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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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형제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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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형 [largo7a] 쪽지 캡슐

2001-03-23 ㅣ No.3131

 

이 얘기는 바오로 형제의 체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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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에 대한 추억은 그의 일상생활에서 항상 가톨릭 신자의 향기를 뿜어내는  신앙심이 깊고, 넉넉한 품성을 지닌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바오로 형제와 나는 일산이 지금의 신도시로 탈바꿈하기 훨씬 이전에  일산의 유일한  성당의 주일학교 교사였다.

바오로 형제와 더불어 우리 몇몇은 거의 아침저녁으로 만났다,

아침에는 서울행 통학 열차에서 밤에는 성당이나 바오로 형제 집에서 그 시절 그 나이 또래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을 나누었고, 때로는 밤을 세워가며 품고 있는 꿈을 나누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하느님께서 짝 지어 주신 아내를 만나 하나 둘 일산을 떠났다.

 

나는 바오로 형제가 어떤 계기와 무슨 이유로 그의 가족을 데리고 남미 브라질에서 불법체류자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는지,  그 진상은 모두 기억할 수가 없다.

해외로 이민 간 사람들이 겪어야 할 고난과 흘려야 할 땀은 실제로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새벽 별 보며 일터에 나가고, 파김치가 되어 저녁별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러한 고역의 시간이 지속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달프고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없는 생활이었다.

더구나 영주권이 없고,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그들의 생활은 불안과 고통 등 그 두 어휘가 갖는 의미 그 자체였다.

그와 아내가 생계비를 벌기 위해서는 농장에서 품을 팔거나, 봉제공장에서 일을 거들거나, 식당에서 허드렛일 등을 해야만 했다.

 

때로는 이민국 직원이 불시에 불법체류자 단속을 나오는 경우, 미리 마련해 놓은 비밀 문을 통하여 도망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담을 넘어서라도 위급한 상황을 피해야만 하였다.

 

애들의 학교문제도 다른 한국교포의 자식으로 등록시켜 교육은 시켜야만 하였다.

 

하루는 평소 알고 지내는 교포 한 분이 그가 살고 있는 도시로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는 농장에서 농번기 동안 농장 일을 돌볼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곳에는 이민국 단속도 없고, 시간당 노임도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귀띔해주었다.

 

바오로 형제는 그 교포가 일러준 데로 그 농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말 힘겨운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어느 날 농번기 일을 다 끝내고, 그는 아내와 아들, 딸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농장과 바오로 형제의 집이 있는 도시를 가르며 크고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강물 위로 도시와 농장을 잇는 교량이 하나 있었다.

그 교량이 형제의 시야에 안겨왔다.

아내와 애들을 만난다는 기대와 기쁨으로 그 동안 중노동으로 지친 육신의 고통도 더 이상 그를 괴롭힐 수는 없었다.

 

거의 교량에 접근했을 무렵 놀라운 광경이 그의 심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교량 건너편에는 형제가 농장으로 갈 때는 볼 수 없었던 이민국 직원들이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검문하고 있는 것이 먼 발치로 보였다.

집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교량을 통과해야만 했다.

두 다리에서부터 온몸에 힘이 모두 일시에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충격적인 상황과 남미의 찌는 듯한 한 여름의 더위가 그를 어지럽게 하였다.

그는 길 섶 바위 위에 주저앉았다.

그 바위는 불 속에서 달군 돌처럼 뜨거웠다.

그는 바위에서 일어 날 마음도 기력도 없었다.

그의 작업화 위로 그가 흘린 눈물이 떨어져 번지고 있었다.

아내와 자식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일시에 떠올랐다.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그는 자신이 철저하게 버림받고, 격리된 것처럼 느꼈다.

그의 황토 흙 묻은 작업화 위로 다시 눈물이 떨어져 번지고 있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 들었다.

하느님을 믿은 이래로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는 묵주였다.

기도를 드리는 동안 차츰 마음의 평정을 회복해 갔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의지하는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이 죄인을 도와주소서, 아버님! 도와 주소서.

제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해주소서

 

시간이 한참 동안 흘러갔다.

 

한 무리의 원주민이 농장이 있는 방향으로부터 그가 앉아 있는 교량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동양사람 모습 같았다.

그 동양사람이 그가 앉아 있는 위치로 다가옴에 따라 그가 어디선가 만난 듯한 얼굴이라 생각하였다.

그 사람도 바오로 형제의 얼굴을 보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동안 바오로 형제를 보고 있었다.

한순간이 지난 다음 그들은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고, 놀라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를 힘차게 포옹하였다.

그 동양사람은 바오로 형제와 함께 어린 시절을 일산에서 함께 보낸 동무였다. 몇십 년을 만나지 못하다가  

정말 뜻밖의 나라와 장소에서 이루어진 해후였다.

바오로 형제는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그 친구에게 설명하였다.

그 친구는 웃으며 아무 말 말고 자기만 따라 오라고 했다.

그 어린 시절 동무는 바오로 형제의 손을 꼭 잡은 체로 이민국 직원 곁을 지나갔다.

그 친구와  이민국 직원들은 서로 인사까지 나누는 아는 사이였다.

 

바오로 형제는 건널 수 없는 다리를, 마치 기적과도 같이 나타난 어릴 적 동무의 도움으로  그 건널 수 없는 그 다리를 무사히 통과하여 사랑하는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그 이후 바오로 형제는 하느님의 존재를 체험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신앙심을 통하여 하느님의 존재를 믿었으나, 뜻하지 않은 그 친구와의 만남을 통하여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바오로 형제로하여금 굳게 믿도록 하느님께서는 허락하셨다. 지금도 바오로 형제는 가까운 이들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자신의 체험을 들려주고 있다.

 

나도 그의 체험을 굳게 믿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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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형제는 남미에서의 고난의 세월을 뒤로하고 지금은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스에서 가족과 함께 성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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