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로 나라가 시끄럽다. 청와대, 국정원, 여당이 나서서 “사초가 실종됐다”, “누가 폐기했느냐”, “노대통령이 삭제를 지시했다” 등의 주장과 의혹을 제기하고, 이에 대해 노무현재단과 야당이 반론으로 맞서면서 천박하고 유치한 논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힘깨나 쓰는 권력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동안 팍팍한 삶에 찌든 서민들은 짜증만 늘어난다.

도대체 이 시기에 사초 문제가 국민들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며 무슨 이익을 주는지 국민은 알 수가 없다. 이런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데는 “전부 까보자”고 했다가 발목 잡힌 야당에도 책임이 작지 않다.

없는 일자리 찾기에 지친 청년들, 거리로 나 앉은 해고 노동자들, 고독과 가난으로 무너져가는 독거노인들, 치열한 순위경쟁 속에 던져진 어린 학생들..... 이들의 시름 속에 양극화는 심화되고 관료, 정치권, 재벌, 언론 등 힘 가진 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일상화됐다.

이런 가운데 복지와 경제민주화와 국민통합을 내세워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차례로 파기되거나 후퇴하고 있다. 순환출자금지법, 공정거래법 등 핵심적 경제민주화 공약들은 재벌들 손에 맡겨졌다. ‘반값 등록금’, ‘기초노령연금’, ‘4대중증질환 지원’ ‘무상보육’ 등 복지공약도 후퇴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의 사퇴까지 불러왔지만 대통령은 재원타령만 하고 있다. 국민대통합은 구호일 뿐 국민분열만 커져간다. 전교조를 불순세력으로 규정하고, 전공노 설립에는 부정적이며, 수차례 약속했던 쌍용차 국정조사는 기약이 없다. 박 대통령에게 노동자는 국민통합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종북으로 몰아세우고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며 지역감정을 부추긴 사람이 비서실장으로 앉아 있는 한 국민통합은 공염불이다.

국정원은 개혁은커녕 수사권까지 부여해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로 검찰은 독립성을 잃고 다시 정치검찰로 돌아왔다. NLL대화록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사법부에 대한 압박도 예사롭지 않다. 새누리당의 심재철 최고위원이 통합진보당 대리투표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해괴한 판결’이라고 비난하면서 “잘못된 재판은 상급심에서 당연히 바로잡혀야 한다”고 대법원을 압박했다. 유기준 최고위원도 “법허무주의를 불러올 수 있다”고 했고, 홍문종 사무총장은 “민주주의의 실종”이라고 논평했다. 2009년 미디어법을 날치기 할 때 써먹었던 방법이 대리투표였음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선거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 표를 얻는 게임이다. 공정한 선거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방법과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 그것은 약속을 반드시 실행하는 것, 그리고 실행할 수 없는 불안한 요인이 있다면 사전에 유권자에게 소상하게 알리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그것은 유권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이런 국정의 난맥 속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국민을 무지 속에 붙들고 있는 언론의 힘 때문이다. 총칼로 장악된 언론이 아닌, 검찰총장을 한방에 날리는 무소불위의 괴물로 변해버린 보수언론의 자발적인 힘이다. 보수언론의 가공한 힘은 교과서 논쟁을 ‘가치전쟁’이라는 섬뜩한 언어로 규정해버린다. 박근혜 정권과 보수언론의 동맹이 만들어낸 이 공고한 체제는 일당 독재와 영구집권을 기대하며 유신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유신은 권력분립에 따른 어떤 종류의 견제와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공안정국의 등장은 필연이다. 김기춘 비서실장, 홍경식 민정수석 등 권모와 술수로 나라를 운영하는 검찰출신 공안통들이 유신의 원조 박정희의 딸 주변에 모인 것이다.

정치권력이 언론과 굳건한 동맹을 이루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억제하고 있다면 유신독재의 환경은 갖추어진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제도화된 유신체제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일당 독재와 권력집중의 길은 열린 셈이다.

지난 8월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통합과 화합을 저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서로 상생하고 품격 높은 정치시대를 열기 바란다”고 말했다. 유신의 합리화를 위해 ‘조국통일’을 구실 삼았던 아버지 박정희의 모습과 흡사하다. “경제활성화가 곧 경제민주화”라고 역설했던 ‘한국적 경제민주화’는 박정희가 40여 년 전에 외쳤던 ‘한국적 민주주의’와 판박이다.

경찰의 수사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TV토론에서 “국정원 댓글의 증거가 안 나왔다”며 ‘여성인권’을 운위하면서 선제공격을 했던 박 대통령이, 대선이 끝난 뒤 검찰수사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확인되자 “나는 모르는 일이다”고 잡아떼는 뻔뻔함은, 국민이 모를 것이라는 또는 알아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오만함에서 나온다.

국민이 무지와 무관심으로 잠들어 있을 때 유신독재의 독버섯은 번성한다. 국민을 무지와 무관심으로 몰아넣은 보수언론은 사회의 소금이 아니라 사회를 오염시키는 독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엘베띠외는 “국민을 무지 속에 붙들어 두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 자신에 대한 만인의 경멸을 초래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 국민은 역사가 역류할 때마다 직접 나서서 그 흐름을 바로잡았다. 4.19혁명이 그랬고, 10월 부마항쟁이 그랬고, 5.18광주가 그랬고, 6.10혁명이 그랬다. 국민을 외면한 독재권력과 국민을 무지로 몰아가는 곡필언론이 한계상황에 다다를 때 국민은 언제나 분연히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