신 공주’ 박근혜 대통령이 최고의 권좌에 오른 지 1년도 안 돼 일어난 일이다 유신 좀비들이 사회 곳곳에서 ‘유신 괴수’의 부활을 꿈꾸는 주문을 외우고 있다. 무덤에서, 생가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 “아버지 대통령 각하”(새누리당 심학봉의원), “구미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남유진 구미시장), “‘5·16 쿠데타’는 ‘구국의 결단’”(김관용 경북도지사)이란 주문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한국은 독재를 해야 한다”(김영진 원미동교회 원로목사)는 주문마저 튀어 나왔다. 

이제 초등학생들은 40여 년 전 아무 뜻도 모르고 불렀던 ‘유신 찬양가’를 주문처럼 되뇌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유신 좀비들의 농간으로 국사교과서를 친일 미화와 독재 찬양으로 역사관을 왜곡시키고 있으니 이쯤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1. 일하시는 대통령, 2. 이 나라의 지도자, 3. 3·1정신 받들어, 4. 사랑하는 겨레 위해, 5. 5·16 이룩하니, 6. 6대주에 빛나고, 7. 70년대 번영은, 8. 8·15 못지않네, 9. 구국의 새 역사를, 10. 시월유신 정신으로” 이런 주문을 동네 골목에서 스스럼없이 듣는 날이 올 가능성도 높다.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 소장
 
 
 
유신 좀비
의 부활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최고의 목표로 세웠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 등 군 출신들이 주도세력으로 등장해 유신독재 시절의 ‘육법당’(육사와 서울대 법대 출신의 권력 독점)이 되살아났다. 화룡점정은 김기춘 비서실장의 등장이다. 김 실장은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 출신으로 1972년 법무부 법무실 검사 자격으로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가담했으며 유신시절에는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다. 1979년 유신독재가 종막을 고하기 직전에는 대통령 법률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들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며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특히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으로 만들어낸 ‘종북좌파 척결’ 여론을 강력한 무기로 갖추었다. 뒤이어 검찰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 눈엣가시였던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국정원 사건의 축소 및 은폐를 폭로한 윤석열 수사팀장을 몰아냈다. 신임 검찰총장 및 감사원장 후보에 말 잘 듣는 PK출신을 앉힌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로써 ‘모든 길은 김기춘으로 통한다’는 말은 사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그는 ‘부통령’ 또는 ‘기춘 대원군’으로 불릴 정도로 권력의 전면에 나섰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김 실장은 막후실세인 박 대통령의 비선모임 ‘7인회’ 멤버이다. 이들은 유신시절 독재자 박정희를 에워싸고 있던 인물들이다. 이들 중 김 실장을 비롯한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강창희 국회의장이 권력 전면에 등장했다. 나머지 멤버인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김용갑 상임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등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사회 활동을 시작하고 현재는 80세를 바라보는 이들이다. 이른바 ‘신386세대’로 일컬어진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 빗대 ‘유신공주와 일곱 할배’란 말도 등장하고 있다.

이 7인회는 ‘문고리 3인방’(1998년부터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으로 일했던 이들을 일컫는 말.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청와대 비서관과 고 이춘상 보좌관)과 더불어 박근혜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무총리에 지명됐다가 자진 사퇴한 김용준 전 인수위원장 추천과 육사 출신 남재준 국정원장의 인선에 이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문고리 3인방은 청와대의 그 누구보다도 박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래선지 이들 '문고리 3인방'을 삼국지에 등장하는 ‘10상시’(중국 후한 말 영제 때 권력을 잡아 조정을 주물렀던 10명의 환관)의 예를 들어 ‘3상시’로 부르기도 한다. 

급기야 유신독재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새마을 운동’도 부활할 조짐이다. 박 대통령은 “제2 한강의 기적을 위해 제2의 새마을운동을 일으키자”고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정신혁명’, ‘의식개혁’, ‘문화운동’ 등을 유난히 강조했다. 도대체 ‘의식개혁’이 무엇인가. 국민 스스로 정신 개조를 통해 ‘잘 살아보자’며 국민 운동을 펼치겠다는 뜻이다. 사회 안전망이 절실한데 ‘스스로 잘 살려는 의욕과 자신을 가져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다름없다. 후보시절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공약(公約)으로 내세웠던 박 대통령이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을 공약(空約)으로 치부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아무리 새롭게 포장한다고 해도 유신시절의 개발 독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40여 년이 지나도 유신 좀비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용어만 살짝 바뀌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이 내세우는 ‘국민 대통합’은 유신독재 시절 각종 플래카드에 휘갈겨져 있던 ‘국민총화’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다. 박정희가 자신에 비판적인 민주인사들에게 들씌워졌던 ‘용공세력’이란 낙인이 좀 더 직설적인 ‘종북세력’이란 말로 바뀌었을 뿐이다.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흐른 세월만큼 나이가 들었을 뿐이다. ‘새마을운동’은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지고 정신혁명이니, 의식개혁이니 하는 말들이 새삼 우리 곁으로 다가올 기세이다. 앞으로 신문과 방송에서 이런 말들을 자주 듣게 될지도 모른다. 국민은 변했는데 권력은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공영방송들이 앞다퉈 ‘박근혜 찬가’를 부르고 있다는 지적은 국회 국정감사의 단골메뉴였다. 이 ‘박근혜 찬가’가 5공화국 시절 ‘땡전 뉴스’에 빗댄 ‘땡박 뉴스’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박비어천가’가 전국에 울려 퍼진다는 비야냥이다.

이명박 정권 때 등장한 종편 방송사들은 ‘종북 척결’에 앞장서고 있다. 해직 언론인들은 복직될 기미가 없다. ‘용산 참사’란 말은 ‘용산 사건’으로 둔갑한다. 5공시절 ‘성고문 사건’을 ‘부천서 사건’으로 쓰라고 하달했던 보도 지침을 닮아 있다. 비판적인 기자들이 마이크를 내려 놓은 지도 오래이다. 유신 시절의 언론 통제 상황이 지금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언론사 통폐합, 언론인 해직, 보도지침 시달 등 통제방식이 되살아난 것 같다. 다만 강도가 약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저강도 언론 통제’란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유신독재 시절 방송사들은 ‘국영방송’과 다를 바 없었다. 유신정권은 규제와 강압을 통해 획일성과 전시 효과를 추구했다. 방송사들은 유신과 새마을운동을 찬양하고 홍보하기에 바빴다. 방송 편성은 유신홍보로 채워졌다. ‘새마을 방송본부’를 설치하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특히 1975년 KBS의 새마을 방송은 주당 라디오 30개, TV가 18개 프로그램으로 매일 3~5개의 새마을 방송이 편성된 셈이다.

‘제2의 새마을운동’이 본격화하면 공영 방송사들이 유신시절의 새마을 방송에 나설지 우려된다. 벌써부터 그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공영 방송사들이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과 무분별하게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이른바 ‘국정 홍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도 ‘창조경제’, ‘안전사회 구현’, ‘4대 사회악 근절’ 등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에 ‘제2의 새마을운동’이 추가될 것은 불문가지이다. 간부들의 ‘정권 눈도장 찍기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신독재 시절은 한국 현대사의 암흑기였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수많은 학생과 재야 인사들이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조작한 ‘인혁당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최근 유신시절 ‘전가의 보도’였던 긴급조치는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았다. 재심에서 긴급조치 위반자의 무죄판결도 이어지고 있다.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배상소송도 진행중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유신좀비들이 설치고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혹여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분신’으로 부활하지 않을까 두렵다. ‘부전여전’이라는 속담이 사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