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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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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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12-28 ㅣ No.4375

12월 28일 금요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축일-마태오 2장 13-18절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아를 시켜,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는구나!"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완장>

 

교회는 오늘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꼭두각시 왕권이었지만 천년만년 왕좌에 앉아 지내고 싶었던 헤로데 왕의 과도한 권력욕이 불러온 안타깝고 불행한 죽음을 오늘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 가장 인간을 괴롭히는 것 중에 하나가 헤로데가 지녔었던 과도한 권력욕입니다. 물러날 순간이 오면 지체없이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데, 끝까지 권력 연장을 위해 갖은 잔머리를 굴리고, 전혀 설득력 없는 논리들을 내세워 자신을 정당화시키고 우상화시키는 헤로데 왕의 권력욕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수많은 아이들이 무참히 죽어갔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정당하지 못하고 과도한 권력욕으로 인해 우리의 지난 세월들이 얼마나 피곤했습니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높은 양반이 외국 순방에서 돌아오기라도 하면 학교 전체가 난리가 났었지요. 점심식사도 걸러가며 서너 시간 전부터 손에손에 태극기를 들고 도로가에 서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데다 너무 오랫동안 뙤약볕에 서있었던 나머지 여기 저기 픽픽 쓰러지던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지나친 권력욕 못지 않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인 또한 지나친 권위주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왕자병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내 논리에 동의해야 한다"는 욕심에서 나온 획일주의는 또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요?

 

오늘 한 사람의 지나친 자기 보호본능이 초래한 대 참사 앞에서 모든 지도자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많은 반성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완장만 찼다하면 돌변하는 사람들을 너무도 자주 봅니다. 교회 안에서, 또 사회 안에서 우리에게 티끌만큼의 자리, 눈꼽만큼의 권위라도 주어졌다면 그것은 바로 봉사를 위한 권위입니다.

 

권위는 "내가 누구네!"하고 고개 뻣뻣하게 치켜세우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고 멋있는 명함을 몇 천장 찍기 위한 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권위는 공동체의 평화와 일치, 구성원간의 유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공동체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권위는 다스림, 군림, 지휘, 통솔보다는 섬김과 봉사를 위한 것입니다. 공동체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첫째가는 과제는 바로 친교의 중심 역할입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공동체의 책임자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지나친 자기욕구 충족으로 인해 우리도 모르게 큰 상처를 입는 피해자들은 없는지 한번 주변을 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과도한 자기 과시 욕구로 인해, 우리의 지나친 이벤트성 행사로 인해 부담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늘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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