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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0-23 ㅣ No.295

정치 댓글 써 본 공무원 수천명은 되지 않을까
인터넷은 원래 그런 공간… 댓글 사건은 댓글 사건일 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화를 내겠지만 필자는 인터넷 댓글이나 트위터 글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믿지 않는다. 주변에 물어봐도 "선거 때 댓글을 봤는지 기억이 없다"거나 "재미로 보기도 하는데 엉터리가 많다는 건 다 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가끔 본 것 같다는 사람 중에서도 그 문구에 영향을 받아 지지 후보를 바꿨다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젊은 사람들은 다를까 해서 열 명이 넘는 20~30대에게 일부러 진지하게 물어봤으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뉴스에 붙은 댓글도 열 개나 스무 개 정도 훑어본다는 젊은이들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지지 후보를 바꿨다는 사람은 없었다. 선거 기간에 읽은 댓글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물어본 젊은이 중에 지지 후보를 밝힌 사람은 전부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이나 트위터 글이 정말 영향을 미쳤다면 젊은 층에서 문 후보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 직원 몇 명, 몇 십 명이 달았다는 댓글이나 트위터 글은 다 합쳐도 인터넷 바다에 떨어진 물방울 몇 개에 불과한 것이다. 그 물방울 몇 개가 사회 전체를 쓸고 가는 강물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실제 만든 것도 없다. 몇 명, 몇 십 명이 골방에서 또닥거린 댓글 따위로 인구 5000만명 나라의 대선 결과가 달라졌다면 세계 역사에 남을 기적일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대북(對北) 관련만이 아니라 선거와 관련된 글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 사건은 아무리 생각해도 위법이기는 하겠지만, 그 규모와 선거에 미친 영향 면에서 이렇게 시끄러울 정도로 중대한 위법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은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이것은 국정원 직원만이 아니라 모든 공무원에 해당한다. 필자는 우리나라 공무원 70여만명(군 부사관 이상 포함) 중 수천 명은 인터넷에 정치 댓글을 써 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공간의 특성으로 볼 때 야권에 유리한 댓글을 단 사람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요즘은 고위 공무원이 댓글 따위가 아니라 대통령을 조롱하는 몸통 뉴스를 인터넷에 발표하는 세상이다.

이제 와서 그들의 선거법 위반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들이 개인적으로 단 정치 댓글과 크든 작든 국정원 조직이 개입된 정치 댓글을 같은 차원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터넷 공간의 댓글이란 것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본다거나 너무 과장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댓글을 다는 것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큰 결심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맥주 한잔 하면서 정부를 비꼬고 비난하는 댓글을 거의 매일 올리는 공무원도 알고 있다. 그는 대선 때는 밤을 새우다시피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댓글 전쟁'(그의 표현)을 벌였다고 한다. 물론 아무런 범죄 의식이 없다. 아직 인터넷에 대한 전 사회적 규범이 정립되지 않은 지금, 댓글 사건은 '댓글'에 걸맞은 크기와 정도로 다뤄지는 게 맞는다. 그게 지금 정상적 크기의 몇 배, 몇 십 배로 커져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댓글 논란이 새 대통령의 정당성에 작은 흠이라도 될까 노심초사하는 측에게 있다. 그들의 얘기는 이렇다. "댓글 자체는 별것 아니다. 우리와는 관계도 없다. 그러나 어쨌든 선거법 위반이란 판결이 혹시라도 나오면 야당이 부정선거라고 들고나오지 않겠는가. 5년 내내 부정선거로 탄생한 정권이라고 할 텐데 그게 부담이 되는 게 싫다."

실제 야권은 벌써 "부정선거"라고 하고 있다. 소송 시효도 이미 오래전에 지나 따지는 것도 부질없지만,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 때에도,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하는 때에 한해서' 선거 결과를 바꾸는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법 위반 사실 하나가 있다고 그걸 대뜸 "부정선거"니 "민주주의 파괴"니 한다는 것은 시쳇말로 심하게 오버하는 것이다.

국민은 오버를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 식별을 기다리지 못하고 새 대통령에게 조그만 흠이라도 될까 봐 이런저런 오버를 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는 기소하지 말라' '아니다. 하겠다'는 갈등이 벌어졌다. 그러다 지금의 검찰 내분 같은 불필요한 소란까지 낳았다. 처음부터 대범하게 대처했으면 댓글 사건은 댓글 사건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동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본질적으로 난민촌'이란 말이 다시 떠오른다. 뿌리가 없고 내일이 없는 난민촌에선 피해 의식과 적의(敵意)가 분출할 구멍만 찾아 배회한다. 한 학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태의 공통점이자 특징은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원심력"이라고 했다. 원심력이 여기서 더 커지면 다들 쪼개져 파편으로 흩어지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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