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마치 곡예라도 하듯이

스크랩 인쇄

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11-16 ㅣ No.5965

11월 16일 연중 제 33주일 평신도 주일-마르코 13장 24-32절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마치 곡예라도 하듯이>

 

돌아보니 우리네 인생이란 삶과 죽음 사이로 난 사이로 난 외길을 걸어가는 여행길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곡예라도 하듯이 아슬아슬하게 삶과 죽음 그 사잇길을 걸어온 제 인생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한번은 이쪽으로 다른 한번은 저쪽으로 삶과 죽음 사이를 오락가락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결국 제 인생은 하느님 아버지의 가호가 없었다면 수 백 번도 더 사라졌을 위태위태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 삶은 하느님 자비의 결과임을 확신합니다.

 

요즘 와서 자주 드는 생각 한가지가 있습니다. 절망 속에는 반드시 희망이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슬픔 속에는 반드시 기쁨이 씨앗이 자리잡고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음 안에도 반드시 찬란한 생명이, 영광스런 부활이 자리잡고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삶 안에 이미 죽음이 들어와 있습니다. 또한 죽음 안에 삶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나온 한해 여러 사람들과의 작별이 있었습니다. 그냥 일시적인 이별이 아니라 영원한 이별, 지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이었습니다.

 

너무도 안타깝고 아쉬웠던 나머지 숱하게도 밤잠을 설치기도 했던 작별, 그 어떤 위로도 소용이 되지 않았던 작별, 짙은 슬픔만을 남겨주었던 작별도 있었습니다.

 

사별을 통해 남아있는 사람들은 서서히 죽음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떠나감을 못내 아쉬워하며 떠나간 사람들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축복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우리는 덜 기고만장하게 살아갑니다. 죽음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하느님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죽음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덜 잘난 체 하며, 덜 떵떵거리며 살아갑니다.

 

결국 죽음은 하나의 축복입니다.

 

축복인 죽음 앞에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오늘을 충만히 살아가는 일인 듯 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오늘"을 충만히 살아가는 일이 잘 죽기 위한 가장 좋은 준비이겠지요.

 

하느님께서는 매일 우리의 어제를 남김없이 거두어 가시고 어김없이 “오늘”을 선물로 주십니다.

 

매일 우리에게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선물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축복으로 여기고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생일대의 과제입니다.

 

<오늘>

    

잃어버린 것들에 애닯아 하지 아니하며

살아 있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살아가는 일에 탐욕하지 아니하며

나의 나 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내 안에 살아 있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아니하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아니하며

모두가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아니하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원통해 하지 아니하며

소중한 것을 상실해도 절망하지 아니 하며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격려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1,972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