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성지순례기]연풍성지...오성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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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simon] 쪽지 캡슐

2000-11-07 ㅣ No.302

문경읍 버스터미널에서 1,100원을 주고 이화령을 넘어가는 아무 버스나 타면

(대부분 충주행) 10여분 후에 연풍 버스터미널에 도착합니다. 터미널이라기

보다 정류장이라고 하는게 낫겠군요...암튼 이곳에서 내려 연풍으로 들어서면

거의 동네의 끝자락에 성지의 후문이 나옵니다. 찾기는 아주 쉽습니다.

 

연풍성지는 성 황석두(루가), 다블뤼 안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등

의 성인을 기념하는 성지입니다. 특히 이 성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성 황석두

(루가)는 부유한 양반의 자손으로 스물에 과거를 보러가다가 어떤 선비에게 천주

교에 관한 교리를 듣고 곧 성리학에 회의를 느껴 천주교에 관한 책을 얻어 바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의아한 가족들에게 천상의 과거를 보기위해 돌아왓다고 말한

황석두는 집안의 큰 반대에 부딪힙니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황석두를 죽여 집안의

후환을 없애겠다고 마당에 작두를 대령합니다. 작두에 목을 올려두고도 태연한 모습

으로 잇던 황석두는 그 때로 부터 집안 사람들이 개종을 하기전까지는 입을 열지

않겠다고 맹세한 후 3년동안 벙어리 행색을 합니다.

 

이런 황석두는 집안이 모두 개종하자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페레올 주교는 이 황석두를 신부로 만들기 위하여 식학교 입학을 시킵니다.

비록 결혼은 했지만 신앙생활을 위하여 동정을 간직하던 황석두지만 교황청에서

그의 부인이 들어갈 수녀원이 조선에 없다는 이유로 신학교를 나오게 됩니다.

 

결국 그는 꾸준한 전교활동을 하다가 충남 내포지방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다블뤼안(安)주교, 오매트르오(吳)신부, 위앵민(閔)신부와 함께 서울의 포청으로

압송됩니다. 이곳에서도 신앙을 지킨 성인은 결국 고종의 혼인을 이유로 서울에서

피를 흘리지 말라는 무당의 권유로 조정이 먼곳에서 죽이라고 명령을 하고 서울에

서 250리 떨어진 충남의 갈매못에서 위의 다섯분과 함께 참수를 당합니다.

 

성인이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주는 다담상(나라에서 죽이기전에 마지막으로 주는

밥으로 후하게 차려준다)을 받을때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 먹지 못 했지만 황석두

성인만은 홀로 "천주께서 주신 음식이니 마지막 먹읍시다."하고 술을 부어 권하셨

다고 합니다.

 

연풍성지에는 위의 다섯성인을 기리는 동상과 초대주교이신 노기남주교님의 동

상이 세워져 있고 연풍성지 발굴작업에서 찾아낸 형구돌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연풍성지내에는 당시 죄수를 심판하던 동헌도 보존되어 있더군요...

 

다섯성인의 순교정신과 그들의 신앙을 본받으려는 연풍성지는 지금도 그 개발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오늘은 특히 원주교구 교구청 직원들과 수원교구 하안동 성당

신자분들이 오셔서 미사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지에서 만나는 신자들과

그 들과 함께하는 미사도 감격스러운데 과거 초대교우들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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