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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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악기를 하나 보내 주십시오" -아! 최양업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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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9-08-31 ㅣ No.6630

 

“...서양음악을 여러 가지 음향으로 소리가 잘 나게 연주 할 수 있는 견고하게 만들어진 악기 하나를 보내주십시오. 여러개의 건반이 달려있는 약 30 프랑짜리의 것으로 보내주십시오. 대금은 제가 주교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국인 두 번째 사제 최양업신부(1821~1861)가 빠리외방전교회의 스승 신부께 1858년 10월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사목서한 열다섯 번째 편지).

 건반이 달린 악기?

이 악기가 무엇일까?

오르간일까?

그러면 최양업신부님은 직접 오르간을 치셨나?...

 머릿속에서 이런 의문 부호들이 춤춘다.

 교황님이 선포하신 사제의 해이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의 서품 1백60주년인 올해, 나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에게 마음이 꽂혀있다.

얼마 전까지 내게 ‘최양업신부님’ 하면 막연하게 훌륭한 사제였을 것이라는 생각 외에는 특별한 존재감이 없었다.

 그러나 명동성당 오르가니스트 강석희선생과 박영희 교수(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학 작곡과)의 ‘ KBS 해외동포상 수상 인터뷰’ 연결을 논의하면서, 한국 초기 교회사에서 바오로 사도와 같았던 최신부님의 행적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땀의 순교자’ 이신 신부님을 따라 1백60년 전으로 역사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박파안으로 알려진 박영희교수는 윤이상 이후 현대 유럽 작곡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이다.

그가 최양업신부님을 주제로 한 대작들을 구상중이고, 이 땅에 처음으로 오르간을 소개하고자 했던 최신부님을 기려 헌정 연주회를 국내성당에서 갖고 싶어한다는 뜻을 알고는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최신부님의 사목서한집을 읽으며, 온 몸을 바쳐 하느님과 가난한 이 땅의 백성들을 섬긴 신부님의 절절한 사랑이 내게 전해오기 시작하였다. 

최양업신부님은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이다. 신부님은 1836년 빠리외방전교회의 신학생으로 뽑혀 김대건, 최방제 등과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 도중에 병사한 최방제를 제외하고 김대건신부님과 최양업신부님은 서양식 학문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우리나라 첫 유학생이다. 

그러나 착오인지 하느님의 오묘한 뜻인지, 김대건과 최양업은 함께 부제품을 받고도 최신부님은 서품되지 않고 김대건신부님만 1845년 한국인 첫 사제가 된다.

 서품후 국내로 들어온 김대건신부님은 6개월 남짓 활동하다 체포돼 채 꽃 피지 못하고 1846년 순교 당한다.

 한편 최신부님은 꼬이는 상황 속에 서품이 미뤄져 1849년에나 간신히 사제가 된다. 서품 후 고국을 떠난지 13년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온 신부님은 박해의 칼날을 피해 한해 7천리를 걸으며 12년간 땀 흘려 한국교회를 일궜고, 1861년 병사한다.

 

또다른 편지에서 최신부님은 “이 땅의 백성들은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병으로 일찍 죽는다”며 목마른 영혼에게 생명의 물을 주는 사목자로서 뿐 아니라 육신의 물을 주기 위해 물을 맑게 할 정수 기술을 알려달라고 스승께 간곡히 부탁한다.

 또한 조선의 양반들은 일도 않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 갖은 횡포를 부려 수탈하고 있다며 혼탁한 조선의 정치, 사회 현실을 개탄한다.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도등의 산간벽지에 흩어져있는 교우촌을 돌며 성사를 집행하고 한해에 수백 명의 영세자를 내는 그는 자신의 공은 없고 “오로지 10개의모음과 14개의 자음을 가진, 쉬운 한글이라는 글자를 가진 덕”이라며 서양신부님들에게 한글의 유용성을 자랑한다(여덟번째 편지).

  전교의 한 방법으로 최신부님은 어려운 천주교 교리를 3,4조, 또는 4,4조의 ‘가사’문학 형태로 지어 민요 가락을 입혔다. 글 모르는 할머니나 어린이들에게 노래로 만들어 교리를 외우게 했다.

그는 뛰어난 교육자요, 문학가이고, 예술가임을 추측케 한다. 현존하는 천주가사들 중에는 신부님이 직접 지은 것, 또는 정리, 편집한 것 등이 있어 이런 노력은 우리 한글과 국문학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나는 사목서한을 읽으며 “악기를 보내달라” 는 대목에서 무엇보다 가슴이 멍멍해지고 찡한  감동을 느꼈다.

목숨 걸고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하느님 찬양의 노래로 기쁨과 희망을 주기 위해 오르간을 간청하는 가난한 사제, 그 신부님을 떠 올려 볼 때 오늘의 나는 아무런 감동없이 입으로만 성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만약 오르간이 당시 국내에 들어왔다면 오르간의 행방은? 이런 추측 속에 이내 숙연해졌다.

 

교회음악가들, 특히 개신교쪽 오르간 연주가들까지도 이 사목 서한을 근거로 하여 최양업신부님을 사랑하고 , 높이 추앙하는 분위기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오랫동안 전례음악에 관심 두어온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내친김에 최양업신부님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을 때 나는 또 흥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성공회 신자로 알려진 작곡가 이건용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그의 연구에서 최양업신부님을 높은 문화의식을 가진 분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1백년전에 들어온 개신교는 독일식의 코랄 등을 그대로 들여와 찬송가를 보급했지만 이보다 1백년 앞서 들어온 천주교는 천주가사라는 형식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외래종교의 도입기에 토착문화와의 갈등을 일으킨다는  인식을 불식시켰다며 문화의 융합을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토착화 작업은 1930년대 이후 성가집 발간과정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최신부님의 피땀 어린 글과 행간 너머로의 발자취는 내 믿음에 큰 자극이 되고, 기쁨과 긍지를 키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신앙 선조들을 본받아 우리가 파묻힌 교회의 역사를 캐고 연구해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하느님의 종 최양업신부님과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이때에 보다 많은 분들, 특히 전례음악가들의 최신부님과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라며 글을 올린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9월9일 오후2시 최양업신부님 관련 학술포럼을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연다.

 또한 10월에는 최양업신부님 현양음악회를 명동대성당에서 갖는다. 많은 분들의 참석을 바란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신부 서품 1백60주년 및 사제의 해 기념 학술포럼 >

 

  주최 :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일시 및 장소 :9월9일 오후2시  명동 가톨릭회관 1층 대강당

 

  기조강연 -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삶 /장봉훈 주교(청주교구장)

  발표1 - 최양업 신부의 사향가에 나타난 선조들의 신앙과 영성

/ 류한영 신부(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 총무)

 

발표2 - 언어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천주가사

/ 조원형 박사(서울대 언어학과)

 

발표3 - 한국가톨릭 교회음악과 최양업신부

/ 양인용(충남대 강사, 서울대음대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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