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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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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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5-06 ㅣ No.3654

5월 7일 부활 제 6주간 화요일-요한복음 16장 5-14절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간다."

 

 

<홍어>

 

김주영의 소설 "홍어"를 읽다가 참으로 감동적인 표현을 한 구절 발견했습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모든 소유물을 몽땅 가지고 다닌다. 비단과 향수, 그리고 씨앗과 소금, 요강과 유골, 하물며 고통과 증오까지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격정적인 삶으로 그 모든 것이 탕진되는 날, 하나의 무덤이 거친 바람이 흩날리는 초원에 마련될 것이다."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돌아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은 참된 순례자, FM 순례자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도구로써 오로지 아버지의 뜻에만 충실하기 위해 한평생 그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이리저리 순례하셨던 예수님은 마침내 순례의 최종단계인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과정을 통해 순례를 마무리짓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교회는 언제나 순례해야한다"는 말을 거듭합니다. 그러나 사실 순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고 괴로운 일입니다.

 

순례한다는 것은 여행가방 들고 몇몇 성지를 한바퀴 도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진정으로 순례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길떠난다는 것,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거지를 바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들었던 집, 다정했던 이웃사람들, 낯익은 주변환경들과 결별하고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미지의 장소로 길떠나는 모험과도 같은 불안정된 삶이 순례의 삶입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순례의 괴로움을 생생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이집트 노예생활을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땅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끝도 보이지 않는 넓고 황량한 사막이었습니다. 그 사막에서의 생활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년 간 계속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간을 오직 하느님의 언약 하나만 믿고 아침이면 아침마다 길떠나는 삶, 늘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순례의 삶을 살았습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해 계속해서 "일어서라!", "떠나라!", "순례를 시작하라!"고 외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외침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든지 못들은 척 한다든지, 거절함을 통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지닌 본능 중에서 가장 지독한 본능 중에 하나가 "안주본능", "길들여진 것에 대해 크게 집착하는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떠나기가 힘든 것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때로 참혹한 일입니다. 새로이 출발한다는 것은 불확실함을 수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혹독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떠나야만, 나와야만, 새 출발해야만 구원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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