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국정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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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0-02 ㅣ No.172

 

7년전 일심회 수사 방해한 盧정권, 이석기 ‘혁명 교두보’ 확보 도왔다
국정원 無力化는 개혁 아닌 改惡… 벌레 있다고 집 태우지 말아야
北의 정치戰 대응 더 강화할 때다… 제도보다 결국 사람이 중요



 
국가기밀 등을 북한에 넘긴 일심회 간첩단을 국가정보원이 수사한 것은 노무현 정부 4년차이던 2006년 가을이었다. 이 사실이 처음으로 신문에 보도되고 이틀 뒤, 김승규 국정원장은 “사표를 내라”는 청와대의 지시를 받았다. 김 전 원장은 2012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굉장히 싫어해 수사가 매우 어려웠다. 청와대 386들은 피의자들과 친분이 있다보니 수사가 계속되면 곤경에 빠질 수 있다고 봤던 것 같다”고 술회했다.

2006년 김 원장이 쫓겨나지 않고 국정원이 마음 놓고 수사를 할 수 있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석기가 2004년에 결성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의 실체가 지금이 아니라 7년 전에 드러나고, 19대 국회의원 이석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방정보 등이 대한민국 국회를 통해 종북세력과 김정은 손에 들어가는 일도 줄었을 것이다.

2002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된 이석기는 2003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5개월 만에 가석방되고 2005년 특별사면·복권까지 되었다. 이석기는 가석방과 사면·복권 틈새에서 대한민국의 북한화 혁명을 위한 RO를 조직했고, 2012년에는 지하당의 가면을 벗고 나와 국회를 혁명의 교두보로 삼는 데 성공했다.

노 대통령은 김승규 원장 후임에 김만복 차장을 승진 기용했다. 김만복 원장은 국가기밀 등 A4 용지 100만 쪽 분량을 북한에 바친 일심회를 간첩단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한 인물이다. ‘굽실 만복’으로 통할 만큼 북한에 저자세로 일관했다. 정권 일각의 수사 방해와 굽실 원장의 호응 아래 일심회 수사는 용두사미가 되었고 그 부작용은 깊다. 당시 정권은 수사요원들까지 냉대해 안보수사 의지를 꺾었다.

지금은 원세훈 전 원장이 돌을 맞고 있지만, 국정원이 지난 3년간 이석기 일당을 극비 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였기에 가능했다. 좌파 정부에서 국정원 고위간부로 일했던 한 경험자는 “3년간 검찰 지휘와 법원 영장을 받아가며 보안을 유지하고 수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일심회 수사에 비추어볼 때, 노무현 정권 아래였다면 설혹 제보자가 있었더라도 이석기 기소는커녕 RO의 본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수사가 좌절되었을지 모른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 개혁론이 난무하지만 숙맥(菽麥) 같은 사람들이 개혁을 주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숙맥은 본래 숙(콩)과 맥(보리)을 분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를 말한다. 야당과 좌파 운동권은 국정원의 역할과 기능을 ‘팔다리 자르고 심장 꺼내듯이’ 떼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국내정보 조직과 대외정보 조직의 분리’ 같은 방안은 안보정보 경제정보 등의 국내외 연계 특성을 도외시해 국가정보력을 현저하게 약화시킬 개악(改惡) 중의 개악이다. 분단·대치라는 특수상황에 처해있지도 않은 일본의 정보전문가들조차 한국의 국정원 체제가 매우 효율적이라며 부러워한다.

북한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자신들의 ‘애국역량’이자 혁명세력, 즉 종북세력과 연계해 대한민국 내부를 분열시키고 대북 안보대응을 교란시키려는 정치전을 집요하게 펴고 있다. 이에 전방위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국정원의 기본책무이다. 마땅히 해야 할 심리전과 정권홍보를 위한 심리전을 구별해야지, 벌레 잡는다고 집을 홀딱 태워서는 안 된다.

지금은 오히려 테러방지법, 통신비밀보호법, 사이버안전법 등을 제정·개정해 안보 수사 및 공작 능력을 키울 때이다. 북한의 사이버테러는 알카에다의 미국에 대한 직접공격 이상으로 한국에는 치명적 위협이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대북 심리전은 더 고도화해서 북한의 민주화와 정치적 체제적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진정한 국정원 개혁은 국가관과 안보의식이 투철한 정보전문가들을 길러내, 증권시장 ‘지라시’ 수준의 대북·대외 정보력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국정원 정상화는 제도보다 사람에 달려 있다. 만약 국정원 안에 용공분자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단 한 명까지 색출해야 한다. 동서독이 통일했을 때 서독 정보기관에 간첩이 들어가 있었다. 한국이 그보다 덜할까.

국정원이 무력화(無力化)되면 누가 가장 좋아할지, 국민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국정원과 공존할 수 없는 북한과 종북세력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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