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EBS 지식채널e 正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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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선 [son1148] 쪽지 캡슐

2011-02-15 ㅣ No.1423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때도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아아, 거기엔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부자가 없어, 그래서 가난도 없었으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으르지도 않고 겁주지도 않고

목을 조르고 주리를 틀지 않았으면

소한테 코뚜레도 없고 멍에도 없고

쥐덫도 없고 작살도 없었으면


보리밥 먹어도 맛이 있고

나물 반찬 먹어도 배가 부르고

어머니는 거기서 많이 쉬셨으면

주름살도 펴지시고

어지러워 쓰러지지 말으셨으면

손목에 살이 좀 오르시고

허리도 안 아프셨으면

그리고 이담에 함께 만나

함께 만난 오래 오래 살았으면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어머니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 오래 살았으면

오래 오래 살았으면……

 

  '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 中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9.10 ~2007.5.17)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쓴 권정생(69)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자가 많은 동화작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려고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의 오두막으로 그를 찾아오지만,

그는 사람들을 만나주지 않는다.

 

기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인터뷰 같은 것을 한 적도 없다.

어려서부터 앓아온 전신결핵의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홀로 살아가는 그는,

“너무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사람을 맞을 자신이 없어서”

사람이 찾아와 불러도 아예 문조차 열어보지 않는다.

그런 그가 김장배추 속에 숨은 흰 속살 같은 얼굴을 내보였다.

 

 

 

 

 인간이 저지르고 하느님 뜻이라니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이 하는 것’을 보고 계신다

 그렇기에 홀로 있어도 나쁜 짓을 할 수 없고,

착한 일을 했어도 으스댈 수 없다

 

  .  

그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착하게 살아가라’는 설교를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도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기 일쑤인데 왜 그럴까.

세상에 교회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또 “교회나 절이 없었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자답했다.

그는 “세상에 교회와 절이 이렇게 많은데, 왜 전쟁을 막지 못하는가”라며 다시 낙엽을 바라보았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 〉의 배경이 된 전쟁은 베트남전이다.

프랑스는 당시 베트남인들을 노예처럼 끌어다가 칠레 남부의 섬에 가둬 비행장 건설 노역을 시켰다.

그러다 전쟁이 끝나자 베트남인들은 그대로 남겨둔 채 자기들만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섬엔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베트남 노인들이 살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악행만 얘기하지

자신들이 한 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중국도 일본이 난징 학살 때 30만 명이나 살육한 것을 지금까지 그토록 분개하면서도

티베트인들을 그렇게 죽인 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억압만 하고 있다.

미국은 자기는 핵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들만 나쁘다고 한다.”

 

 권 선생은 “모두가 자기는 잘하고 옳은데, 상대방이 문제라고 한다”고 했다.

그것이 불화와 고통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는 동안만이라도 서로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사의 일들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짓’임을 분명히 한 권 선생의 말에

자신의 행동도, 세상의 해악도

하느님에게만 돌리던 핑계의 마음은 쓸려가 버렸다.

 

그러나 권 선생은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이 하는 것’을 보고 계신다”며,

“그렇기에 홀로 있어도 나쁜 짓을 할 수 없고,

착한 일을 했어도 으스댈 수 없다”고 했다.

 

 

 

 

장애와 천대 보듬은 ‘몽실언니’처럼
자기를 녹여 꽃피운 ‘강아지똥’처럼

 

 

마을 뒤편 작은 개울가에 있는 권 선생의 오두막은,

멀찌감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 솟구치게 할 만큼 쓸쓸했다.

이끼로 덮인 바위를 지나 들어선 앞마당 잡풀 사이에,

권 선생이 불을 때 밥을 한 것으로 보이는 솥이 걸려 있었다.

오두막은 5평 남짓.(사진) 그러나 그도 평생 읽어온 책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했다.

그가 사용하는 공간은 몸을 웅크려야 겨우 누울 수 있는 0.3평이나 될까.

 

장애와 천대를 안은 채 살아온 가련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몽실 언니〉의 삶을,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작가가 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제 때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광복 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가족과 헤어져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등을 했고,

전신 결핵을 앓으면서 걸식을 하다 열여덟살에 이 마을로 들어왔다.

스물두살에 다시 객지로 나가 떠돌던 그는 5년 뒤 이 마을로 돌아왔고,

스물아홉살 때부터 16년 동안 마을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교회 종지기로 살았다. 

 

 

 

 

 그의  동화 속 주인공은 강아지똥, 지렁이, 먹구렁이, 똘배, 앉은뱅이 할머니,

거지 할머니, 문둥이 아저씨, 장님, 절름발이들로 모두 이 땅에서 버림받고 소외받은   인물들로 

 분단의 역사 속에서 들풀처럼 모질고 굳세게 살아온 이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그리고

무고하게 고난 받는 이들,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작품안에서 따스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고운사 경내에서 함께 걸으며 그에게,

“시골 마을에서도 이제 모두 새집 지어 살아가는데,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 집도 1983년에 120만원이나 들여서 지은 집”이라며,

“그런데 면에서 나온 공시지가를 보니, 89만원밖에 안 한다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을 할머니들이 죽기 전에 그 집이라도 팔아서 돈을 쓰라고 한다”고 했다.

종지기 때와 다름없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본 할머니들이

너무도 안타까워 하는 소리일 터였다.

 

그는 무언가를 관찰해 쓰는 작가가 아니라,

자신은 끝내 녹아 없어져 아름다운 민들레꽃으로 피어나는

〈강아지똥〉의 실제 주인공이었다.

 

 한겨레신문 / 조연현 기자의 글 요약

 

 

  

 

 

 

 

  

 

  선생님의 자필 문패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 강아지똥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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