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8일 (화)
(녹) 연중 제8주간 화요일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복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시국선언 유감

스크랩 인쇄

박재용 [salva] 쪽지 캡슐

2013-09-11 ㅣ No.84

빛의 전파 속도도 놀랍지만 어둠의 전파 속도 또한 놀랍습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전파 속도에 비견될 만큼 맹렬한 기세로 세상을 지배했던 사상은  인류 역사 상 공산주의 뿐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 Marx가 자본론을 발표한 후 20세기 초반,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수십년 만에 Marxism은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반을 점령해버렸습니다.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 세상의 반을 어둠이 지배했던 것입니다. 어둠의 위세는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흔히 말하듯 어둠은 빛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20세기 초반, 세상을 다 불태울 듯 맹렬한 기세로 사회를 파괴하고 동족을 대량학살하며 번져나간 어둠의 불길은 100년도 버티지 못하고 싸늘하게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좀비 형태로 그 흔적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좀비들은 불행히도 한반도의 북쪽에 마지막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비에게 물린 자들이 종북이라는 형태로 우리 사회에 남아 발광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생각 없이 물어 뜯으려고만 하는 그들은 소수라도 지극히 위험한 자들입니다.

종북을 법률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보면 압니다. 불행을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누구라도 쉽게 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바이러스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감기 걸리면 그게 바이러스의 짓이라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종북주의자들은 우리 사회 안에 파고 들어온 바이러스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 사회와 우리 교회를 위협하는 무리들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존중하고 다른 이들의 권리를 인정하지만 우리 사회와 교회를 파괴하려는 무리로부터는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국정원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압니다. 김대중 시절에는 김대중의 사생아 소동을 국정원이 나서서 입막음하려 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고, 노무현 시절에는 무시무시한 정치적 감찰이 있었다는 것도 다들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조금씩 발전하면서 국정원 또한 발전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의 댓글 개입 사건은 구시대로부터 이어진 타성에 불과했다는 것을 압니다.  앞으로는 국정원이 대통령의 개인 시종 노릇이나 정치에 개입하는 따위의 일은 하지 못하도록 개혁되어야 하겠지만 종북분자 색출과 처벌 등의 국정원 본연의 역할은 정비되고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정원보다도 크게 걱정되는 것은 중립성을 잃고 정치에 개입하여 일방적으로 좌파의 손을 들어주는 교회입니다. 좀비들에게 감염된 종북들을 잡아내야 하는 게 국가 안보를 수호해야 하는 국정원의 본질적인 임무입니다. 그리고 사회와 교회의 안전을 위해 교회 또한 국정원의 임무를 도와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세계사를 살펴볼 때 민주주의와 가톨릭 교회의 공통된 원수는 공산주의자들이고 국정원과 가톨릭은 그런 면에서 일종의 파트너 관계입니다. 지금도 가톨릭이 비판하고 견제하여할 것은 북한의 좀비 집단이며 보호해야 할 것은 좀비 집단에게 유린 당하고 있는 북한 국민들입니다. 그런 가톨릭이 국정원 비난에만 열을 올린다면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제들의 시국 선언은 집단적인 행동이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합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 사람이 나선다고 교회의 가르침이 되는 게 아닙니다. 사제들이 모여서 서명했다고 교회의 공식적인 의사표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닙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시험들에서도 오답을 써서 낙방한 이들이 정답을 써서 합격한 이들보다 훨씬 많은 법입니다. 특히나 종교적 진리는 흔히 소수편이라 예언자들은 무리를 짓지 않습니다. 예언자의 집단 시위 따위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행적을 본받아야 할 분들이 왜 세상 시류에 편승하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주교 혹은 사제의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가 평신도보다 정확하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사목의 권한은 그렇게 사용하라고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목은 계급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직자들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목을 행하라고 교회법은 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직자 수도자들은 정치가들처럼 여론을 형성하거나 주도하려고 나서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목의 방식이 아닙니다.  아무런 특별한 지식도 없이 검토나 비판조차 받지 않은 채 신자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따르라고 주문하는 것은 사목권의 남용일 뿐입니다. 

사제들에게는 강론을 위한 강단이 본당 안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모든 교구 사제들에게 그렇게 정당한 교리 전파 자리가 주어져 있으니 그곳에서 신자들을 가르치시면 됩니다. 그런데 왜 거리로 뛰쳐 나옵니까. 본당에서는 신자들에게 제대로 말씀도 꺼내지 못하시면서 길거리에 나와서 사회교리라는 이름으로 반목과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는 일치와 평화를 이루실 뿐 반목과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지는 않으십니다. 

종북이 아닌 사람을 종북으로 몰아부치는 것이 매커시즘입니다. 종북을 종북으로 확인하고 그에 맞는 조처를 취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사회안전 장치의 가동일 뿐입니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을 인권유린이라고 매도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바이러스를 잡는 것을 살상이라고 비난하는 것처럼 부조리한 주장입니다. 그리고 국정원의 작은 잘못을 꼬투리 삼아 국정원의 본질적인 기능을 약화시키려 든다면 그것은 매국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진정한 어둠을 몰아내는데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특히나 성직자들은 정치 논리에 편승하여 한쪽의 갈채를 받으며 즐기면 안 됩니다. 시민 사회에서 성직자는 특권층이 아닙니다. 한 명의 시민일 뿐입니다. 다른 시민들이 그렇듯 투표로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표시하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사제들이 길거리 정치에 관심 두지 마시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기도와 묵상으로 얻은 깨달음을 신자들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제가 말씀하실 곳은 교회의 강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50

추천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