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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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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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11-02 ㅣ No.4212

11월 2일 토요일 위령의 날-마태오 5장 1-12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은 큰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죽음연습>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극진히 사랑했던 외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한 30대 부부가 있었습니다. 잊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잊어보려고 두 사람 모두 휴가를 내서 해외여행까지 다녀왔었지만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것에 대한 안타까움, 미안함이 도저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잊을 때도 되었건만,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설 때도 되었건만 두 사람은 몇 년이 지나도 먼저 떠난 아이의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해 언제나 허전해하고 방황하곤 했습니다. 그런 부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별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죽는다는 것 참으로 고통스런 일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수용하기 힘든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 곧 죽음입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자식의 체취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일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의 그 부드러웠던 음성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 아름다운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참으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겸손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욱 고결합니다. 이런 면에서 죽음은 신비이며 진리이며 은총입니다.

 

무속 신앙인들이나 사이비 종교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 피하고만 싶은 것, 껄끄러운 그 무엇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죽음은 아주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죽음은 오히려 감사의 원천이요 은총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우리를 얼마나 겸손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이런 면에서 죽음은 가장 탁월한 해결사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죽음이 없다면 그 사악했던 인간들이 얼마나 더 떵떵거리며 우쭐대며 살아가고 있겠습니까? 죽음은 모든 것을 거두어가기에, 모든 것을 정리해주기에, 모든 고통을 씻어주기에, 모두에게 공평하기에 소중하고 값진 것입니다.

 

참으로 모순된 말이지만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늘 옆에 끼고 살아가야 할 가장 친한 친구여야 하겠습니다. 죽음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노력이야말로 아름답고 고결하며 준비된 죽음을 위한 가장 필요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죽음의 준비는 바로 오늘을 충만히 사는 것입니다. 오늘을 거룩하게, 오늘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성실히, 최대한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죽음의 준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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