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성지순례기]묘재성지..성인 남종삼의 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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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simon] 쪽지 캡슐

2000-11-08 ㅣ No.305

배론성지에서 관리하시는 총무님의 차를 타고 다시 탁사정으로 나왔습니다.

탁사정에서 묘재성지까지는 버스로 5분정도 도보로 40분정도가 걸리는 거리입니다.

탁사정에서 서는 버스면 아무거나 타고 되는데 5분정도 후에 주유소가 나오면

건너편이 성지이므로 잘 찾으셔야 합니다. 버스가 서는지는 잘 모르겟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나가는 차를 잡아타서 갔기 때문입니다.

 

묘재성지옆에서는 학산공소가 있더군요...아담한 공소에서 잠시 기도를 하고

다시 묘재성지로 옮겼습니다.

 

묘재성지는 남종삼성인의 생가터가있는 곳인데 생가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볼 수도 있답니다.

 

우리의 순교자로서는 가장 높은 벼슬인 승지까지 오르신 성인은 조정에서 왕족에게

공부를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 청백리와 성실함으로 인정받던 성인은 그를 시

기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고 그리고 향교의 제사문제가 있었기때문에 벼스를 내

놓고 신앙생활에 힘씁니다. 철종이 죽고 고종이 오르자 다시 궁궐로 입궐한

성인인 1863년 말경 러시아가 수교를 요구하며 자꾸 쳐들어오자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대원군에게 "이이제이 방아책(以夷制夷防我策)"이라 하여 조선의 프랑스 주교

에게 부탁을 해서 러시아를 막아내자고 건의를 합니다. 대원군도 이에 흔쾌히 허락

을 하였지만 당시 사목활동으로 멀리 떨어져 잇던 주교를 궁궐로 데려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지연되어서 이를 기다리던 대원군은 결국 다시 분노를 하게되고

그 무시한 병인박해가 시작됩니다.

 

결국 성인은 이 일이 잘못 된 것을 알고 묘재로 내려와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니 그의

아버지는 이제 큰 일이 닥쳐도 신앙인으로서 영광스럽게 살아라 라고 말합니다.

 

후에 아버지와 남종삼 성인,그리고 그의 아내 이소사와 장자인 규희까지 모두 3대

에 걸쳐 4명이 순교를 하게됩니다.

 

이 성인의 가족을 기리는 묘재성지는 성지라기 보다 유적지에 가깝지만 당시에 이곳

에서 살았던 높은 벼슬을 하던 성인의 집이 다소 초라한 것으로 보아 그가 청백리

엿고 양심에 가책없이 살았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성지의 뒷편으로는 십자가의 길이 이어지는데 특이하게 각 처의 모습이 모자이크

형식으로 되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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