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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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눈으로/개인적인 책임(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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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2-22 ㅣ No.118486

 

"개인적인 책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부인(否認)'

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살아 가기가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실들이나

감정들, 심지어는

우리 자신까지도 부인한다.

내가 아는 정신과 의사는,

인간의 행동과 반응의

90퍼센트가

 '무의식적인 재료'

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이론을 세웠다.

예를 들어, 내가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으나 그 원망을

인정하지 않은 경우,

그 감정을 억누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내 생활에 들어오는

다른 여성에게 그 숨은

원한을 털어놓는다.

그 본래의 원한을

계속 숨겨 놓거나

그것을 부인하는 한,

나는 자신의 분노를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에게

쏟아 놓고 있다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정신의 무의식적인 면을

발견한 프로이트는,

부인 속에 숨겨 둔 것들은

물 속에 어굴러 놓은

나무통들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한 짓눌러 놓은 현실들은

그것들을 영구히 숨겨

놓기로 결심 하지 않는 한,

인정받기 위해 표면으로

떠오르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부인'하는 성향을

갖게 된 중요한 원인은

인생 초기의 계획표 짜기이다.

우리는 인생의 시작부터 남을

즐겁게 해주거나 다른 사람과

경쟁하도록 격려받는다.

여러분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우리는

 질문만 가졌지,

해답은 갖지 못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우리의 질문에 대답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는데,

말하자면 '배후조종'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사랑받고 칭찬받는 대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의 조건을

충족시켜 주었을 때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해결의 중요한 부분은

 '비난자'가 되지 말고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모든

 행동과 반응에 개인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구나

그것이 나를 방해한다

그녀는 나를

신경질나게 만든."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이런 표어를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당신이

허락해 주지 않는 한,

아무도 당신에게 어떤 것을

느낄 수는 없다."

다른 장소나 다른 사물,

다른 인간은 이미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에 자극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내면에 없는 사물들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익이 되는

질문은 언제나,

"나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가?" 이다.

인간성에 대한 자명한 이치는

 "비난이 끝나는 곳에서

성장이 시작한다." 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올 때,

우리에게 병든 사람을

도와 주러 찾아다니는

하느님의 의사가

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 조건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옛날에 나약한

제자들에게 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샬롬(평화가 있기를!)"

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옛날에 제자들에게

한 것처럼 우리의 삶이

충만하도록 우리를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한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나는 이것이 예수님이

동시대의 사람들과

인간의 자유를 논했을 때

하려고 하신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

(요한 8장 참조).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기를 믿고 자비를

이해할 때까지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누구의 노예도

아니라고 항의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독재자는 그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여기서 독재자란 공포,

걱정, 그들이

 지니고 다니는 죄,

열등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다.

"나를 믿어라." 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도전하신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얻게 될 것이며 진리는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부인하면,

우리를 이 현실로부터

 격리시킨다.

곤란한 점은,

우리는 늘 자신의 반응과

응답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그 진리를

우리를 대신해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자비를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주님께 손을 뻗치고

우리의 나약함의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결정만이

나약함의 인간 조건 속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정성호 옮김/성바오로 펴냄 

-존 파웰 지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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