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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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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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7-26 ㅣ No.3880

7월 26일 금요일-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마태오 13장 18-23절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은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

 

 

<설레는 목소리>

 

가끔씩 함께 살았던 아이들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대체로 일가친척도 없는 아이들, 가족이 있더라도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든든한 부모를 둔 아이들도 스스로 서기 힘든 세상인데, 홀로 험난한 세상에 던져진 우리 아이들이 겪는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때로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고 파출소를 전전하는 아이들로부터 "이번 한번만 마지막으로 힘 좀 써주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도 걸려와 속이 많이 상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의외로 설레는 목소리, 활기로 가득 찬 목소리의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습관처럼 저는 묻습니다. "그래, 요즘은 사고 안치나?" "에이! 신부님도! 이젠 제 나이도 벌써 스물 셋인데...속차릴 나이도 됐죠. 걱정하지 마세요. 신부님." "일은 무슨 일을 하는데?" "컴퓨터 관련직종이요." "돈은 좀 모았나? 월급 받으면 허튼 데 쓰지 말고 제발 적금 좀 넣어야지." "그래야죠.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꽤 모았어요. 언제 제가 한잔 살게요." "신부님, 그거 아세요? 제가 꼬마 때 신부님께서 가끔씩 주시던 상본들 아직까지 그대로 갖고 있어요."

 

아이와 통화를 하면서 처음에는 이름과 얼굴이 매치가 안됐는데, 점차 아이의 얼굴이 아스라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유난히 장난이 심했지만 무척이나 성실했던 아이, 처음에는 워낙 기초가 없어서 고생했지만 차근차근 검정고시 과정을 패스해가며 기뻐하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열매맺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하십니다.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은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

 

갖은 고초와 세파를 헤치고 이제 겨우 나름대로의 결실을 거두어 가는 그 아이의 모습에서 진정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의 진리를 떠올립니다. "수확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한동안 과수원에서 일하는 분들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탐스런 과일은 그냥 뒷짐지고 서서는 결코 얻을 수 없음을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하루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비지땀을 흘립니다. 농약을 오래 치다보면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다가 쓰러지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솎아주고, 붙들어주고, 감싸주고 지지해줍니다. 조심조심, 마치 갓 태어난 아기를 다루듯 과실 하나 하나를 다룹니다. 그 오랜 정성과 투자의 결실이 탐스런 한 알의 과일이었습니다.

 

결실 중에 가장 소중한 결실은 바로 사람입니다. 그 결실이 탐스런 결실로 만들기 위한 특별 처방약은 따로 없습니다. 인내와 사랑이 그나마 가장 첫째가는 처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처방이 격려와 칭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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