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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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_장인준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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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4-24 ㅣ No.171794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머리로는 다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제의 교회 박해자를 회개시켜 주님의 사도로 뽑으시는 것입니다.

 

안티오키아 공동체의 예언자들과 교사들은 사울과 그의 동료 바르나바를 성령께서

이르시는대로 안수를 하고 그들을 파견합니다. 사울과 바르나바는 세레우키아, 키르포스,

사라미스 등으로 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단죄가 아니라

구원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당신의 일치관계를 설명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4-45)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는 사실과

아울러 아버지의 이런 뜻이 바로 당신의 뜻임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궁극적인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주님께서 하신 그 말씀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요한 12,48)

 

우리는 살면서 때로 흑백논리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남을 구원하기 보다는

남을 비판하고 때로 주제넘게 심판을 하려고 듭니다. 주님께서 다른 기회에 하셨던

말씀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마태 7,1-2)

 

각자의 다른 의견이나 주장이 존중되어야한다는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흑백논리(黑白論理 manichéisme)에 젖어서 옳고 그른 차원에서만

내 이웃을 단죄하기 쉬운데, 이 다원주의는 단죄보다는 이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면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여기에서

생명력을 더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사랑과 너그러우심을 묵상하며

내 이웃에게 좀 더 따듯하게 다가갑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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