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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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16 -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윤용선 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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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8-16 ㅣ No.113931




2017
08 16 () 가해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신명기 34,1-12
마태오복음 18,15-20


윤용선 바오로 신부님


<
대화를 통한 일치의 필요성 >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복음 말씀인 마태오복음 18 15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은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서로 대화하고 일치하는 형제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대화를 통한 일치’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보이는, 나에게 잘못한 형제를 조용히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는 모습과 두세 사람의 증언으로 사실을 밝히는 모습, 이 두 모습은 어찌 보면 마치 잘못한 형제를 나무라고 결국은 나 자신이나 공동체로부터 그를 분리시켜 버리려는 모습들처럼 보일 수 있으나, 복음의 가르침은 이러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타일러 주고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나에게 잘못한 형제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며, 결국은 그 사람과 일치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화를 통한 일치가 이루어 졌을 때, 우리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와 일치라는 것은 일방적이 아닌 쌍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형제’와 ‘나’, 이 둘의 모든 입장에서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쪽 입장에서만 마음을 연다면, 대화는 불가능하고 결국 일치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 ‘나’ 또한 다른 형제에게 잘못할 수 있고, 그래서 나도 ‘남에게 잘못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쌍방적 성격의 대화와 일치의 결과로써, 이 지상의 삶에서 서로 잘못 묶여있던 것들은 풀리게 되고, 이는 바로 하늘나라에서도 동시에 풀려 있음을 우리는 오늘 복음 속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함께’, 일치된 모습의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이 세상의 삶 안에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한다는 것’이 어렵듯, ‘대화를 통한 일치’를 추구함 또한, 부족한 인간으로서 어려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후반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으며, 너희가 마음을 모아 구하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니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말과 이러한 마음 자세를 지니고 살 수 있으며, 이를 또한 우리의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우리는 ‘대화’ 할 수 있고, ‘일치’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천상의 삶을 미리 맛보며, 이 지상에서도 함께, 아름답게, 매일을 이웃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윤용선 바오로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0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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