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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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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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1-21 ㅣ No.117733

 

2018년 1월 21일

연중 제3주일

제1독서 요나 3,1-5.10

주님의 말씀이

1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제2독서 1코린 7,29-31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요한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

분을 따라나섰다.

아주 어렸을 때 제게 커다란
열등감을 안겨준 텔레비전
프로그램 하나가 생각납니다.
물론 재미있게 보기도 했지만,
어떠한 장면을 보면서
 ‘왜 나는 저렇지 않지?’라면서
 괜히 부끄럽고 어디에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묘기대행진’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
세상에 이런 일이?’,
‘생활의 달인’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종종
어린이들이 나옵니다.
소위 천재, 영재 소리를
듣는 아이들이지요.
대단한 암기력을 보여주고,
외국어도 달달 욉니다.
암산을 비롯해서 어려운
 문제도 척척 풉니다.
 이런 어린이들과 비교해보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내 자신이
초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지요.
마냥 이런 아이들이 부럽고
나도 이렇게 천재나 영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부러워했던
이 아이들은 커서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솔직히 어렸을 때의 천재성이
성장해서까지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4살 때 검사한
지능검사에서 IQ 210을
기록해서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으로 기네스북까지
올랐던 사람도 현재는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부러워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특히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은
 부러움이 더욱 더
짧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 안에서 대단한
부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후대에
인정받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일까요? 아닙니다.
 돈밖에 몰랐다면
 욕을 먹고 있을 테고,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 ‘돈’을 잘 활용해서 이 세상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결국 이 세상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것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신 미래를 바라보면서 했던
행동은 대단하게 평가받습니다.
소위 예전에 잘 나갔다는 분들이
 술 한 잔 걸치시면 “내가
왕년에~~~”라는 레퍼토리를
 쏟아내십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와~ 부럽다. 나도 그렇게
살았으면.... 이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있어.’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무용담과 같은
이야기는 관심이 없으며,
지금과는 전혀 상관없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듣기 싫은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이야기,
지금을 더욱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삶을 향하길 늘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버리고
예수님을 곧바로 따릅니다.
이는 요나의 말 한마디로
하느님을 믿고 악한 길에서
 돌아선 니네베 사람들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이 모습에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내리시기로 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지요.
(요나 5,10 참조).
제2독서의 사도 바오로도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코린 7,29)
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권고하십니다.
이제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에 “예!”
라고 응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예”는 충만하고 전적이며,
평생을 걸만큼 조건 없는 “예”입니다.
어중간한 “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솔직하게 어중간한
“예”에 길들여있는
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못하겠습니다.”,
“오늘은 안 되고,
내일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내일은 좀 더 나을 거예요.
내일 기도드리겠습니다.
선행도 하겠습니다. 내일이요.”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이러한 어중간한 “예”를 통해서는
주님의 초대에 제대로 응답할 수
없음을 기억하면서 가장 큰 가치인
주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예”를
기쁘고 또 힘차게 외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탈무드)
예수님의 제자들을 불렀던 갈릴래아 호수입니다.
"친구의 동기부여"
(‘따뜻한 하루’ 중에서)
  초등, 중,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저는 원하는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력서를
내는 곳마다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친구는 취업 준비 생활이
조금 길어진다 싶더니 몇 년이
지나도 이 친구가 취업하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걱정과 조언을 해도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있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라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만 늘어났습니다.
급기야 친구의 부모님도 포기하고
방치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 친구가
걱정되어 만날 때마다
 ‘취직해, 취직해’라고
잔소리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저는 회사에서
 상사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경위서에 감봉까지 억울하게
당했던 날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그 날
그 친구를 만났고
그만 이렇게 말해 버렸습니다.
“회사 생활 왜 하는지 모르겠다.
 네 팔자가 나보다 백번 낫네.”
친구는 당황한 눈으로
저를 바라봤지만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너 그냥 평생 그러고 살아라.
차라리 네가 정말 부럽다.”
그런데 한 달 후,
 친구가 한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왜 심정이 변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나한테 잔소리하던
너마저 포기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정말 무서웠어.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다시 도전하게 되었어.”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내가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동기부여를 찾아봅시다.

 

 

 

 

 

 

 

 

 

 

 

제단 자체가 갈릴래아 호수같은

막달라 성당의 제단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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