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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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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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민 [milestone] 쪽지 캡슐

2000-12-13 ㅣ No.2191

<< 천리안 빈찬가님 글입니다 >>

 

나는 가끔씩 동창들을 만날때..

서울 종로에서 그 만남을 갖곤 합니다.

그곳에는 아직까지 마음에 남는 음식점이 있는데.

그 음식점 이름까지는 좀 시간이 오래 지나선지..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 종로의 한 중국집은...

"맛이 없으면 돈을 안 받는다."라는 문구가 있었던 음식점.

이 문구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집에 어느 날...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나간 뒤라 식당에서는..

청년 하나가 신문을 뒤적이며 볶음밥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와 손자 아이는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할아버지의 손은 험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말 그대로 북두갈고리였다.

아이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그릇에 자신의 몫을 덜어 옮겼다.

몇 젓가락 안 되는 자장면을 다 드신 할아버지는 입가에 자장을 묻혀가며..

부지런히 먹는 손자를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부모없이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모양이었다.

손자가 하도 자장면을 먹고 싶어해 모처럼 데리고 나온 길인 듯 했다.

 

 아이가 자장면을 반쯤 먹었을 때..

 주인이 주방쪽을 대고 말했다.

 "오늘 자장면 맛을 못 봤네. 조금만 줘봐."

 자장면 반 그릇이 금세 나왔다.

 주인은 한 젓가락 입에 대더니 주방장을 불렀다.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같지 않나?

그리고 간도 잘 안 맞는 것 같애.

이래 가지고 손님들한테 돈을 받을 수 있겠나."

주방장을 들여보내고 주인은 아이가 막 식사를 끝낸 탁자로 갔다.

  

할아버지가 주인을 쳐다보자 그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자장면이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꼭 맛있는 자장면을 드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게는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들러주십시오."

 

손자의 손을 잡고 문을 열며 나가던 할아버지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주인이 다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고, 고맙구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팔을 붙들려 나가면서..

주인에게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주인은 말없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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