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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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終末)이 창조(創造)를 앞선다. (이사65,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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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로마노 [rlawhddjq] 쪽지 캡슐

2024-03-11 ㅣ No.170485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종말(終末)이 창조(創造)를 앞선다.

제1독서(이사65,16-19)

16 땅에서 자신을 위하여 복을 비는 자는 신실하신 하느님께 복을 빌고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신실하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여라. 지난날의 곤경들은 잊혀지고 내 눈에서 사라지리라.

= 땅의 복(福)이 아니라 하늘의 복(福)을 청(請)하고 맹세해야 땅의 모진 풍파, 곤경, 시련이 사라진다는 말씀이다.

복(福) “바라크”는 창조(創造) “바라”에서 파생된 말로 ‘하늘의 생명력’을 뜻한다. (하늘의 생명만이 영원한 빛이기 때문이다)

(잠언14,27) 27 주님(야훼)을 경외함은 생명의 샘이니 죽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 야훼-있는 나-스스로 존재하심.

(시편42,3) 3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그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

17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 이미 이루신 첫 창조를 재창조, ‘새 창조로 이루실 그 새 예루살렘(도성, 성전)과 새 백성’으로다.

19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께 죽기까지 순종(順從)하신 흠도 티도 없는 맏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받으신다.(탈출22,29 참조)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으로만 즐거워하시며 기뻐하신 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의 것을 추구(追求)하며 살았던 나를 부인(否認)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들어가 그분의 지체(肢體)가 되었을 때 하느님은 그 깨끗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보시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즐거움,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說明)한 것이 창조(創造)다. 공부해 보자~앞서 확인했듯이 첫 창조는 새 창조를 위한 것이다.

첫 창조(創造)~

(창세1,1-3)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새 창조(創造)~

(묵시21,1.-4.22-23) 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22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 아담이 첫 창조물인 에덴에서 하느님의 말씀, 뜻을 거스리고 자신의 뜻, 욕망(慾望)대로 살고 싶어 뱀의 유혹(誘惑)을 먹었다.

(창세3,17-19)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 아담은 영원(永遠)한 죽음에 갇히게 된 것이다. 아담처럼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신앙을 사는 사람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카파르나움의 병자(病者)’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 그 아비의 믿음으로 살아난 아들이 새 창조의 새 사람이다. (카파르나움- 나를 위한 고을, 집, 성전)

“종말(終末)은 한 처음 완성(完成)이다.” “종말(終末)이 창조(創造)를 앞선다.”라는 말이 있다. 하느님은 ‘한 처음(太初)’이 목적이 아니셨다. 살리시기 위한 묵시록 22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이었다. 하느님은 그 불가능하고 패역한 인간(아담)들을 당신의 속성(사랑)이 하나도 손상됨 없이 어떻게 거룩한 하늘 백성들로 재창조, 새 창조를 해 나가시는가를 설명한 것이 성경(聖經)이다.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십자가(十字架)의 사랑으로 새 창조(創造)를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첫 창조는 첫 계약을 뜻하며 새 창조를 이루는 두 번째 계약인 새 계약이다.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갈라6,14-15) 14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1코린15,20-22)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짚어보자)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창조론(創造論)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닷새동안 모든 만물(萬物)을 창조해 놓으시고 여섯째 날에 사람을 지으셨고 바로 안식(安息 7), 복(福)을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창조론(創造論)이다.(창세2,2-3)

그냥 하느님과 함께 그 안식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스스로 안식을 이루려고, 곧 진화(進化)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 경지(境地, 안식)에 이르려 하는 것이 진화(進化)다. 그러나 땅의 경지로는 절대 하늘의 안식을 누릴 수 없다.

뱀의 유혹으로 아담(사람)들의 상식(常識)이 된 것이 진화론(進化論)이다. (창세3,5 참조) 그러니 세상(世上) 사람들은 진화론(進化論)이 맞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을 아는 것, 믿는 것이 얼마나 큰 복(福)인가! 이렇게 하느님의 고급(高級)하고 멎진 계획(計劃)속에 들어있는 것이 우리(聖徒)의 인생이다.

그런데 땅의 것을 소망(所望)하며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땅의 것으로 절망(絶望)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느님의 나라를 소망(所望)하며 이 땅에서 저 땅, 곧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準備)하며 사는 것이 우리 성도(聖徒)들의 인생이다. 하느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로만 설 수 있음‘이다.

다시 되새기자~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하느님의 즐거움, 기쁨이 될 수 있음을, 그 길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이 되게 하소서. 자라게 하소서. 저희가 하느님으로 즐거워하며 기뻐 할 수 있도록 저희 모두의 마음에 불을 놓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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