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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종교 개혁자들이 비난한 면죄부의 진실에 대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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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훈 [saint72] 쪽지 캡슐

1999-01-04 ㅣ No.19

 

 종교 개혁에 대해 말하기 전에 일반인들과 일부 가톨릭 신자 그리고 대다수

개신교 신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면죄부’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면죄부사건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돕고자 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연재합니

다. 다소 중복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바랍니다.

 

 

 사도시대부터 내려져 오는 가톨릭 역사상 가장 많은 오해와 비방을 받는

것은 바로 소위 "면죄부"일 것입니다.

 

 소위 "면죄부"에 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면죄부"는 잘못 번역된 것입니다. 원어로는 Indulgence

이며 이것의 원래 의미는 "대사"입니다.  사실 그것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것

을 찾아보면 "Letter of confession"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우

리말로 풀이하면 고해 특전 준허 증서 라는 어려운 말로 번역이 됩니다만

쉽게 말하면 가톨릭의 핵심 교리인  7성사중 고백성사에 있어서 최대한 신자의

편의를 도모해 주는 증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가톨릭 신

자가 아니신 분은 잘 알아듣기 힘드실 겁니다.

 

  그래서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옛날 중세 시대에는 성당이 아무데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요

즘처럼 보통 서민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성당이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이야

기죠. 그리고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볼때도 죄의 경중에 따라 고해성사를 담당

하는 사제를 가려야 했습니다. 죄가 큰 경우에는 고등 성직자 즉 주교나 추기

경에게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가 병이 났을 때 아픈 정도에 따

라 의사를 달리 찾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겁니다.

 그런데 대사를 받은 사람은 어느 신부든지 관계없이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고백신부를 선택하는데 있어 신자들의 편의를 도모해준 교회의

현명한 처사였던 것입니다.  

 

 그럼 어째서 이것을 면죄부라고 부르게 되었냐 하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세계사 학자들이 <금전을 바치면 죄를 사해주는 교황이 발행한 증서>

고 오해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대사의 근본 취지는 연옥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주장하

는 것처럼 자신의 죄가 사해져서 천국에 가는 천국행 증서가 결코 아닙니다.)

 

 참고로 대사를 면죄부라고 하는 나라는 일본우리나라뿐이라고 합니다.

 

 대사에 관한 교리적인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가톨릭 교리를

참고해 주세요. 아니면 이 다음에 나오는 저의 글을 참고하셔도 됩니다. 대

사가 문제가 된 종교개혁시기에 교황 레오 10세께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

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이던 당시 독일의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장문의 교서를 발표합니다.

 

 내용은 대사의 설명과 그 필수요건인 7가지 조건에 관한 것인데요... 고백

성사를 보고 성당을 순례하면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구요.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한 헌금을 해야 하며... (이 부분에는 오

해가 있을지 몰라 중요한 사실을 덧붙입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기도와 단식으로서 대사를 받을 수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16세기 때에 일부 수도사에 의해 대사가

남용된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루터와 비텐베르크에서 논쟁을

벌인 텟젤같은 수도사는 교황청으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습니다.(이 때

루터가 성당 문에 붙인 글이 95개조 반박문입니다.)

 

 요즈음의 역사가들은 사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쓴적은 없는데 후대에

덧붙여진 이야기라고 보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종교개혁시기에 가톨릭의 혁신 대상은 해이해진 기율이었지 결코 그

교리는 아니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기율의 문란은 북

유럽 일대 가톨릭이 심했을 뿐이고 다른 지역까지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닙

니다.

 

 혁신의 소리가 강했지만 실상 혁신의 대상은 해이해진 기율뿐이었습니다.

 

 드디어 가톨릭은 트리엔트 공의회로 해이해진 가톨릭의 기율을 바로잡으

며 "진정한 의미의 종교개혁"을 이룩합니다. 이 트리엔트 공의회를 비롯한

가톨릭의 정화 노력으로 가톨릭은 이전보다 더욱더 굳건한 바탕 위에 놓

이게 됩니다.

 

 어찌됐든 루터는 그러한 사건을 이용해 교회안의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이 1500년간 고수해온 교리와 교회의 일치를 깨

는 방향으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개신교는 가톨릭에서 떨어져나가 무서운 속도(?)로 자아 분열

을 한 결과 오늘날 그 수도 헤아리기 힘든 새로운 개신교파가 출현하고

소멸하고 있으며 그 분열상은 말로 이루 표현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는 것은 현대의 대부분 종교학자들이 인정하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아래 분이 질문하신 것처럼 에큐메니칼운동이니 해서 교회일치를 먼저

부르짖은 것이 개신교인들이었음은 사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가톨릭은 그들이 떨어져나가게 하지않으려고 온갖 시도를 다 했기

때문입니다. 종교 분열 초기에는 루터파 사람들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는 독일에서 일어난 30년간의 피비린내나는 종교

전쟁을 통해서 어떻게든 분열을 막고자 했었는데 물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한 것이 알게 모르게 두 종교 사이의 사이를 화해하기

힘들 정도로 벌려놓은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요.

 

그렇게 떨어져 나간 개신교가 다시 교회일치를 주장하는 것을 가톨릭

입장에서 보면 뭐라 할까 왜 그들이 떨어져 나가 저렇게 다시 목소리

높여 교회일치를 주장해야 하는지 처량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개신교인들이 교회일치를 주장하는 진정한 이유는 하느님을 찾아 헤매

였지만 끝내 하느님의 주변을 맴돌뿐 그 품안에 안겨있지 않다는 자기

상실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토록 개신교인들이 교회일치를 부르짖는 것은 자신들의 위치가 그리

스도교 세계의 중심에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것 같아 씁쓸

한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저만의 심정은 아닐 것입니다.

 

그에 반해 저희 가톨릭은 교회일치운동에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죠.

 

왜냐하면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창립된 오직 하나인 성교회

가 개신교인들처럼 하나가 되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할 이유는 없었으

니까요. 적어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까지는 말이죠.  

 

그저 기다리면 된다고 보았죠. 가톨릭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간 이단 가운데 자신만의 생명력을 가지고 천년 이상 버틴 경

우는 없었으니까요.

 

 개신교의 미래는 글쎄 각종 통계자료로 보건대 불확실하다는 게 대부

분 학자들의 결론입니다. 왜냐하면 종교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게 개신

교이고 더구나 세계적으로 개신교 신자수는 거의 정체 상태내지는 감소

추세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세계적인 통계가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와는 많이 다르지만 말이죠.

 

못믿으실 것 같아 브리태니커 연감을 참조해 설명을 드리면 1880년대의

기록을 보면 전 세계인구중 4억이 가톨릭 신자이고 개신교 신자는 2억

5천만명으로 되어있습니다.

 

참고로 그리스 정교는 1억 5천만명으로 나와있구요.

 

그런데 1996년도 기록에 보면 가톨릭은 10억 3천만명 개신교는 3억 9천

만명 그리스 정교는 2억 1천만명이라고 되어있군요.

 

아무리 좋게 봐 줄려고 해도 가톨릭을 빼고는 다른 종교는 100년동안

신자수가 거의 변함이 없다고 해야 정확할 거 같네요.

 

그런데 이런 추세가 개신교 지역이라고 생각되어온 북미 지역에서 더욱

더 늘어난다는 겁니다. 미국만 해도 6천만명이 넘는 가톨릭 인구가 있습

니다.

 

 

개신교가 이렇게 된 데는 그 출발부터가 잘못되었기에 이런 결과가 빚

어졌다고 봅니다.

 

그저 맹목적인 신앙에 눈이 어두운 몇몇 사제들에 의해 저질러진 반항

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으니까요.

 

개신교의 맹목적인 반항 정신 -저는 이것을 프로테스탄트의 본질로 봅

니다만- 이것을 제 편견으로 생각지는 말아주시구요.

 

좀더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질문해 주시구요.

아는대로 답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가톨릭 교리 관련 서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제임스 c.기본스

추기경의 ’교부들의 신앙’이 있습니다.이 책은 1876년 초판 이래 지금

까지 종교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200만부 이상이 팔렸으며 아직까지도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개종자를 내는 책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름스 제국회의 때 개신교의 창립자라고 할 수 있는 루터와

가톨릭의 수호자라고 할 수 있는 칼 5세의 말을 인용하며 이만 줄입니다.

 

루터는 의연하고 잘 준비된 연설을 하였는데 그는 그의 저서의 어떠한 철

회도 거부하였습니다.

 

루터:"만일 성서의 증거나 또는 명백한 논법으로 반박되지 않는 이상 나

는 나를 인도한 성경귀절에 승복되어 있으며, 나의 양심은 하느님의 말씀

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

주 오류를 범하였고, 스스로 모순이 되었다는 사실이 자명하기 때문입니

다. 나는 내가 가르친 것 중에서 아무것도 취소할 수 없고 또 취소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을 거슬러 행하는 것은 확실할 수도 없고 유

익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저를 도와주시옵소서.아멘."

 

 

연설은 의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칼 5세도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한, 스스로 작성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공식 석상

에서 발표한 최초의 자신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제국의 젊은 통치자인 칼 5세 역시 이 세계사적인 순간에 자신의 시간을

인지하였습니다. 두 인간과 두 세계가 대치되려는 순간입니다. 칼 5세는

독일의 제국의회 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칼 5세:"아시는 바와 같이 본인은 고귀한 독일국가의 가장 그리스도교적

인 황제들, 스페인의 가톨릭 국왕들, 오스트리아의 대공들, 부르군드의

공작들의 후예입니다. 그들은 모두 죽기까지 로마가톨릭의 충실한 아들

이었고 가톨릭 신앙, 거룩한 관습,교령, 전례의 수호자였으며, 이 모든

것을 그들의 유산으로 나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나는 늘 그들의 모범을 따라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제 콘스탄트 공의회 이래 일어난 모든 것을 고수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한 형제가 전체 그리스도교계의 견해에 대항할 때에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교계가 천년간 혹은 그 이상

오류를 범해 온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또한 나의 왕국과 주권, 친구, 몸과 피, 목숨과 정신을

다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 시대에 우리의 태만으로

인해 비록 하나의 이단 같은 것이나 그리스도교의 침해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스며든다면 그것은 나와 고귀한 독일 국가의 일원인 여

러분에게 치욕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제 루터의 연설을 들은 후 그를 처리하는 데 오래 주저한 것

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는 그의

말을 다시는 듣지 않겠습니다.

 

 그에게는 호송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금후 나는 그를 공공연한 이단자

로 간주할 것이고, 여러분도 가톨릭 신자로서 여러분의 의무를 다해 주

기 바랍니다."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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