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6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채동욱과 진영, 그리고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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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0-08 ㅣ No.202

세상이 애먼 남의 자식 DNA로 떠들썩한 사이 우리 사회 핏줄 속의 '정직함 DNA'는 무사한지 되묻고 싶어졌다. 험한 세파 탓인가. 간단한 사실 규명으로 담백하게 매듭지을 일을 두고 우리는 지나치게 정파적 이해와 음모적 시각, 표피적 절차에 매달리며 눈을 부릅뜨는 경향이 있다. 대개 진실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잠자리처럼 겹눈이거나 그런 다초점을 이용해 진실을 감추려는 과정이 복잡할 뿐이다. 그런 사회에선 정직함이 빛을 잃고, 거짓말쟁이가 영웅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거짓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튼튼한 DNA를 갖고 있을까.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은 애초부터 공직자의 사생활 이슈였다. 사실이 아니라면 하루빨리 규명하도록 협조했어야 옳고, 사실이라면 재빨리 인정하고 가족과 사회의 선처를 구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결국 가사도우미까지 등장해 시시콜콜한 불륜 현장을 상상하도록 자극하지도, 폭포처럼 쏟아진 관련 뉴스와 인터넷에 평생 떠돌 연관 검색어의 늪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정직함은 현명함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그는 정직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했다.

불거져 나온 의혹을 '검찰 흔들기'로 맞받으면서 단순한 혼외 자식 이슈는 여러 갈래로 변형된다. 한 가지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영국 속담처럼 청와대 음모설, 개인 정보 유출, 명예훼손, 감찰에서 사퇴에 이르는 절차적 정당성, 아이의 인권을 문제 삼은 여성단체의 고발에 이르기까지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가세해 혼외 자식 이슈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마크 트웨인은 팔백예순아홉 가지의 거짓말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거짓말'에는 수많은 변종이 있다. 새빨간 거짓말, 하얀 거짓말, 허풍, 과장, 조작, 위증, 은폐에 의한 거짓말…, 굳이 분류하자면 채동욱 혼외 아들 문제는 바늘 같은 진실을 짚더미에 숨겨 찾기 어렵게 만드는 짚더미 거짓말(haystack lie)쯤에 해당할 것이다. 채 전 총장은 바늘을 제공했고, 우리 사회는 그 위에 짚더미를 보태 덩치를 키워 굴렸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사건은 당사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삭제, 은닉 혹은 변형에 의한 거짓말로 분류하고 싶다. '복구본' '유출본' '국정원본' 같은 다양한 버전이 청와대와 봉하마을을 사이에 두고 생겼다 없어졌다 한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더구나 대화록이란 두 명 사이의 기록이다. 한쪽에서 아무리 다듬고 고쳐도 다른 쪽에 보관된 원본이 있다면 근원적으로 거짓말이 불가능하다. '제가'를 '내가'로 바꾼 사람이 다른 것도 손대지 않았다고 누가 믿어줄까. 기록을 다루는 사람은 담백해야 한다. 그랬다면 저절로 역사 의식이 있고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쉬운 길을 놔두고 험난한 거짓말의 길을 택했다.

복지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얼마 전 사퇴한 진영 복지부장관은 정직한 사람 같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의 주무 장관으로서 무책임한 사퇴를 했다는 정치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좇아 큰 의자를 버린 그의 결정은 신선했다. 안타까운 것은 정직함의 대상을 잘못 골랐다는 점이다. 정책이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라 타협과 설득의 대상이다. 설득은 기술과 윤리의 문제이지, 양심의 영역과는 좀 다르다. 소신을 굽히고 의견을 바꿀 줄 아는 것은 설득 사회의 미덕이다. 미래를 꿰뚫는 천리안을 지녔다 하더라도 장관의 자리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최선을 다해 타협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어야 한다. 모처럼 정직한 정치인인 그가 현명함을 겸비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이 불거졌을 때 사람들은 그의 거짓말보다 검증을 소홀히 한 인사팀의 부실을 탓했다. 채 전 총장의 부정직한 대응으로 일이 꼬여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진실 여부보다 뒷담화를 즐기며 거기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말을 보탰다. 엄존하는 국가 기록에 손을 대는 엄청난 짓을 하고도 아직도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며 목소리 높여 주장한다. 정직한 장관이 소신대로 살고 싶어 당과 청와대에 부담을 주는 특이 행동을 한 걸 보고 사람들은 청와대의 불통을 탓하는 정치 공세의 재료로 이용하고, 여론의 과반수는 그가 잘못했다고 꾸짖고 있다. 우리 사회 핏줄 속의 '정직함 DNA'는 과연 무사한 걸까.

 

 -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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