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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화요일 성주간 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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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1-04-19 ㅣ No.63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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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화요일 성주간 화요일-요한 13,21ㄴ-33.36-38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순식간에>

 

 

    언젠가 한 본당에 특강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날따라 성당이 꽉 찼습니다. 감사하게도 다들 초롱초롱한 눈으로 시종일관 부족한 제 강의를 경청해주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없던 힘까지 생겨 정말 열심히 강의를 펼쳐나갔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잘 됐습니다. 우레 같은 박수갈채 속에 강의 끝나고 나오는데 몇몇 신자 분들은 따라오시면서 그러셨습니다. 신부님, 강의 너무 좋았습니다. 신부님, 내년에도 또 오세요. 신부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젊으세요. 신부님 여기 싸인 좀 해주세요.

 

    그런 신자들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갑자기 우쭐해졌습니다. 기분도 아주 좋아졌습니다. 마치 잘 나가는 연예인이라도 된 듯 어깨에 잔뜩 힘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봉고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순간, 상황은 사뭇 달라졌습니다. 시간이 벌써 밤 10시가 다되어가는데, 저녁도 아직 못 먹었으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일한 생각 한 가지, ‘빨리 고속도로 휴게소 도착하면 맛있는 우동 한 그릇 사먹어야지.’

 

    그러나 그것도 그날따라 여의치 않았습니다. 가끔씩 문제가 생기던 봉고차가 그날따라 무슨 심통이 났는지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멈춰서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겨우 갓길에 섰습니다. 긴급 출동 서비스를 불렀습니다.

 

    불과 한 시간 전, 잘 나가던 제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 순간에 저는 완전히 찌그러지고 말았습니다. 껌 짝짝 씹는 노란머리 출동 서비스 청년이 운전하는 견인차 조수석에 벌 서는 학생처럼 쪼그리고 앉아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하며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 사도 역시 제가 했던 경험과 비슷한 상황을 맞이합니다. 예수님께서 활기차게 공생활을 펼쳐나가시던 시절, 수제자였던 베드로 사도까지 덩달아 잘 나갔습니다. 자부심도 대단했고, 그야말로 기고만장했습니다. 스승을 향한 믿음, 의리, 신뢰심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하는 말 좀 들어보십시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그러나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열렬했던 베드로의 믿음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예고하신대로 닭이 울기 전, 그 짧은 시간 안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며 치욕적인 배신행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부족한 우리네 인생, 그야말로 순식간입니다. 단 한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꽤나 잘 나간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입니다.

 

    오늘 내가 두발로 힘차게 거리를 활보하지만 내일 내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 못합니다.

 

    베드로 역시 그랬습니다. 그는 한 하루 앞의 일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작업을 하시는데, 바로 바닥으로 내려 보내기 작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고만장해있던 베드로의 기를 제대로 꺾어놓으십니다. 스승을 떠나서는, 스승이 아니라면 베드로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시려고 ‘수제자 배반사건’을 통해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 보내십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적나라한 실체, ‘아무것도 아님’을 온 몸으로 파악하게 하십니다. 이런 쓰라린 작업을 통해 베드로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부터 다시 한 번 스승과 제자 사이의 참다운 영적 여정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지속적인 겸손입니다. 나 자신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하니, 내가 이렇게 죄인이니, 오직 필요한 것 한 가지는 지속적인 하느님의 자비라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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