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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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만이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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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4-03-02 ㅣ No.6586

3월 2일 사순 제 1주간 화요일-마태오 6장 7-15절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용서만이 살 길>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서글픈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하지만 은근히 좋은 측면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꽉 닫혀있던 마음이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열립니다. 죽기 살기로 남보다 위에 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지지요.

 

농구시합을 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에 김이 나도록 죽기 살기로 뛰면서 무든 일이 있어도 우리 편에 이겨야한다는 혈기가 조금은 가라앉습니다. 그 대신 농구경기 그 자체를 즐깁니다. 젊은 회원에게 일부러 파울을 하면서 상대방의 분위기를 살피기도 하지요. 콧김이 나나 안나나 확인까지 하면서.

 

이웃들이 건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언행 앞에서도 불같이 화를 내고, 그래서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증세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느 정도 가라앉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하루가 팍팍하지 않고, 마음이 편하게 살 여백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웃의 부족함이나 무례함 앞에서도 벼락같이 화를 내기보다는 “쯧쯧”하고 혀를 차면서 안타까워합니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나이를 좀 더 먹어 가면 이렇게 살아야 할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라는 진리를 늘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난 날 하느님께서 우리의 배반이나 죄, 부족함 앞에 어떻게 처신하셨는지를 늘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돌아갈 때 마다, 가슴을 칠 때 마다, 고개를 떨어트릴 때마다 그분께서는 단 한번도 내치지 않으시고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런 용서의 배경에는 우리의 나약함, 부족함, 가련함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측은지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판자 하느님이 아니라 위로자, 보호자, 치유자로서의 하느님이 자리 잡고 계십니다.

 

진정 용서하기 힘든 사람 앞에 우리가 해야할 바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용서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노력하는 그것입니다. 용서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용서만이 그 오랜 질곡의 세월에서 우리 자신을 빼내는 일입니다. 용서만이 자기 해방의 지금길입니다.

 

진정한 용서를 원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정면을 바라봐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보다는 쓸쓸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외적인 모습을 보기 보다는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상처와 고통, 좌절을 연민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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