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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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을 기다리며(연중 32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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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bushman] 쪽지 캡슐

2000-11-11 ㅣ No.1699

주일을 기다리며

 

나는 주일이 기다려진다. 그날은 가장 바쁘고 힘든 날이지만 신자들을 일주일만에 만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슬픈 일을 당한 분들과는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날이고, 기쁜 일을 맞은 분들과는 또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신부가 되고 나서부터 휴가를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것도, 몸이 아파서 좀 쉬고 싶어도 주일 미사만큼은 본당신자들과 함께 드리려고 하면서 주일을 기다려왔다. 신부라는 책임 때문에 주일미사가 기다려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신자들이 보고싶어서 주일이 기다려진다.

 

그런데 신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본당에서 신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놀러가고 싶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고,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될 이웃집 아기 돌잔치가 더 중요하다며 주일미사에 빠진다. 우리 본당 주일미사에는 신자들이 100여명도 참석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 무슨 이유로 성당에 나오지 못했는지 한 눈에 다 알 수 있다.

 

물론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살 수 없고 빵으로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4월부터 10월까지는 농사짓는 교우들에게 주일미사를 관면해 준다. 종교국가도 아닌데 주일에 미사에 참석하겠다고 마을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행위는 하느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11월이 되면서 이제 농사일도 다 끝나고 한 숨 돌릴 때이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도 신자들이 이제는 주일미사에 많이 참석하겠지 하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웃집 결혼식이다 회갑집이다 해서 또 성당좌석이 텅 비었다. 다행히 도시성당에서 여행 중에 미사에 참석하신 분들이 있어서 그나마 썰렁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신부는 주일미사를 드리는 것은 당연하고 신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본당신부는 이렇게 신자들이 보고싶어서 주일미사가 기다려지는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주일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우리가 투자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단 하루도 아닌 한 시간뿐이다. 정확히 48시간 중에서 1시간이다. 물론 주일에 많은 일들이 생긴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신앙인으로서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을 하느님께 바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현주소이다.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가 동전 두 냥을 봉헌궤에 넣으신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혹시 주일미사에 참석해서  주일헌금을 얼마나 낼 것인지 고민할 수도 있다. 호주머니에 1만원 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두 장이 있는데 오늘 미사에서 이천 원을 낼까 만원을 낼까 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한 것을 헌금에 국한해서 알아들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48시간 중에 1시간뿐인 주일미사시간도 봉헌하지 못하면서 봉헌금으러 얼마 냈느냐를 따지는 것은 아무 소용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바로 주일미사이다. 이날은 본당신부만을 위한 날이 아니다. 그런데 신자들은 그날 신부만이 정성껏 준비하면 되고 자신들은 그냥 참석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주일미사가 기다려지지 않는 것이다.

 

주일미사의 의미가 너무 왜곡되어 있다. 신자들은 미사에 참석함으로써 주일미사 의무를 다했고 대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성당이 유지할 수 있도록 적당히 주일헌금을 봉헌함으로써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주일미사는 하느님 백성의 축제이다.  참석한 모든 신자들이 바로 주인공들이다. 본당신부는 축제를 마련해 줄뿐이다. 그런데 신자들은 미사가 끝나자 마자 썰물같이 성당을 빠져나간다. 특별히 집에 가도 할 일도 없으면서 바삐 사라진다. 본당신부가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지난 일주일 동안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가버리는 신자들게게 정말 섭섭하다. 뿐만 아니라 주일미사가 끝나도 신자들끼리는 아예 원수처럼 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 같은 작은 시골본당 신자들도 일주일동안 못 만났으면 안부라도 나눌 법한데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 우리는 미사성제 때 같은 성체를 나누어 먹은 형제자매이다. 하지만 신자들은 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주일미사에 왜 참석하는 것일까? 본당신부의 생활비를 보태주기 위해서인가? 주일미사에 빠지면 대죄이기 때문인가? 왠지 주일미사에 참석해야만 마음이 가벼웁기 때문인가?

 

내일이 주일이다. 이웃성당에서는 추수감사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우리 성당에서는 은행을 준비했다. 주일미사에 열심히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은행으로 전해드리고 싶다.

 

우리 서로 주일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본당신부만이 주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신자들도 기다렸으면 좋겠다. 헌금을 얼마나 낼 것인가 고민하는 주일이 아니라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면 본당신부도 만나고 같은 형제자매들을 만날 기쁨을 가지고 기다리는 주일이 되기를 기도한다.

 

내일 주일 미사에는 그 동안 농사일로 바빠서 여름 동안 미사에 빠졌던 신리구역 신자들이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다.

 

http://www.art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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