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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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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05-30 ㅣ No.56155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삼위일체 대축일 -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할 때, 그 앞에 생략된 말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너를”입니다. ‘나와 너’, 이렇게 두 사람이 사랑을 합니다. 그렇다고 “나는 너를”이라고만 말하면, 사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뒤에 ‘사랑해!’가 꼭 붙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말 안에서도 삼위일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태초부터 계시는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은 신이시고 신은 절대적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너’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절대 사랑을 할 수가 없고 사랑은 ‘관계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와 너’가 존재하게 되지만 아직 ‘사랑’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사랑해!’하셔야 사랑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께서 아드님께 해 주시는 ‘사랑’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나와 너의 ‘사랑’입니다. 이렇게, ‘사랑해!’라는 말 안에 이미 ‘나, 너, 사랑’의 세 부분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결국 나와 너는 사랑 안에서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성부와 성자는 성령의 사랑 안에서 하나입니다. 마치 남자가 제 부모를 떠나 여자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성부도 성령을 통하여 성자 안에서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도 당신의 삼위일체 모상에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한 인간도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과 육신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둘을 이어주는 ‘영’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여러분의 전부인, 영과 영혼과 육신을 흠 없이 지켜주시기를 빕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의 영이 영혼과 육신을 하나로 이어주지 않으면, ‘나’ 안에서도 영혼과 육신의 분열을 체험하게 됩니다. 즉,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이 제 맘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 맘대로 먹고 마시고 즐기고 하면서 영혼까지 해치고 맙니다.

예수님은 영을 받지 못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육체가 죽는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영이 없어서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라라.’라고 하시는 것은 당신을 따라 성령님을 받지 않는 사람은 살더라도 ‘죽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남녀 간의 관계도 결코 두 사람 안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온전한 믿음이 없는 두 남녀가 한 몸이 되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맺어주셨다면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기에 한 몸이 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할 필요는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죽기까지 삼위일체의 모습을 최대한 실현하도록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에도 해당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성령님을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의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로 고백하며 그의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라 고백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당신께 순종하는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당신께 순종하시는 아드님을 위해서 당신의 목숨인 성령님을 보내신 것과 같습니다. 이 삼위일체 사랑이 모든 사랑의 모델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지 않으면 완성되지 못하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의 핵심은 ‘성령님’을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특별히 성령님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꼭 묵상해야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가지 않으면 위로자가 오시지 않을 것이다.”

위로자는 누가 함께 있지 않을 때 그 사람 대신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함께 계시면 ‘위로자’는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어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에 위로자가 오시는 것이고 사실 그 분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안에서 사시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보내시어 그분을 통하여 성자 안에서 사셨던 것처럼, 성자께서도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 안에 사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성부와 성자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으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혼자 발현하셔도 그 태중에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는 것처럼 성령을 받은 누구나 삼위일체 하느님을 모시게 되어 하느님의 성전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성령님을 보내주시기 위해 아버지께 돌아가신 것입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함께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사시기 위해 사라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려면 낮은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시고 낮아지셨기에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신 것이고 그 사랑을 우리에게 내려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특별히,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랑의 성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똑같이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우리 삶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왕위가 탐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기 위해서 성문에 나가 매일 사람들과 만나 인사하고 고민을 들어주며 민심을 조금씩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민심이 모두 압살롬에게 돌아선 것을 보고 또 압살롬이 민심을 이용해 아버지를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를 차지하려는 속셈을 알아챈 다윗은 얼른 짐을 싸 성을 버리고 도주를 합니다.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쫓아갑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여 압살롬은 전쟁터에서 창에 찔려 죽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 다윗은 아들을 생각하며 몹시 웁니다. 매우 사랑하였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왕권이 그에게 저절로 갔을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그것을 못 기다리고 무력으로 얻으려다가 자신의 생명까지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였다면 하느님께서 부족함 없이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셨을 텐데 눈이 밝아져 하느님처럼 되겠다는 생각으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지금까지 받았던 모든 축복도 빼앗기고 영원한 생명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 즉 성령님은 ‘낮아짐’과 ‘순종’만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지 ‘교만’해지면 하느님의 모습을 잃고 사랑도 잃고 분열과 죽음만이 남게 됩니다. 성령님이 삼위일체의 핵심이라면 그 분을 모실 수 있는 핵심은 바로 이 낮아짐과 순종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매우 가난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되시는 이유는 바로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모두 비워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겸손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성령님께서도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서 아들로부터 들은 것만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줍니다. 아들은 성령님께서 당신만을 사랑하시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성령님께 드립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것이 아들의 것이 되고 아들의 것이 성령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아버지 것이 아드님의 것이고 아드님의 것이 성령님의 것이 됨으로써 이 세 분은 똑 같은 분이 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똑같이 겸손과 사랑으로 상대에게 ‘영광’을 돌리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행복하려면 이 삼위일체의 사랑에 참여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만약 내가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나에게 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란 부모의 것을 상속받을 권한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것이 다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당신이 가진 모든 행복을 함께 나누기를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 사랑과 평화의 당신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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