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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통한 인격변화의 유도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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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4-28 ㅣ No.111710

 

감동을 통한 인격변화의 유도

 

- 윤경재 요셉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요한6,5~14)

 

 

 

프랑스 사람들의 존경하는 인물들로 8년 동안 일곱 번이나 1위를 차지한 아베 피에르’(Abbe Pierre,1912-2007)라는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신부님은 1912년 프랑스 리옹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19세에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카푸친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항독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투사였으며 전쟁 후에는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주거를 제공하는 엠마우스라는 빈민구호 공동체를 만들어 평생을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성자로 불리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쓴 단순한 기쁨이란 책에 나오는 그의 경험담입니다. 한 청년이 자살 직전에 신부님을 찾아와서는 가정 문제, 경제적 파탄, 사회적인 곤란함 등등 자신이 처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지금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신부님은 그이 이야기를 찬찬히 다 듣고 나서 깊은 동정심과 함께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충분히 자살할 이유가 있군요. 일이 그 지경이 되었으면 누구라도 살 수가 없겠습니다. 자살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러나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주시고, 그러고 나서 죽으면 안 되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은 뭐 어차피 죽을 건데 죽기 전에 신부님께서 필요하다면 제가 얼마간 신부님을 돕도록 하지요.”라고 대답하고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일과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신부님 곁에서 열심히 따라했습니다.

 

얼마 후에 청년은 피에르 신부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신부님께서 그때 내게 돈을 주셨든지,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었던지 하여 무언가 베풀어주셨더라면 나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겁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내게 아무 것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부님과 같이 일하고 섬기면서 이제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충분히 찾았고, 이제 나는 어떻게 사는 길이 행복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된 삶의 의미는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닫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외딴 곳에 떨어져 허기를 참는 군중을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스어 동사 스플랑크니조마이(splagchnizomai)’는 단순히 동정심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내장을 쥐어짜는 아픔을 느끼다라는 뜻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때 읊으신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수루에 올라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애를 끊는 듯한 감정은 동정심과 공감, 책임감이 함께 올라와 어떻게 해서든지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의지가 곁들어진 감정입니다. 고난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벗어날 길을 열어주고자 자신의 전 존재를 사용하느냐 애쓸 때 솟아오르는 감정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뜻을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전달하시고자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참된 인간성의 회복은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하되 그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는 데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뜬금없이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적극적인 안드레아가 나섰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어떤 아이가 자기가 지니고 있던 자진해서 빵과 물고기를 내놓았든가 봅니다.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주목했습니다. 유대사람들이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던지려고 했던 장면에서 땅에다 글을 쓰시는 동작을 하신 것처럼, 시선을 당신께로 돌린 것입니다.

 

사람들을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고 앉게 한 다음 예수께서는 아이가 건넨 빵과 물고기를 들어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나누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과연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따져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적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자 하는 것을 찾아내면 됩니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 하면 예수님의 의도에 합당한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옛 경전이 현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서 경전을 재해석하였습니다. 이런 경전해석 태도를 호로즈(Horoz)’라고 불렀으며, 호로즈 해석방법으로 토라를 재해석하여 편집하고 책으로 낸 것을 미쉬나라고 합니다.

 

우리도 유대인들의 호로즈 해석방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적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단순한 축자적 의미 분석에 머물면 안 됩니다. 도덕적 해석을 거쳐 영적 해석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이는 초세기 교회에서 교부들이 가르치셨던 방법입니다.

 

현대인에게 빵과 물고기는 일자리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의미를 성취하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청년실업과 일자리 부족입니다. 아무리 대학을 나왔어도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서 원하는 만큼의 대접을 받고 일하기 어렵습니다. 기성세대들은 무조건 눈높이를 낮추라고 충고하는데 청년들이 겪는 첫 번째 문제가 무시당하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한 쪽에서는 구직난이, 한 쪽에서는 구인난이 겹치는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벌어집니다.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이즈음에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축소되고, 산업 흐름에 뒤쳐진 사람들은 점점 더 소외될 것입니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 인터넷, 나노 기술, 생명공학 등 기술의 발달은 조만간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을 요구할 것입니다. 기존과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들이 대두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오병이어의 정신을 재해석하여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미래 시대에 정밀하고 힘을 쓰는 일은 기계가 대신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보잘것없는 일에 종사하게 되거나, 인간 서로에게 서비스하는 직업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판매직이나, 간병인, 경비직, 수리업종 등 감정노동과 단순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이런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저임금에 시달리게 한다면 사회는 새로운 계급사회로 돌입하고 말 것입니다. 소수의 지배층과 대다수의 피지배층이 갈등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동등한 인격성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우리는 제일 먼저 인간 존엄성에 대하여 숙고하여야 합니다. 또 인간이 본성적으로 추구하는 성취감과 보람을 누구나 찾을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여야 합니다. 설사 기계장치와 로봇이 인간보다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우선시 되거나 더 귀한 대접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존경받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남에게 폐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보람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현재에 되살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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