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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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한 그루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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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희 [gemmac] 쪽지 캡슐

2000-08-22 ㅣ No.1596

  6년전 이사 온 우리 집은 많은 수난을 겪게 했지만  그래도  반지하에 비좁은 우리 집은 나에게 더없는 쉼터로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러나  방안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면 보기에도 흉칙한 담벼락이 하늘을 반이나 가려놓아서 못내 신경이 쓰여지곤 했다.

그래서 궁리끝에 담과 창사이의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폴 상자를 이용하여 미니 텃밭을 만들게 되었는데  올해도  예년같이 방울토마토랑 상추,고추,깻잎들을 심었더니 그 흉물 담벼락은 사라지고 대신 쑤욱쑥 자라며 열매맺는 채소의 싱싱한 모습은 창 너머로 바라보는 내게 참신한  기쁨을 안겨준다. 또한 가꾸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작은 나눔이지만 이웃 간에 정감을 나누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해내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엔  이 중에 한 그루의 고추가 나에게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렁주렁 매달린 창밖의 이 고추가 나를 향해 무언의 말을 힘있게 던져주는 것같다. 다른채소와 함께 고추는 세 그루를 심었었는데 모두 잘 자라고 그 중 두 그루는  제법 주렁주렁 고추를  매달고 있어 바라보는 나에게  흐뭇한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중 한 그루만이 똑같은 조건에서 탈 없이 잘 자랐으면서도 7월이 넘도록  열매가 없다. 자꾸 시선이 그리로 가면서 열매맺기를 고대하다가 끝내는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말라버리게 한 일을 연상하며 이 희망이 없는 고추나무를 뽑아버리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원줄기를 잡고  뽑으려던 찰나,나도 모르게 그만 손을 놓고 말았다. 차마

그 동안 내 손으로 길러온 식물이 그래도 잘 자라고 있는데 그 생명을 모질게 뽑을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는 여늬때 처럼 그 고추나무에 다른 채소와 함께 그저 물을 매일 주어 왔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고추나무가  어느 날 아주 작은 꽃망울을 여기 저기 보여준다.

하지만 이미 불임고추라고 단정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다만 열매맺지 못할 꽃이려니

생각하면서  그래도 실날같은 한 가닥의 희망은 마음의 여유를  한구석에 남겨 두긴 했었다.

그리곤 물을 주던 어느 날 ,이 고추 한 그루가 그만 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었다.

불임고추라고 단정한 나의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또 기대 없는 중에도 끝까지 매일 물을 준데 대한 고마움에선지 여기저기 귀여운 작은 고추가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나날이 커져 이제는 제법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불가능의 현실에 기적의 기회가 있음을 확인 시켜주는 이 고추나무를 감동속에서 말없이  바라보며 마음깊이 속삭임을 듣는다.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웃들을 포기하거나,상처를 주지 않았나 두려운 마음으로 ...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숙의 가능성이 외면된 체  사랑의 목마름 속에서 죽어들 갔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이웃의 성숙을 끈기있게 기다려주는 인내와 사랑이 부족한 나와 더부러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 고추나무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의  정성과 인내로 이 고추나무의 열매처럼 피어날 수 있길 ...

밀이삭이 뽑힐 새라 우리에게  ’가라지를 그대로 놓아 두라’하신  주님의 말씀이 가슴을 울린다.

이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이 고추나무의 기적을 떠올리리라.  

그리고 늦둥이  고추나무를 대하듯이 사람마다 성숙의 시기가 다름을 새기며 그릇된 판단으로 이웃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외면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누구에게라도 끈기있게 사랑하며,기다리며 살리라. 주렁주렁 뒤늦게 더 많이 열릴 사랑의 열매를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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