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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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연초록인 화창한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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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04-26 ㅣ No.4810

4월 28일 부활 제2주일-요한 20장 19-31절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온 세상이 연초록인 화창한 봄날에>

 

오늘은 온 천지가 연초록인 화창한 봄날, 소풍가기 좋은 봄날이었는데, 우울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던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너무 안쓰러워 보여서 제가 먼저 말을 건넸지요.

 

"많이 힘들고 답답하지?"

 

"예, 아주 많이요. 너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만 더 참아봐! 네 관상을 보니 스물 셋이 되면 인생이 확 풀릴 것 같아. 그때까지 딴 생각하지 말고 우리하고 지내야될 운명이야."

 

한창 사춘기를 지내고 있는 아이, 활화산 같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를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본업은 무엇보다도 아이가 안심하고 편안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평화로운 고향집" 같은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띤 한 아이는 제 손을 꼭 쥐며 아주 들뜬 목소리로 재잘대었습니다.

 

"신부님, 그거 아세요? 만기가 이제 사흘밖에 안 남았어요. 드디어 모레 휴가가요."

 

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기특해서 "그래? 정말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 우리 아들 최고다! 휴가 갔다가 꼭 다시 돌아오기다. 배신 때리기 없기다."

 

"그럼요. 제가 신부님을 두고 어떻게 배신을 때려요. 걱정 마세요."

 

첫 휴가에 대한 기대와 함께 삶에 대한 신뢰로 가득 찬 평화로운 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내적인 평화"야말로 우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추구해야할 과제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실 때마다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배신에 대한 추궁이나 나무람이 아니라 "평화"를 빌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받았던 심리적 충격은 상당했었습니다. 예수님의 급작스런 부재로 인해 제자들은 내적으로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했다는 데에서 오는 심한 죄책감으로 인해 제자들은 고개조차 들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앞날이 몹시 두렵기도 했었고, 또 그로 인해 많이도 흔들리고 방황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하셨던 주님이셨기에 "마음 편히 가지거라"는 인사말씀으로 제자들에게 다가가십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우리의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평화를 가져다 주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든 평화를 누리기를 빌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비록 험난한 세파에 갖은 고초를 겪고 슬퍼할지라도 "마음 편히 가지라"고 다독거리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집요하게 따진다거나 혼내시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죄책감에 고개 떨구고 선 우리의 등뒤로 살며시 다가오십니다.

 

두려움에 떨리는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시며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지거라"고 귓속말을 하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본질적으로 진노와 단죄의 주님이 아니라 위로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안심시키시는 평화의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오랜 악습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시는 자비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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