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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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계(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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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osspaolo] 쪽지 캡슐

2002-09-24 ㅣ No.4081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루가 8, 21)

 

 

<이상한 관계>

 

우리 수도원 안에서만 통용되는 호칭이 있다.

우리는 서로 <형제>라고 부른다.

관구장도 형제요

갖 들어온 청원자도 형제다.

할아버지 수사님도 형제요

대선배 신부님도 형제다.

물론 외부인들과의 관계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신부님, 수사님이라 불릴 때도 있지만

우리 안에서는 언제나 <형제>이다.

어떤 이는

한국어법으로는

형이면 형, 아우면 아우지

<형제>라는 호칭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특수사회, 특수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고유한 어법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간혹

갖 입회한 형제가

할아버지 수사님에게

<안젤로 형제!>하고 부르기가 민망스러워서

연배 차이가 많이 날 때는 <형제님!>이라고 더욱 이상한 표현을 쓴다.

<형님!>이 아니라 <형제님!>이다.

 

오늘 우리 수도회의 가장 맏형님이신

백 안젤로 형제님이 결핵치료를 더이상 할 수 없어

퇴원하셨다.

이제 수도원에서 형제들과 함께 머물다가 하느님께 가고 싶다는

바램 때문에 수도원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 생애의 많은 부분을 보내셨던

산청 성심원에서 임종을 준비하고 싶고

화장되어 그곳에서 이미 앞서간 500여명의 나환우 형제들 가운데서

묻히고 싶다고 하신다.

그래서 내일 아침 미사 후 산청 나환우 마을로 떠나실 예정이시다.

 

우리 어머니와 연세가 같으시기에

늘 아버지같은 분이셨지만

나에게는 늘 <형제>이시다.

 

예수님이 지존하신 분이시요 주님이시지만

나에게 늘 <형제>로 오시듯이

주님께서는

나에게 참으로 많은 <형제>들을 선물로 주신다.

그 형제들은

바로 오늘 주님께서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그런 형제들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행하겠다는 올곧은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형제,

또 그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형제들...

우리의 온갖 인간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 한마디만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모인 형제들!

 

참으로 남들이 보면 이상한 관계가 아니겠는가?

형제가 몇이냐고 누가 물으면

160명이 된다고 해야하는데...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아닌가?

피로 나눈 형제들이 분명 아닌데...

 

얼마전에 TV에서 12인가 13인가 자녀를 둔

부부이야기가 방영이 되었다.

남편의 자식, 아내의 자식, 함께 데려온 자식 등

대식구가 한 형제자매로 폐교된 학교를 집으로 살아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형제란 피로 나누어서만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닌 성싶다.

 

오늘 임종을 준비하시는 맏형님 수사님을 대하면서

참으로 주님 안에 한 형제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그분이 선배로서 멋지게 살아주셨기에

나도 그 길을 함께 할 대열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분과 대화하며 몇번이나 눈물을 훔치면서도

내 안에서 불끈 새로운 의지가 용솟음침도 느끼게 된다.

 

오, 하느님,

참으로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바로 나의 형제들이요 당신의 형제들이 아닙니까?

당신이 축복하신 그 형제들을 다시 축복하소서.

당신의 형제로서

당신 품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준비하고 있는

나의 형제 백 안젤로를 강복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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