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 (월)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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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이나 되는 양심성찰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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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11-09 ㅣ No.5910

11월 10일 월요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루가 17장 1-6절

 

"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거든 꾸짖고 뉘우치거든 용서해 주어라. 그가 너에게 하루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때마다 너에게 와서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세 권이나 되는 양심성찰 노트>

 

돈보스코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1886년) 루이지 오리오네란 한 아이가 돈보스코의 기숙사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가정형편이 몹시 어려웠던 루이지는 우여곡절 끝에 돈보스코의 기숙사에서 사제로서의 삶을 준비하게 됩니다.

 

돈보스코의 도움에 힘입어 사제의 길을 꾸준히 걸어갈 수 있었던 루이지는 후에 성덕과 영성이 뛰어난 사제가 되어 수도회까지 창립하게 됩니다.

 

루이지가 돈보스코의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기숙사내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한가지 간절한 소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돈보스코와 일대 일로 마주 앉아서 고백성사를 한번 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돈보스코는 지나친 과로와 격무, 노화로 인해 병실 신세를 지고 계셨지요. 투병 중에도 돈보스코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할 일이 태산 같았습니다. 당연히 돈보스코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지는 언젠가 반드시 자기에게도 기회가 오리라고 믿고 열심히 고백성사를 준비했습니다. 진지하게 양심성찰을 계속했고 짧은 세월이었지만 자신의 지난 인생을 심각하게 반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양심성찰 지침서에 따라 조목조목 자신이 범한 죄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루이지는 나중에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참고했던 양심성찰 지침서는 13살 소년이었던 제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당시 제가 노트에 적은 죄목들은 너무 터무니없는 것들이어서 웃음이 다 나옵니다."

 

"직원들에게 정당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억압했습니다" 등등의 양심성찰 내용 모두를 다 노트에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은 죄는 작은 노트로 3권이나 되었습니다.

 

루이지의 노트에는 한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란 죄는 다 적혀있었고, 단 한가지 살인죄만 적여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루이지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루이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겨우 진정시키며 자신이 지은 죄를 빼곡이 적은 세 권의 노트를 호주머니에 넣고 드디어 돈보스코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색이 완연한 돈보스코였지만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로 루이지를 반겼습니다.

 

"잘 왔다. 루이지. 너를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쁘단다. 자, 그럼 네 죄를 나에게 줘보렴."

 

루이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돈보스코는 내가 노트를 가져왔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계실까?" 의아해하면서 호주머니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돈보스코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돈보스코의 다음 동작은 루이지를 더욱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루이지로부터 노트를 건네 받은 돈보스코는 노트를 열어보지도 읽어보지도 않은 채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휴지통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루이지, 그럼 다른 노트들도 빨리 내게 주렴." 남은 두 권의 노트도 똑같은 방식으로 잘게 찢어 휴지통으로 골인시켰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자세는 한결같으십니다. 마치 돈보스코가 루이지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그분께로 돌아갈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의 노트를 펴보지도 않은 채 갈기갈기 찢어버리십니다. 그리고 깨끗한 새 노트를 선물로 주십니다.

 

"내가 찢어버린 노트 속의 과거는 이제 깨끗이 잊고 새출발하거라" 하고 말씀하시며 다정히 우리의 등을 두드려 주십니다.

 

우리가 고백소에 들어갈 때마다 언제 한번이라도 혼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대리자인 사제를 통해 언제나 말끔히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꼬치꼬치 따지지 않고, 사사건건 물어보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받아들여주십니다. 우리 죄가 아무리 진홍빛 같다 할지라도 말끔히 씻어주셨습니다.

 

이토록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 안에 살아가는 우리의 응답 역시 한 가지 뿐입니다. 이웃에 대한 한없는 용서, 이웃에 대한 끊임없는 자비 바로 그것이지요.

 

용서가 없는 곳에 기쁨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 행복 역시 만끽할 수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 희망도 새 삶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 내적인 평화나 마음의 여유는 누릴 수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 건강도 생명도 구원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용서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용서만이 우리의 최종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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