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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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사람을 발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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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02-13 ㅣ No.4528

2월 14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마르코 7장 31-37절

 

"에파타"

 

 

<내 한사람을 발견하는 일>

 

언젠가 귀에 약간의 이상이 생겨서 이비인후과 신세를 진 적이 있습니다. 바닷가에 다녀온 후 약간의 청각장애가 생겼던 것입니다. 귀구멍에 하나의 막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과 함께 대화에 약간의 지장이 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귓속에 이물질이 들어있네요. 일단 이 약을 귓속에다 수시로 넣으시고 내일 다시 오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빨리 나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액체로 된 약을 열심히 귓속에 부어넣었는데, 계속해서 몇 번을 넣고, 또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솜으로 꼭 틀어막으니 아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무인도에 혼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저는 주변의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딱 하루 동안의 불편함이었지만 그 불편함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었지만 홀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식사시간에 형제들이 뭐라고 뭐라고 말을 붙여왔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저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었지요.

 

청각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과 불편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절실히 체험했던 하루였습니다. 청각장애란 단순히 안 들리는 것을 넘어 상당부분에 걸친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였습니다. 청각장애만 해도 서러운 일인데, 설상가상으로 언어장애까지 겹쳤습니다. 중복장애자였던 것입니다. 듣지 못하는 것만 해도 이만저만 불편한 일이 아니었는데, 말까지 제대로 안되니 그것보다 더 답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인간이 사회 안에서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 형성" 입니다. 그런데 보통 관계의 시작은 의사소통을 전제로 합니다. 또 의사소통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거기에 응대하는 것 다시 말해서 귀와 입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소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도구인 귀와 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이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복 장애인은 철저한 고독감과 소외감 속에 답답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예수님의 구체적인 사랑-적극적으로 표현된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말로만 보여주지 않으시고 몸으로 구체화시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은 중복장애자를 따로 불러냅니다. 이는 예수님 사랑의 특징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많은 군중 속에서 도움이 필요한 내 형제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 한사람을 발견하는 일이겠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손가락을 그의 귓속에 넣으시며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위 역시 극진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행위입니다.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한 표현인 연민을 바탕으로 한 스킨십을 사용하십니다. 너무도 가련한 한 인간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진실한 사랑은 말이나 생각으로, 문자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에파타" 라고 외치시며 사랑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확고한 신뢰심과 중복장애인을 향한 연민의 마음, 간절한 기도가 어우러진 외침이 바로 "에파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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