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순례기" (성지 중의 성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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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희 [donhee20] 쪽지 캡슐

2014-05-05 ㅣ No.826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지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순례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 돈 희 임마누엘

아버지날과 노인의 날 만든 이/ 노인학 및 예수님생애연구가/감정평가사/국민고충처리위원회 민원상담전문위원/「효친경로사상의 부활을 위하여」저자

순례 계획

지난 10월 15일부터 10월 27일까지 12박 13일 동안 위 지역을 순례하기로 한 것은 저의 회갑과 성일여고에서 28년간 교편을 잡고 수고한 동갑인 아내의 명예퇴직과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 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하루 늦은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여행하기로 계획을 세웠던 것이나 출발 며칠 전에 서울 우면동 성당에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인 이종성 ? 임춘자 부부가, 우면동 성당 (한상호 주임신부) 순례단 30명이 (주)가톨릭여행사를 통해 하루가 빠른 10월 15일에 출발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전연 모르는 사람들과 가는 것보다는 친구 부부가 가는 순례단에 같이 가는 것이 분위기도 좋고 더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 우면동 성당 순례단과 같이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스, 터어키,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등 ‘일반적인 기독교 순례지’는 이미 순례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하느님이 우리 온 인류를 위해 친히 사람으로 태어나시고, 피난가시고, 자라시고, 땀 흘리시고, 세례 받으시고, 유혹 받으시고, 제자 모으시고, 고민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곳, 곧 ‘성지중의 성지’인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에는 처음 가는 저와 제 아내 강연식이 어디 그냥 해외 관광 다녀오는 기분으로만 가겠습니까?

몇 백년 먼저 태어나도 좋고, 수십 년 늦게 태어나도 무방할 저희 부부를 같은 시대에, 한국에 그것도 남한에서, 같이 태어나게 해 부부로까지 만들어 주신 하느님과 부모님, 장인장모님께 감사드리면서, 앞으로 저의 남은 생애에서 제가 해야 할 사명과 화두를 받고자 가는 순례입니다.

그동안 저의 책이라든가 신문과 잡지에 난 기사나 글을 보신 분, TV 나 라디오 방송을 보고 들으신 분, 주위에서 저의 부모님과 저의 지나간 삶을 지켜 본 사람들은, 부모님과 제가 어느 정도 고난과 병마에 시달리며 싸워왔는가를 짐작만이라도 하실 겁니다. <필자 주>

2007년 10월 15일(월) 여행을 시작하며
성지순례단 집결지인 우면동 파출소 앞에 집결하여, 한상호신부님을 포함한 순례단과 처음 인사를 나누고, 여행사에서 제공한 버스로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 도착하다.

여행사에서 나온 가이드 이왕휘 대리를 포함한 32명의 순례단 중 부부는 친구인 이종선 ?임춘자 부부와 저희부부와 지홍장?정완희 부부 등 모두 3부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혼자 온 여자들이다. 부부가 반반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신부님 포함하여 남자 6명 여자 26명이다.

오후 1시 35분 인천 국제 공항 출발 후 7시간 후 네델란드 암스텔담 공항 도착, 다시 항공 환승후 네델란 암스텔담 출발하여, 4시간 후에 이집트 카이로 항공에 도착하다.

10월 16일(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여행 첫날 첫 코스는 성요셉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참례하는 것으로 시작하다. 첫날 드리는 나의 간절한 미사 지향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육신의 치유이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이집트로 피신하신 장소를 기념하여 건립한 예수 피난 성당은 성당 이름 그대로 출입통로도 협소하고 지저분하고 음산하기 짝이 없다. 헤로데의 “아기 예수를 찾아 없애라”는 명령을 피하기 위하여 먼 타국 땅 이집트까지 나귀타고 피난을 가셔야 하는 성 요셉과 성 마리아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어렵게 이집트에 오신 후에도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여기저기로 숨어 다니시지 않았을까?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이집트 고대의 역사적 유물을 관람하다.
세계 고대 7대 불가사의로 이름난 가자지구의 피라미드는 현대 21세기의 건축물로도 따라갈 수 없는 건조물이 아닐 수 없으며, ‘공포의 아버지’란 뜻을 가진 스핑크스 또한 명물이 아닐 수 없다.

10월 17일(수) 룩소에서
룩소는 수도 카이로 남쪽에 위치하며 비행기로 1시간, 열차로는 12시간 소요되는 곳이다. 관광객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대부분의 유물이 나일 강과 연결되어 있다. 팰리스 호텔에서 식사 후 9시부터 왕가의 계곡과 합세슈트 장제전을 관람했다.

사진전문가인 한상호 신부님이 몹시 뜨거운 날씨로 고생하는 순례단 전원에게 햇볕을 가리는 긴 머플러를 선물하였다. 단체사진도 찰깍! 인근에 위치한 맴논의 거상을 관람하고, 점심식사를 위해 팰리스 호텔로 되돌아오다.

점심 식사 후 신부님께서 훗날의 추억을 위하여 일정에 없는 일정을 만들어 주신 것이 호텔에서 룩소 시장까지의 마차타기이었다. 시간은 40분 정도였지만 두 사람씩만 타는 마차다 보니 순례단 전원을 위해 16필의 마차와 16인의 마부가 동원되어야 했으며, 좁은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량들과도 앞뒤를 경쟁하듯 질주하고, 좁디좁은 시장골목을 곡예하듯 달려서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여간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다음 목적지인 카르낙 신전과 룩소 신전을 관광하고 룩소 공항으로 이동하여 다시 카이로에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대원군시대 때처럼 이집트에는 종교집회의 자유가 없다. 그래서 망을 보면서 미사참례를 호텔내의 신부님 방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순교자들이 이랬을 것이다. 지금은 마치 세계 각국의 종교 박람회장이라도 된 것 같이 다종교가 공존하는 우리나라도, 발각되면 끌려가서 갖은 고문과 형벌을 당하고 순교한 것이 불과 200여 년 전 일이다.

나의 오늘 미사지향은 어머니의 영육간 건강이다. 벌써 10년을 고생하시면서 화장실출입도 전연 불가한 79세 어머니다. 내가 태어나기전인 60여년 전부터 병약한 어머니가, 살아가는 고통이 심하셔서 “하느님은 안계신다” 하시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이다.

국내외 성당 어디를 가건 하느님과 특히 성모 마리아님께 도움의 촛불 기도를 드린 지가 5년이다. 10년전까지는 순교라도 하실만큼 열심한 신자이셨는데, 당신 몸이 너무 오래 아프다보니 “ 하느님도 없고 기도도 효과가 없다.” 생각될 때가 있으신 것 같다.

개신교 일부에서는 “하느님께 직접 기도드리지 왜 같은 인간인 마리아에게 기도드리느냐?”고 우상숭배 운운하지만, 참된 중보기도의 의미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가톨릭에서도 당연히 하느님께 기도드린다. 다만, 하느님이자 인간이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님은, 모든 인류의 어머니이기도 하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한 이를 위해 마리아님께도 중보기도 드려 주십사고 겸손하게 청원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씀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부화기에서 태어난 병아리는 어머니를 모른다. 하느님과 어머니를 모르는 인간은 부화기에서 태어난 병아리 같은 인간이다.

육신의 어머니인 자기 어머니는 물론 영혼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님도 잘 알고, 효도하며 공경하는 것이 자식인 우리 인간들이 해야 될 일이 아니겠는가? 신자가 사제나 목회자에게도 기도를 부탁할 수 있을진대, 하물며 자애로우신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님께도 중보기도를 청원함은 당연하지 않는가?

10월 18일(목) 모세 기념성당, 홍해 등에서
9시 30분 경 나일 강가에 있는 모세기념성당을 순례하다.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이 모세를 바구니에 넣어 강물에 띄운 장소를 기념한 성당이라고 한다.

이 성당 순례 후 나일 강에서 페루카라는 유람선을 한시간 가량 탔다. 말로만 듣던 나일 강에서 한국인에게 이런 기회가 두 번 다시 있으랴 싶은 생각에서인지 순례단 모두가 감격하면서, 갖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예쁘다. 모세의 탈출 여정을 따라 광야의 사막을 달린 후 한국인 식당에서 마련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모세가 쓴 물을 단 물로 바꾼 셈이라고 전해오는 마라의 샘에 도착했다. 아쉬운 것은 수에즈에서 54Km, 홍해 남측 26Km 지점에 있는 이 샘에 대한 안내판 하나 없이 너무 지저분하게 방치되고 있는 점이다. 이 샘 근처 이름 모를 나무를 그늘 삼아 더위를 피하면서 미사에 참여했다.

오늘 미사의 지향은 아버지와 장인장모님과 하느님을 모르고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그 윗분 조상님들을 위해 미사를 드렸다.

홍해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당시에 물길이 갈라졌다는 유명한 장소이다. 홍해에서 유황이 나오는 지역은 손발을 담그기가 힘들 정도로 뜨겁고, 인근 동굴 안은 한증막 이상으로 온도가 높아 찜질방을 좋아하는 한국의 여인들도 금방 혀를 내두르고 나온다. 저녁은 플라자 호텔식당의 양고기가 일품이고, 내일은 대망의 시나이 산 등반이 있는 날이다.

10월 19일(금) 시나이 산 등반이 오늘의 하일 라이트
시나이 산 등반은 일출 전에 도착하기 위하여 새벽 2시에 출발한다. 가로등이 없어 달이 밝지 않으면 캄캄하여 손전등이 필요하고, 앞사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2285m 높이지만, 등반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1500m 정도까지는 낙타를 타고 올라가고, 나머지는 걸어 올라가는데 가파르며, 700계단이라고 한다.

산 정상에는 모세성당이 있어서 거기서 세계적인 장관인 일출을 보면서 미사를 드리고, 추위를 이기기 위해선 즉석 라면이 대인기라고! 세계각지에서 순례객이 많이 오다보니, 성당에서 미사를 못드리면 평평한 바위를 찾아 드려야 한다. 시나이 산을 내려 올 때는 올라갈 때와는 달리 낙타를 이용할 수 없으므로, 미끄러운 돌산을 조심조심 내려와야 넘어지거나 무릎을 다치지 않는다.

필자는 출발 전부터 허리 통증으로 침을 맞는 중이었으므로, 등반을 하지 않기로 하고 숙소에서 기도와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일생에 한 번, 시나이 산 입구까지 갔으면서, 등반하지 않고 그냥 오자니 무척 아쉽기도 했지만, 무리한 등반은 피해야 한다. 단체순례에서 사고가 나면 자신도 엄청난 고생이지만, 함께 간 다른 순례객에게도 미안하고,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고, 걱정을 끼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한 자매님이 내려오다가 손목과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가 났다. 부축받아 내려 온 후, 현지 병원을 찾아가 기다리고, X-RAY 촬영 등 진찰 후 깁스붕대를 하고 돌아오는 동안 순례단 모두가 전용버스 안에서 대기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소비했음은 물론 그 자매님은 순례기간 내내 고생이 뒷따랐다.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홍해의 누에바 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훼리호 승선권을 구입 후, 요르단의 아카바 항의 승선 시간인 오후 2시에 늦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예약된 식당에서의 점심식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급히 주문한 도시락을 버스에서 게눈 감추듯 먹어야 했다. 그러나 승선시간인 2시부터 2시간이나 기다린 4시까지도 승선시키질 않았다. 4시 10분쯤 승선하고도 약 2시간을 기다린 6시에야 겨우 출발하여 1시간 배를 타고 7시에 아카바 항에 도착했다. 도착 후 하선에만도 2시간을 보내야 할 만큼 수속도 복잡하고, 시간관념이 없는 것 같다. 아키바 항에 내린 후 요르단 입국시에도 입국심사가 어찌나 지연되는지 아무 구경도 못하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페트라의 그랜드 호텔에 밤 11시 30분이 넘어서야 도착하였다.

10월20일(토) 페트라, 알카즈네 신전, 카락 성 등 순례
기원전 7000년에 세워진 페트라 역시 세계 고대 7대 불가사이중의 하나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마지막 성배’ 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모세가 하느님의 명령으로 유대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던 중, 당시 에돔 왕국의 수도이던 이 곳의 통행허가를 받지 못하자 멀리 우회하여 느보 산으로 가게 되었다 한다.

알카즈네 신전은 폭 5m, 높이 100~200m, 길이 약 1500m 의 페트라 협곡을 지나면 나타나는 거대한 신전으로, 기원전 1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고전적 헬레니즘 건축양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할만하다.

카락 성은 고대로부터 모압 산지의 방어 요새이며, 3면이 깊은 계곡으로 둘려 쌓여 있다. 정상에는 옛 요새의 잔여 부분과 십자군이 그 위에 다시 지은 성채의 유적이 남아 있는데, 오늘 미사는 지붕이 다 날라 가서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이 성채에서 거행되었다.

나의 미사 지향은, 앞으로 두 달이 남은 대선에서 후보자 중 여당이든 야당이든, 무소속이든 관계없이, 가장 대통령다운 분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나라와 경제와 국방과 교육과 언론이 안정되길 빌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후 정치 ? 경제 ? 국방 ? 교육 ? 부동산 ? 언론 ? 우리 인간의 심성, 특히 “그놈의 헌법” “한방이면 날라간다” “국민이 노망든 것 아닌지” 등 정치인들의 언행이 비뚤어져만 가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제발 이러한 잘못된 것들을, 제대로 바로 잡고 정상으로 회복시켜주는 정부, 즉 정상회복정부(正常回復政府)가 탄생되길 기도했다.

이는 본지 지난 10월호의 특별기고에서 “백두산에 올라 정치? 도덕 정상회복 기원하며” 제하에 “새로 태어나는 정부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잘못할 것을 시정하는 모토로 하는 정상회복정부가 되어서, 제발 국민들이 하루하루를 놀라지 않고, 서로 신뢰하면서 큰 걱정없이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정부가 태어나기를 기도 하였으며, 앞으로도 기도할 것입니다.'"라는 기원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우리나라 백두산 정상에서 기도에 이어 예루살렘의 카락성 정상에서 다시 한번 간절히 기도하게 된 것이다.

10월21일(일) 요르단에서 이스라엘까지
마다바에서 동북쪽 약 10Km 지점에 있는 해발 835m인 느보 산은 이집트 탈출기의 마지막 기착지이다. 40년 동안 광야에서의 방랑생활을 끝내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세는 이곳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 현재 느보 산 정상에는 무덤 위에 처음 세웠다는 모세기념 성당이 있다. 하느님으로부터 40세에 시나이 산에서 10계명을 받고, 무려 40년간의 방랑생활을 이끈 80세 모세의 장엄한 사명이 이 산에서 끝난 것이다.

모세기념성당 앞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사해와 예리고 지역이 보인다. 맑은 날에는 멀리 예루살롐의 올리브 산 지역까지도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느보 산을 내려 온 후 세례자 요한이 활동한 요르단 강 건너편 베다니아를 구경했다. 이어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바로 그 요르단 강 세례 장소의 저수조(貯水槽)에 손을 담그니 감회가 깊어진다.
요르단강! 어릴 때 어딘 지도 모르고 즐겨부르던 찬송가(장송가)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가 바로 이 장소로구나!

내가 중3 때 세례를 받고 47년을 기도드린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바로 이 장소에서 1977년전 쯤에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으셨구나 생각하니 신자로서, 예수님 생애연구가로서의 사명감이 더 막중해짐을 느낀다.

80세에 일생을 마친 모세의 40년의 사명을 생각하면서, “16세부터 60세 까지의 미소한 저의 45년간의 사명이 「사라져가는 효친경로사상의 부활 」이라면, 이제 60세 이후부터의 사명을 새로 주십시오.” 하는 지향으로 미사를 드렸다.

각국에서 온 순례객 중에 이 저수조에서 세례를 받는 여인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물에 머리 전체를 담구며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는 그 여인은 오늘 세례가 좋은 추억이 되어, 열심한 신자가 될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점심 후부터는, 요르단 국경을 넘는 요르단 출국과 대망의 이스라엘의 입국이 주요 일정이다. 요르단 입출국과 예루살렘의 입출국 절차는 너무도 까다롭다. 시간도 엄청나게 많이 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여행가방을 다 풀어 헤쳐놓고 검색하기도 한다. 항공납치나 폭탄테러가 흔히 있는 나라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좋게 생각하기도 하고, 이것도 외국여행의 불가피한 절차다 생각하고 지루함을 달래기로 했다. 얼마나 위험시되면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최근 이 지역의 순례계획을 취소했으랴!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밤늦게 도착한 이스라엘, 그 유명한 갈릴래아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감미로운 바람 속에서 야경을 즐길 수 있었다. 순례단 모두 이번 순례 참 잘왔구나 생각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더불어 노를 저으시고, 생활하시고, 설교하셨던 이 곳 바로 갈릴래아 호수에서 40분간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호텔 인근에 있는 맥주 바에서, 순례단 여럿이 함께 마시는 맥주 맛은 그야말로 짱이었다.

내일부터는 정말 본격적인 이스라엘 여행이 기다리고 있구나 생각하니 매우 감격스러워서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오, 하느님! 저희 부부를 이곳 까지 불러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10월22일(월) 중요성당 ,카파르나움, 타볼 산, 카나 등등
8시에 진복팔단 성당, 9시 30분 오병이어 기적성당, 10시 카파르나움, 10시 30분 세리였던 마태오의 집, 11시 무렵에 베드로 수위권 성당을 거쳐 타볼 산으로 올랐다. 타볼 산은 예수님이 변모하신 곳으로 유명하며, 정상에 위치한 두 개의 기념 성당 중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속한 예수의 영광스런 변모의 기념 성당에서 12시 쯤 미사가 이루어졌다.

미사 지향은,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치유해줄 수 있는 치유은사에 두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과 스스로는 물론, 주변에 심한 질병이나 난치병으로 장기간 고생하는 수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의 어려움을 목격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이후의 삶은 이런 분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에서이다.

치유은사는 내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야 되는 것이니 만치, 우선 이 은사를 받을 수 있는 도구가 되기에 합당하겠끔 부단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노력하며 살아가겠다.

오후 3시 예수님이 공생활 시작 후 첫 기적으로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카나에 도착했다. 세계각처에서 온 부부 순례객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다른 순례객들의 진심어린 축하를 받으면서 혼인갱신식을 한다.

처음 결혼 때 처럼 촛불을 밝힌 후 기도하고 성가(찬송가)를 부르고 예물을 교환(키스)하는 혼인갱신식이 끝나면 “이 것을 보는 모든 이에게, 이 한 쌍의 부부가 이 성지에서 자신들의 혼인을 갱신했음을 굳게 증언합니다”라는 카나 성당 원장 신부와 인솔자 신부가 서명한 증서를 받아 기념하게 된다.

필자와 친구 부부 등 3쌍의 부부가 같이 혼인 갱신식을 했다. 명동성당에서 세분의 신부님을 주례신부로 모시고 결혼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듯 34년 만에 예수님이 첫 기적을 일으킨 장소에서 하는 혼인갱신식이라 그 기쁨 배가 되었고, 예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지만 성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시어 , 첫 기적을 이루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저희도 언제라도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녀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10월 23일(화) 카르멜 산, 카이사리아, 십자군 요새, 야포
오전의 순례는 카르멜 산이다. 카르멜 산은 경건과 기도의 산, 거룩한 산으로 이 산에 있는 동굴은 예언자 엘리아와 십자군 전쟁에서 패한 군인에게는 안전한 피신처이기도 했다. 또한 우상인 바알을 섬기는 450명의 예언자들과 주님을 섬기는 예언자 엘리아가 불의 대결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미사는 이 예언자의 불의 제단 성당에서 있었다. 나의 미사 지향은 이번 성지 순례를 위해 열성을 다하는 한상호신부님과 순례객 가족 모두에게 주님의 가호가 있으시길 바램이었다.

오후의 첫 번 순례지는 카이사리아로 가서 헤로데 왕 때 지은 2000명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던 원형극장과 당시 항구 가까이 지은 집터와 수영장터를 구경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물은 수로를 만들어 카르멜 산에서 끌어서 저장한 장소가 남아 있고, 영화 벤허의 마상경기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어디 그 뿐이랴! 서기 30년 4월7일에 예수께 십자가 사형언도를 내린 빌라도 총독도 이곳에 살았으며,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된 후 압송되어 미결수로 2년 동안 구속되어 있던 장소이기도 하다.

거대한 십자군 요새를 거쳐 다음으로 간 곳은 항구도시 야포이다. 지중해 연안의 해변도시로, 이스라엘 사회 문화의 중심지인 텔아비브에 위치한 지구상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라 한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 레바논에서 벌목한 목재를 운반해온 항구이기도 하다.

이태리 로마처럼 여기에도 베드로 사도 성당이 있다. 이 성당 왼편 좁은 주택가 골목으로 내려오면 막다른 골목에 무두장이 시몬이 살던 집도 있다. 현재 개인소유인 이 집의 대문 위쪽에 “ 시몬의 집” 이라고 낙서처럼 쓰인 조그만 팻말이 2000년의 세월을 느끼게 한다.

2시간의 자유시간이 있어, 각자 성당에서 기도를 하거나 점포에서 쇼핑을 하거나 벤치에서 피로를 풀기도 하다가,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숙소인 노보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10월24일(수)예수님 탄생성당, 카타리나 성당, 예수 승천기념성당 등등
창조주 하느님이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어 태어나신 장소가 베들레헴에 소재한 예수님 탄생성당이다. 현재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며, 동굴에 예수님 탄생 터와 구유의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가 베들레헴으로 순례를 와서 예수의 탄생지로 전해 내려오는 동굴을 참배한 후 아들에게 부탁해서 바로 그 동굴 위에다 성당을 짓게 한 것이다.

억만겁 세월의 창조주가 2천여년전에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신 곳이 바로 여기라니,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오! 하느님, 죄 많은 우리 인류의 속죄를 위해 죄만 빼고 우리 사람처럼 오신 예수님! 단 10초 앞이라도 볼 줄 알면 교통사고로 죽는 일은 없겠지요.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는 일도 없겠지요. 이처럼 한치 앞도 못보고 살아가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한 몸 편하자고 자식을 귀찮아 하고, 부모를 돌보지 않고 살아가기도 하는 우리 인간들의 악한 마음을 고치게 해주소서!

말 잘하는 어느 여자 목사는 자기가 모셔야 될 형편의 친정어머니를 성격이 맞지 않아서 같이 못산다 합니다. 먹을 것 없어 굶거나 굶어죽는 사람도 국내외 할 것 없이 많은데, 맛 없다는 핑계로, 배부르다는 이유로, 절반 이상을 그냥 쓰레기로 버리는 저희가 안되도록 절약하는 마음 갖게 해주소서! 버리는 대신 가난한 사람 돕는 사랑의 마음 갖게 하소서!

이 성당 왼편의 근대식 성당인 성카타리나 성당 지하 동굴에는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원전의 신구약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의 무덤이 있다.

시온 산에는 최후의 만찬 기념성당, 성모영면성당이 있으며, 최후의 만찬 기념성당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한 곳으로 십자군시대의 경당이라고 한다. 1층 경당에는 세족례 기념성당, 토마사도 기념성당, 다윗왕 기념성당, 2층에는 성체성사 기념성당,성령강림 기념성당 등, 주요 성당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어 주 기도문 성당 벽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각국의 주 기도문이 자국어로 기록 되어 있다, 예수님 눈물 성당을 순례한 후, 세간에 통곡의 벽으로 널리 알려진, 제 2 성전의 서쪽 벽은 유다인 신자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이다. 유다인들은 아직도 여자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관습이 있는지, 남자와 여자의 출입구가 다르다. 남자가 가는 왼쪽 통곡의 벽, 여자가 가는 오른 쪽 통곡의 벽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따라서 아무리 부부라도 남자는 남자만의 통곡의 벽, 여자는 여자만의 통곡의 벽으로 들어가서 기도할 수밖에 없다.

7시가 훨씬 넘어 캄캄한 밤에, 시시각각 다가드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고뇌하셨던 예수님의 체취가 담겨있는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지어진 겟세마니 성전에서 성시간(聖時間) 예절을 가졌다.

이 성전이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눈을 끄는 것은 성전 자체의 엄숙하고 긴장되는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제대 앞에 놓여진 넓고 평평한 큰 바위이다. 이 바위를 보면, 땀이 피로 변할 만큼의 고뇌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 드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행 모두가 딱딱하고 찬 이 바위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손과 얼굴을 바닥에 대고 올바른 사람과 신자가 되고자 기원하는 성시간 예절을 경건하게 가졌다.

10월25일(목) 예루살렘 구시가지, 십자가의 길, 주님 부활(무덤) 성당, 벳자타 연못, 유다 광야, 여리고, 쿰란, 사해 체험----

오늘이 전 일정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많은 일정이 기다리는 날이다.
새벽 5시경, 다마스쿠스 문으로 들어가 십가가의 길을 가다. 십자가의 길이란, 주님이 사형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까지 걸어가신 15개 장소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길이자, 예루살렘을 찾는 전 세계의 순례자들이 찾아가는 길이다.

나의 오늘 미사 지향은, 경기도 용인 수지에 소재한 성복동 성당 김정곤신부님의 영혼과 고달픈 육신을 위함이다. 초대주임신부로 오셔서, 성당신축을 위해 3년째 갖은 고생을 하고 있고, 매주일 기억에 남는 좋은 강론으로 3900 여명의 신자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4000명 가까운 신자임에도 보좌신부나 수녀 1명도 없이, 혼자 애쓰시는 신부님을 위해 기도드렸다. 김성도 총회장님과 모든 신자를 위해서도 기도드리게 되었다.

10시쯤, 사자문을 지나 양문 곁의 벳자타 못을 찾았다. 이 못은 예수님께서 38년이나 앓는 사람을 고쳐주신 장소로 알려졌다. 예수님 당시에 38년을 앓았다면, 지금으로 하면 60년이나 70년이상을 앓은 것이 아닐까? 38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그 만큼 오래된 환자의 고질병이나 난치병 환자도 치유시켜 주신다 는 뜻이니, 오늘 날의 장기 난치 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도 절대로 희망 잃지 말고, 열심히 기도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다.

아울러 하느님 말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말씀을 굳게 믿고, 기도하고 실행하면 자기 병도 고쳐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남들도 치유해줄 수 있는 치유의 은사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한국인 순례자인 우리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안나 성당의 제대에서, 합창단처럼 둥글게 서서 성가 “ 주 하느님 크시도다” (개신교에서는 찬송가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를 우렁차게 합창할 때, 너 나 할 것 없이 정말 여기가 천국이요 하느님의 품안인 것처럼 감격되어,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나왔다. 같이 온 외국의 순례자들도 자기나라 말로 같이 합창하고 은혜를 나눴음은 물론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도 많은 은혜를 받기를 기도한다.

사해로 가는 중에 세관장 자캐오의 돌무화과 나무를 둘러보고( 현재 것은 수령 약 300년이라 함), 사해로 향했다. 이어 꿈란 유적지에서 해설용 스크린과 유물을 관람하다. 여기에는 1947년에 한 목동에 의해 우연히 발견한 사해 두루마리를 비롯해 1956년까지 발굴된 기원전 2세기 경의 히브리서 성서사본과 성서 주석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해는 사해수면이 해저 392m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다. 깊은 곳은 약 400m로 갈릴래아 호수에서 내려오는 요르단강과 사해주위에 있는 와디로부터 물을 받아드리지만 나가는 곳은 없어 사해라 한다. 보통 바닷물보다 7배~10배 정도 짜서 쓴 맛까지 나며, 물에 들어가면 둥둥 뜨는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낮의 무더위와는 달리 으스스 춥기까지한 일몰이후 시간에, 전용버스로 돌아오면서 깜깜한 하늘에 뜬 별빛을 전등 삼아, 예수님께서 40일간의 단식과 마귀들에게 유혹을 받으신 유대 광야의 언덕을 올라가서, 잠시 예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는 것이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 되었다.

10월26일(금) 과 10월 27일(토) 오전까지는 순례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네델란드를 통과하면서, 이 나라를 관광한 것이므로 엄밀한 의미의 성지순례는 아니므로 생략한다. 다만, 네델란드에서도, 여느 날 처럼 미사가 있었는데, 성당 이름은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성당’이었다.

이 미사에서는 그간 미사 지향으로 삼았던 지향들을 모두 다시 생각하면서, 미사 지향으로 기도한 사항들이 꼭 이루어지길 다시 한번 기도했다. 미사 후에는 이 지역에 수차례 나타나신 성모님의 발현 이야기를 스크린 화면으로 관람하였다. 주요 내용은, 지구촌을 향하여 성모님의 손에서 발산되는 세 빛은 구원, 은총과 평화를 나타내고, 지구 둘레에 가득한 양들의 모습은 모든 인간의 모습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 우리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순례를 마치고

32명이 함께 간 순례단의 일원이기에 깊이 묵상하여야 할 장소에서도 시간적인 여유를 가진 묵상을 못하고, 바삐바삐 걸음을 재촉해야 됨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것마저 우리 부부에겐 하느님이 주신 무한한 은총이었습니다. 지면관계로 이 순례기에 생략된 장소도 많습니다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성경지도로만 알 수 있었던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설명을 들으니까, 그간에 읽고 외웠던 신약성경의 지명들이 머리에 선명히 각인되고 공간적으로 정리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세계각국의 이슬람교, 유다교, 기독교신자들이나 예수님생애연구가들이 수차례씩 탐사하거나 몇 달씩 가서 살기도 한다는 위 성지를 한번도 가보지 못한 관계로, 같은 기독교신자로서, 한국의 예수님생애연구가로서, 그 동안 콤플렉스가 없지 않았는데, 이제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마치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성지순례를 무척 기뻐하고 감사하는 저의 모습을 본 아내가 “당신의 연구를 위해 필요하다면 5~6년 안에 이 곳의 순례를 한번 더 같이 가주겠다.”는 아내의 말이 감사할 뿐입니다.

한상호신부님이 많은 사진을 찍었고, 순례단도 각자 사진을 찍었으며, 아내도 각각에 허용된 짧은 시간에서도, 저의 연구를 위해 귀중한 장소의 많은 사진을 찍은 것을 합쳐 3장의 CD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들이 몇 번 순례 다녀간 만큼의 많은 현장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이 CD 안에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발자취의 중요 장면은 거의 다 있으므로 이제는 예수님생애연구가로서도 보람과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를 계기로, 자기치유 및 타인치유의 은사를 받기위해, 성서 말씀을 보다 많이 읽고 묵상하고 온전히 믿고 실천하겠습니다. 치유의 은사가 있는 집회에도 적극 참석하고,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에 치유은사자들로부터 치유전수와 기도도 열심히 받을 각오입니다.

이 세상은 불완전합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병고와 가난으로 신음하는 난치병환자를 무료로 치유하는 예수님의 도구가 되는 간절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저 받은 것은 거저 돌려주어야 됩니다.

이 순례기를 씀에 있어서는 가톨릭 여행사의 <성지순례 안내서>와 순례단의 일원인 이영희자매의 <모세의 탈출기 여정 성지순례>의 일부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끝으로, 지난 해에 이어 2008년 새해에도 예수님의 은총하에 애독자님 모두 더욱 건강하시길 기원하며, 새해에도 귀한 지면을 흔쾌히 허락하신 김향기발행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순례단 명단>

이기택 요한, 이돈희 임마누엘, 이왕휘 라우렌시오, 이종선 세례자 요 한, 지홍장 루치오, 한상호 그레고리오 신부, 강연식 로잘리아, 강연주 수산나, 고선자 율리안나, 김란순 엘리사벳, 김연숙 모니카, 김영례 사비나, 김은순 글라라, 김혜경 베로니카, 김혜경 아네스, 노문남 안나, 박민옥 올리바, 박지연 아네스, 박진경 로사, 백경운 세실리아, 변재숙 세실리아, 양 경혜 요셉피나, 염은자 안나, 유명희 아네스, 이명자 데레사, 이영희 요안나, 이옥희 요셉피나, 임춘자 비비아나, 정완희 세실리아, 최수영 릿다, 최영희 카타리나, 한영희 엘리사벳 (남여, 가나다 순)

 
출처:  월간지 <참좋은이들 21> 2008년 신년호( 관련사진 20매 는 생략하였음)

           저서 <이 지구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2013년 10월 10일 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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